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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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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의 결혼
글쓴이
코넬 울리치 저
해문출판사
평균
별점8.6 (7)
김진철

세상에는 어떤 남녀라도 서로에게 가장 알맞은 짝이 있게 마련입니다. 단, 세상이 너무 넓다 보니 불운하게도 평생토록 서로 못 마주치는 경우가 대부분,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입니다(그래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결과에 있어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게...). 그래서 우리는 차선, 차차선, 차차선인 이성에게 만족하거나, 아님 차악, 어쩌면 최악의 상대에게 자기 편할대로 허울을 씌워 최면을 걸고 사는 수도 있습니다. 본능과 호감이라는 게 있는데 보통도 아니고 어떻게 최악을 골라 착각할 수가 있는가? 인간 내면이라는 게 그래서 간단치 않다는 겁니다.

언제나 후회 않을 선택만 하는 사람은 대개 재미없는 유형이거나, 아니면 아예 본인 자신이 최악의 말종이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은 "내 느낌이 맞겠지.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하고 기분 좋게 순간의 이끌림에 충실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나서는.... 음.... 그런데, (어리석었을지언정)그나마 덜 이기적이고 성격 좋은 타입은, 나중에서야 그 선택이 그릇되었음을 인정할망정,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거나 남탓을 하지 않습니다. "그 선택도 어차피 내가 내린 결정이었어." 이런 못난 자신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게 진짜 인간이라며 한번 씩 웃고 어제보다는 내일에 시선을 돌리는 게, 설령 멍청하단 소리를 들어도 멋진 사람 아니겠습니까?

남자 같으면 또 모르겠는데, 여성이 행여 인간 못된 배우자(혹은 그에 준하는 상대)를 만나 고생을 하는 게 참 딱한 경우입니다. 꼭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같은 고전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숱한 본격 문학이나 장르물에서 이런 유형을 접하며, 같이 슬퍼하고, 흔한 공감과 개탄을 취미 삼습니다. 언제나 인간사의 진한 우수가 배어 있어 독자를 센치하게 만드는 데 도사님이신 코널 울리치(즉, 윌리엄 아이리시)의 작품을 읽노라면, 곧잘 비운의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변변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 좋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좋은 교육을 받았다 한들, 이 시대라면....), 웬 몹쓸 불한당한테 잘못 걸려 애까지 가지고 돈 한 푼 없이 버림 받은 불쌍한 여성, 수중에 단돈 17센트만 들고 편도 차표 한 장으로 북새통인 열차에 탑승했으나, 도착해 본들 그녀에게는 아무 기약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혼잡한 장거리 여행을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치러야 할 판인데... 마음은 고달픈 현실을 감내하고 죽은 듯 시간을 보내야 할 줄 알지만, 애까지 밴 여성의 몸은 다른 생각을 품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깁니다. 편안히 자리를 잡은 어느 남성의 발을, 자신이 아닌 자신의 발이 "불수의적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네요. 이 신사, 같은 또래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꽤 친절합니다. 이 남자와 신혼인 듯한 그 옆자리의 여성은, 당신이란 남자는 왜 이렇게 둔하냐고, 어여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겠냐고, 저 부른 배가 안 보이냐고 마구 핀잔을 줍니다. 큰 죄나 저지른 양 아내에게 절절 매는 이 호인은 금세 여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죠.

신혼인 여성은 본인도 임산부입니다. 겉으로 보아 비슷한 처지(속사정은 전혀 딴판입니다. 어쩜 같은 하늘 아래 이처럼 행복과 운수의 배분이 불공평할 수도 있는지, 섭리를 탓하고 싶어질 만큼이죠)인 두 여성은, 이내 친구가 되어 온갖 이야기를 다 주고받습니다. 요렇게 아기자기한 상황을 찰지게 묘사하는 게 이 작가분의 장기입니다.

"7개월요."
"전 8개월이에요."
마치 두 귀족 부인이 모여, 백작 부인이 공작 부인의 위계를 알아보고 예를 갖추듯, 서로는 몹시도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위계 차가 한 달짜리라고 해도 말이다.

이 문장은 원문 그대로는 아니고 그냥 제 기억대로 재현해 본 것입니다. 저는 코널 울리치 전집을 원서로 다 갖고 있는데, 책의 번역은 원문에 매우 충실합니다만 왠지 책의 문장은 바로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울리치의 문장은 섬세하고 감정이 듬뿍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본인 딴에는 아무리 꼬아도) 독자에게 바로 와 닿는 게 또 특징입니다. 이 대목 역시 번역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던 분들도, 원서를 보면 바로 납득이 될 겁니다.

