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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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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한반도 이주민의 일본 열도 개척사
글쓴이
이재일 저
미문사
평균
별점9.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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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울대와 한국과학원을 졸업한 저자의 역사적 관심과 열망이 만든 책이다. 보통 관련 서적이나 자료만을 탐색하는 데 반해 저자는 직접 수십 차례 이상 일본을 방문하며 고대사를 연구하였고, 답사 여행을 가이드 할 정도로  열정적이기에 나올 수 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렇기에 학계의 정설보다는 저자의 집요한 지식 탐구와 현지 답사, 증거들을 바탕으로 생각한 것들이 많기에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식적이고도 공개적으로 하기 힘든 부분을 민간 단위에서 해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책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여졌으며, 자세한 자료 및 분석이 여러 목록과 챕터로 세분화 되어 그 자체가 귀중한 자료가 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중간중간 필자의 생각이나 주장도 들어있지만 그 외의 자료들은 객관적이고도 실제 답사한 자료들이기에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특히 이주민의 고대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동안 어렴풋하게 여겨졌거나 고민되던 부분들이 풀리는 지점들도 많다. 일본사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쯤 읽어두면 좋을 책 같다. 연구에 바탕이 될수도 있겠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일본은 인도 못지 않게 여러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엄청나게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 인도처럼 다문화와 종족이 섞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바탕으로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러 인종들이 이해된다. 자신들은 혼혈을 싫어하면서도 이민자나 외국인들의 것들을 과감하게 잘 받아들이고 섞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선지 애니메이션, 만화에 남아 있는 신화와 전설의 흔적들이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도.

*****해적이나 가문 이야기가 많고 그 원류도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성이 다양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즉 그만큼 다양하게 뒤섞였으며 이것이 심한 내적 열등감이나 휘청거리는 자존심이 될수도 있다.

********마치 조상이나 부모의 흔적을 모르는 상태와 비슷하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숨기고 있는 것도 있어 그것이 더 심화된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선진 문화라는 현대의 방식과 체계와는 다르다고 본다.

***********과거의 역사가 그럴뿐이고 이제는 독립된 하나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다만 과거의 역사를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 역사도 이미 일제 강점기에 의해 한바탕 뒤집어져서 사라진 것들이 꽤 많다.

**************그만큼 우리 역사도 끊겨진 부분이나 왜곡된 부분, 변질된 부분도 많다.

***************최근 그러한 증거들이나 새로운 연구들이 속속들이 나오는 편이다.

****************AI의 발달로 인해 연구방법에도 더 여러가지 가능성이 생겼다.

*****************알면 알수록 중국과 우리는 꽤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미래에는 사라진 북방민족의 흔적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다.

*******************이미 학계에서도 우리 민족과 가장 비슷한 DNA가 일본인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주민들이 정착한 문명이다. 북쪽에서 대부분이 내려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더 멀리 보면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아프리카계의 이주민들의 후손이다.

**********************그렇다고 해서 먼저와 나중의 어떤 계급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와 부정하고 왜곡하느냐의 차이가 생긴다.

************************못 받아들일수록 현실에도 영향을 줘서 현실이 왜곡되게 된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민족과 나라라는 개념이 생긴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만 해도 지금같은 강한 민족성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경계 지역은 항상 섞여 있다. 국경이 지금보다 더 불분명했다.

***************************게다가 우리도 이주민들이 꽤 많았다.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현대에도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거나 큰 이슈가 생기면 보트 피플처럼 대이동과 이주가 일어난다.

*****************************그렇게 탄생한게 사실 미국이며,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래선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일부 설정들은 가만 보면 그 이주민과 당시의 신화로 이뤄진 것들이 많다.

*******************************심지어 최근의 문화에도 영향받은 듯한 증거들이 남아 있다.

********************************그래선지 저자가 답사하는 동안 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심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 발견되는 것 같다. 알기에 더 숨기거나 알기에 민감해 하는 것 같다.

*********************************곰 신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사실 고대 동·서양의 신화에 공통적으로 곰이 많이 등장한다. 그 이후로는 서양은 사자로 바뀐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발간이 알려지면 일본에서 또 역사 지우기나 왜곡하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지런히 기록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끔 조선때문에 많이 지워지고 사라진 과거의 기록들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많은 자료가 있을테지만 한계들이 많다.

*************************************각자 역사인식의 한계가 있고 숨기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는 확실히 일본에서 많이 찾아낼 수 있는 힌트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선지 일제강점기 일본은 많은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천황의 가문 박물관 수장고에 자료가 많다고 한다.

****************************************가끔 우리가 학생 때 배운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역사 교과서도 계속 수정되고 있으며 새로운 사실이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교육 지침과 방향에 따라 개편된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다시 역사 공부를 해보면 의외의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의도를 가지고 쓰여질 수밖에 없다.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어 억양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받침 발음이 약화되는 현상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지역이 가까우니 서로 영향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언제나 역사는 해석의 영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으로 해석도 편향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측면으로 분석하고 비교해야 한다.

***********************************************답사를 계속한 저자도 그 흔적을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한반도쪽 이주민들의 역사가 관련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굉장한 발견이다라기보다 그런 측면도 있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확증편향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해석정도로 거리를 두는 것도 좋다. 그것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정말 더 발굴되고 연구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러 한계 중 하나인 북한이 문제가 된다.

******************************************************통일되면 북한을 통해 고대사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북한이 얼마나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역사를 왜곡해 놨을까도 궁금하고 우려된다.

********************************************************일본 자료와 대조하면 더 많은 것이 입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 다음이 만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만주 역사는 아직도 많이 안개속에 가려져 있다.

**********************************************************워낙 많은 민족이 교차되었고 역사가 덧씌워졌으며 통치자가 바뀌었다.

***********************************************************중국의 아이러니와 동북공정도 그렇게 탄생했다.

************************************************************역시나 저자도 중국 고대사에도 관심이 있어 연구중인것 같다.

*************************************************************늦었더라도 조사하고 발굴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이 많다.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존재는 그만큼 진하다.

****************************************************************책에서 나온대로 일본 여행때 참고한다면 더 흥미로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상적인 문구들##


##'하타'는 우리말 '바다'를 뜻한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하타씨란 바다를 건너온 한반도 이주민들의 통칭일 수도 있다.~일본 신사에 모셔지고 있는 신에는 자연신도 있지만 조상신이 대부분이다.~소가씨 세력은 철권정치를 하다 다른 백제계 세력에게 쫓겨난다. 그리고 이들 백제계 세력의 본국인 한반도의 백제가 멸망한다. 본국의 부흥을 위해 백제를 지원하다 실패한 천황가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결국 신라계의 지원을 받은 백제계 천황이 들어서며 새로운 일본국이 생긴다.


##고분들이 일본 열도로 가면서 대형화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신개척지의 경제 여건이 넓은 토지에 인구가 적고 가지고 온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반도보다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초대형 고분은 개척 기념비적인 성격도 있다고 본다.~일본 역사계의 한반도 이주민에 관한 변치 않는 원칙은 한반도로부터 선진 문화가 들어온 것은 인정하되 현대의 일본인이 혈연적으로 한반도 이주민의 후손이라는 견해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혼혈'이라는 리가 바로 그러하다.


##치카후사의 말로 보아 우리가 고대 한일관계의 증거를 갖지 못한 것은 그러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증거가 말살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간무천황은 백제를 고국으로 알고 있었지만 출처를 지워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려고 한 정치적 행위였을 것이다.~간무천황의 분서 사건은 지식인 사이에 널리 알려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발단이 백촌강 전투의 대패와 본국의 멸망을 역사 기록에서 지우고자 했던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숨겨진 역사가 일본인의 아이덴티티와 직결되기 때문에 민감한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교적 둔감한 것 같다.


##가비에는 그 중심부에 가야국이라는 지방국이 있었는데 국조의 이름은 가야신이었다. 이 지역은 메이지유신 이후까지도 행정 구역상 가야군이었다.~賀는 '하례할 하'자로 일본 발음은 가, 陽은 '볕 양'자로 일본 발음은 요우이며 賀陽郡의 일본 발음은 '가요군'이다. 전에는 가야군으로 발음했던 적도 있다. 