두 신혼 부부는 너무도 행복해 보입니다. 그저 유복하게 살았다. 쪼들리지 않고 여유를 누린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아까 부인이 남편에게 막 대한 건 이분들 나름 애정의 게임에 불과하죠. 그러고들 노는 겁니다), 그저 이런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특히 같은 여자가 봤을 때 저 부인, 세상 태어나서 슬픔이라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얼굴이라네요. 이건 주인공의 주관이 투사된 인상에 불과하며, 이야기를 계속 나눠 보니, 바로 "자신"처럼, 한미한 환경에서 그럭저럭 부대끼며 지내다 이처럼 마음에 턱 맞는 남자를 만났을 뿐이랍니다. 남편도 고생을 좀 했는데, 알고보니 "사정"이 좀 많이 다르더라는.... (더 이상은, 내용 누설이라 언급 못 하고요)

당장 내일을 기약 못하는 인생 앞에서 이런 행복한 커플이 제왕도 부럽지 않을 행복을 누리는 모습이란, 참 가혹한 시련입니다만 우리의 주인공은 그들을 시샘하지 않습니다. 이런 타입은 행여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도 자신의 양심에 충실할 뿐, 속물적으로 탈바꿈하여 타인에게 몹쓸 짓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죠. 네. 그래서... 그녀는 "일단" 운명의 물줄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릴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으로도 계속 행운을 지킬 수 있을지....

독자들은 소설 처음, 웬 남녀가 누군가를 죽였다느니, 혹시 당신이 (나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대신 나서서) 그런 짓을 한 것 아니냐느니, 어찌 보면 행복한 불안,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걸 보고, 또 바로 다음 장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전혀 앞과 이어지지 않아 보이는 에피소드를 채워 나가는 걸 보고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당황할 게 아니라, 지금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중이니,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추리를 해 나가며 답을 찾으십시오. 그게 룰입니다. 더불어, 가능하면 이 해문 추리 시리즈가 유지하는 포맷인 "등장 인물 소개"도 읽지 마십시오. 그 자체가 (미세하게나마) 스포일러입니다.

결말이 왜 그리 비관적인가, 기왕 그리된 것, 착한 품성에 아직 젊디젊은 남녀가 힘찬 새출발을 다짐한다고 마무리지었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도의 해명이 가능합니다. 첫째 그래도 형식미를 꽤나 중시한 울리치는 수미쌍관의 플롯을 더 잘 다듬고 싶었다. 2) 만약 "새출발. 희망" 쪽으로 분위기(이거 잡는 데에 또 귀신이죠, 이분이요)를 꾸렸다면, 이번에는 싸구려 통속물의 뻔한 행보라고 또 비난이 일 것을 의식했겠다. 뭐 이 정도로요.

통속물은 통속물이되(솔직히, 병원에서 신상이 뒤바뀌었다는 쪽으로 갈 때 아! 하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장르물에서 그럼 뭘 기대했냐, 같은 생각), 울리치의 작품은 결코 그 한 마디로 감히 폄하할 수 없는 기품이 있습니다. 첫째 그는 인물 심리 묘사에 너무나도 탁월한 섬세함을 뽑냅니다. 둘째, 대가들만이 선뵐 수 있는, 지나가듯 툭툭 던지는 인생에 대한 단편적 통찰이 또 일품이죠. 이 작 역시 본 줄기보다는, 그런 주변 묘사와 세팅에서 독자를 성찰과 우수에 젖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한 번 더 예비해 둔 반전 역시 절대 천박하지 않습니다.

p234: 7 부축이려 → 부축하려

"부축이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남의 심사를 들쑤시다"라는 뜻이라면, "부추기다"가 맞고
여기서처럼 "쓰러지려는 걸 받쳐 일으켜 세우다"라는 뜻이라면 "부축하다"가 맞죠.

이런 오타를 내시는 분들은 머리 속에 개념 구분이 선명히 안 이뤄져서, 전혀 무관한 두 영역이 마구 헷갈리는 거죠. 한국어인데도 말입니다. 모르긴 해도 이런 분들은 "받치다"와 "바치다"도 혼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P235: 밑에서 7째줄 틀키기 → 들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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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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