##오카야마 지역은 '모모타로'라는 일본의 국민동화가 생겨난 곳이다.~일본 전국에 산재하는 적석총 고분은 1500기 정도 확인되고 있다.~이 대부분이 고분 시대 전기인 4~5세기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다.~오카야마의 풍경이 조사차 갔던 부산이나 김해를 중심으로 한 한국 남부의 풍경과 너무 닮았다.~지리학에는 경관학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지리적 조건은 같은 생활양식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에 기비 지역에 많은 가야 사람들이 이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야라는 은 대표적인 한반도 이주인의 성씨다. ~신라계 하타씨족에 이어 일본에 이주하여 명문거족으로 뿌리를 내린 가문으로 바로 그들이 가야, 백제계 성씨인 아야씨족이다.~이들 동한과 서한인들은 한반도 출신에 대한 찹려이 있기 전까지는 모두 가야, 백제인임을 내세웠던 가문들이다.~아스카 지역에는 최초 가야인이 정착했던 곳으로 보이며 이곳에 백제인이 파도처럼 밀려드니 오히려 백제계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때문에 먼저 이주한 사람들은 이미 일본인으로서 원주민 행세하게 되었고 나중에 정착한 이마키(방금 막 온)에 대한 차별도 존재했던 것 같다.


##함안에 안라국, 통칭 아라가야가 있었고, 인접 지역인 밀양에 박씨도 있었는데 이들이 일본에 가서도 '아야'나 '아라이'씨라 했다는 설이 있다. 제일동포들도 밀약박씨든 반남박씨든 대부분 '아라이'라는 성씨를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백제계는 주로 '아야'를 선호한 것 같으나, 아라 가야 출신은 '아라이'를 선호한 것 같다.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이다. 초기 고분들의 석실 모양을 보아서는 가야지역을 떠나 규슈 지역으로 이주해던 집단이 다시 시코쿠로 이동한 한반도 이주민 집단의 고분으로 보인다. 6세기 후반에 축조된 고분에서 발견되는 은상감입철도 같은 부장품으로 보아서는 한반도에서 4세기 후반부터 이주를 시작하에 6세기 후반에는 일본 열도의 주도 세력으로 발전하는 백제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가야계 이주민이 터를 잡은 곳에 후에 백제계가 들어온 흔적이 보인다는 뜻이다.


##하타씨는 한반도 이주민이며, 한반도롭터 선진 기술을 일본에 들여야 도요쿠니는 풍부한 나라가 되었다. 이 하타씨의 지역 안에 사에키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있어, 사에키씨는 하타씨의 지족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하타왕국은, 수서 왜인전에 의하면, 현재의 기타큐슈뿐만 아니라, 주고쿠 지방의 스오, 이쓰쿠시마도 포함하고 있었다.~이주민이 서일본 일대에 정착했던 것을 보면, 사에케씨는 이주민의 큰 주류인 하타씨 중에서 사누키 지방에서 활약했던 방계족이라고 생각된다.~예전에는 그장사 터도 신라 신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본다. 신라 신사新羅神社라고 써 있는 현판이 당당해 보였다.


##일본에서 옛날부터 해적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사람들을 일단 '바다의 스페셜리스트'이자 '무사단'으로서뿐만 아니라 바다의 안전이나 교역 및 유통을 담당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던 집단으로 보고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3,500명이 성과 천수각의 축성을 위해 일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히메지성이 조선성을 닮았다고 하는 것도 이때 일한 조선인들 때문인지 모르겠다.~히메는 신적인 여성을 뜻한다. 신라왕자 천일창이 찾아나섰단느 희메코소 신사에 모셔진 히메가 좋은 예다.~히메지시 주변의 신라계 신사나 사찰도 함께 고려하면 히메지란 신라계 세력인 천일창과 그들의 무녀신 히메가 거쳐 간 곳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히메지성의 동쪽을 흐르는 이치강 하류에 시라하마초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시라하마초의 시라하마는 이전의 신라하마이며, 시라하마초의 남부는 바다였다 근처에 후쿠도마리항이 있는데 일찍이 '칸도마리'라 불리던 항구다. 칸은 한이고 도마리는 머문다는 뜻이다. 이 신사는 옛날에는 신라명신으로 불렸다고 기록돼 있고 신사에 걸린 설명판은 신라 글자에 신라라는 가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일본의 가나가 신라의 이두에서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나루토 해협은 이와지섬과 시코쿠 사이의 해협이다.~유명한 '나루토의 소용돌이'~최대 유속은 11kt20km/h 나 된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 내에서 가장 빠른 조류다.


##가야계의 땅이었던 비젠에서 이주했을 가능성이나 검을 만드는 즉 철을 다루는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베씨는 가야계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열도는 조몬 시대에서 야요이 시대로 갑자기 이동하게 된다. 수렵채취가 주였던 그때까지의 사회에서 일변하여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가 일어나면서 제철 기술이나 문자라는 고도의 문명이 갑자기 등장한다. 한반도로부터의 이주민이 일본 열도에 와서 그들의 뛰어난 문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납득이 될 것이다.~1만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된 조몬 시대를 통하여 약 10만 명 정도였던 일본 열도의 총인구가 야요이 시대에 이르러 100만 명 규모로 단숨에 급증한 것을 보면 상당수의 한반도인들이 일본 열도에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몬인은 배를 타고 나타난 이주민을 '신'으로 추앙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일본 열도로 건너와서 그동안의 자연숭배로 있었던 신들과 합쳐져 800만 신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생각된다.~이주민들의 행동은 신앙의 형태로도 남아 있다. 산중에서 수행을 하는 슈겐도의 행자라는 존재가 그 일례~기원전 200년경 일본 열도에서 합류한 이주민들은 부족 간 권력 항쟁을 거듭하게 된다. 


##삼국 시대에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경질토기를 도질토기라고 부른다. 시코쿠 중에서 에히메현은 이 도질 토기의 출토 사례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리고 우와분지에서도 이 도질 토기가 출토되었다.~5세기경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다양한 문화와 함께 이주한 이주민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시코쿠의 서부에 있는 에히메현은 일본에서 한반도 기와가 가장 많이 발견된 지역이기도 하다.


##다사의 난~도미부인 설화~두 설화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재야 사학자 중에는 웅략천황의 역사가 백제 개로왕의 역사를 덮어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다만 일본인들이 허구적으로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설'의 느낌도 가끔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후세까지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고, 또 당시의 여러 상황 등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이주계 사람들의 새로운 씨족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길이 100m 이상의 고분이 20기나 넘는다는 사실은 그 지역에 막강한 정치, 군사력을 가진 독립적 세력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구려에서 시작된 대규모 고분 축조의 풍습은 백제, 신라, 가야에 보급되었고 한반도의 선진 문화를 일본 열도에 가지고 온 한반도 이주민 집단은 3세기 말경에 봉분이 있는 분묘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고분의 발생은 전적으로 한반도 이주민에게서 기인한다.


##일본학계에서는 일본 열도에 남아 있는 조선식 산성의 축조 연대를 일률적으로 7세기 후반으로 본다. 즉 백촌강 전투에 패한 일본이 나당 연합군의 일본 열도 침입에 대비하여 백제 유민을 동원하여 쌓은 성으로 규정한다. 반면 김석형 씨는 조선식 산성이 한반도 이주민들이 이주와 동시에 주거지 인근의 산에 쌓은 성으로 규정한다.~기노조 성은 기비고원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약 400m의 귀성산 정상 부근에 만들어진 고대 산성이다. 기노조는 '키의 시로'로 불려왔다. 키는 백제의 고어로 성을 의미하며, 나중에 '귀'라는 글자로 추측해 채용해 넣은 것이다. 기노시로는 기라는 백제말과 시로라는 성을 나타내는 일본말을 거듭한 명칭이다.


##치는 고구려 산성이나, 백제의 부여 나성, 가야산 산성, 수원 화성에도 있다. 치성이란 성곽의 요소에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치성의 '치'는 '꿩'이란 뜻을 가지는데,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화성에는 이러한 치성이 10곳 있다. 이러한 소위 '조선식 산성'은 일본에 흔하지 않고 일본 중세성들과 구조가 확연히 다르기 문에 현대의 일본인들은 이해가 부족하다.


##우라 전설에는 여러 곳에서 '조선'이 나온다. 우라 자신이 조선에서 날아와 거성으로 삼은 귀노성은 조선식 산성이다. 우라라는 이름도 신라, 가라, 안라 등과 같이 조선식이다. 한반도 삼국 시대를 기록한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국왕 탈해는 둔갑해 매가 되고 대가야 국왕은 둔갑해 독수리가 되었다. 그 후 탈해왕은 참새가 되고 대가야 국왕은 해청이 되는 등 우라의 변신담과 매우 비슷하다. 


##일본의 고대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야마토 서쪽의 가와치지역이다.~일본 고대사서는 일본 초대천황이라는 신무천황의 동정의 복사판처럼 서쪽에서 온 응신천황이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야마토에서 다시 왕권을 수립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의 활발한 역사는 백제에서 불교가 전파된 500년대 중반의 아스카 시대에 비로소 시작된다.~가와치 지역~한일 고대사의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는 지역이다.일본 최대의 고분들이 모두 이 지역에 산재해 있지만 일본 사서들은 침묵을 지키는 편이고 그저 나라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왕권을 이야기한다.


##야마토는 일본을 가리키는 아어다. 한자로 대화, 왜, 일본이라고 쓰고 읽을 때는 '야마토'라고 읽는다. 야마토라고 불리는 지역에 왕권이 있었던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처음에는 한자로 왜라고 썼으나, 겐메이천황때 국명을 왜와 동음인 화에 크다는 의미의 대자를 붙여 '대화'로 표기하고 '야마토'로 발음하도록 결정하였다고 한다.~필자는 야마토의 유래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야마토는 가와치에서 볼 때 산 너머 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이를 한자로 쓰면 산동인데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야마山와 토東가 합쳐 야마토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새로운 세력이 가와치평야에 나타나 산 너마 나라 지역에 있던 구세력을 야마토라고 불렀을 것이다. 야마토를 산동이라고 표기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백제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민들은 야마토아야, 가와치아야라고 부르는 동한, 서한의 한씨로 성을 바꾼다. ~6세기 중반이 되면 가와치가 본관인 백제계 이주민 가씨가 백제계 아야씨 세력의 지원을 배경으로 아스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한다. 아스카 시대의 시작이다.~소가씨의 전횡을 중지시키기 위해 또 다른 백제계 나카노오에의 주도하에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의 보좌를 받아 을사의 변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소가씨 제거에 성공한다. 나카토미씨도 백제계라고 한다.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였으니 일본국이 멸망한 나라를 이어받았다고 하게 되면 위신이 서지 않게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방향 아래 특히 일본 열도에 한반도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4~5세기의 역사는 허구에 가까운 각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조차도 이 기간의 역사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며 '미혹의 4세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4세기뿐만 아니라 5세기의 역사도 미궁 속에 있다. 5세기 역사 역시 일본 사서의 기록과 당시 중국 사서의 기록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공황후라는 가공의 인물이 신라와 한반도 국가들을 항복시켰다는 삼한정벌 신화를 믿는 대다수인 일본인들은 한반도가 한때 그들의 속지였다고 믿어 오며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정한론에 따라 한반도를 침략하다. 가장 완벽한 왜곡은 역사를 정반대로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무천황은 일본 역사에 제1대 천황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원전 660년부터기원전 585년까지 재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이나히노미코토는 신라왕의 조상이라고 쓰여 있고 일본의 국사대사전에 의하면 신무천황의 형으로 되어 있다.~필자는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연대를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본다. 어쨌든 일본의 초대 왕으로 정해진 람은 한반도 출신인 셈이다. ~신무천황이 도읍으로 정한 곳은 나라의 남쪽에 있는 가시하라라는 곳인데~전철역 주변에 매우 큰 신사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일본 초대 천황으로 알려진 신무천황의 신사다.


##백제계 소가씨의 강권 정치에 반기를 들어 다른 백제계 세력이 주도하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이에 협조한 세력은 선주 이주민 씨족인 모노노베씨 세력이었고, 암살에 동원된 사람들이 카라비토韓人들이었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로 일본의 고분에 대한 접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조이고, 공원으로 조성해서 역사성은 뒷전으로 보내고 시민생활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역사까지도 들어내려는 접근법이 있다. 이러한 소극적인 기조는 역사를 드러내면 이주민을 언급해야 하는 어려움 문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군마현으로 자신들의 조상이 신라에서 온 도래인임을 떳떳하게 밝히는 진보적인 곳도 있다.


##참고로 일본의 천황릉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거대 고분에 고증이나 기록에 근거한 역사적 연결이 약한 상태에서 역대 천황을 일률적으로 지정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우리나라도 고대왕릉은 무령왕릉처럼 지석묘지석, 능석이 발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능'이라고 하지 않고, '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재야 사학자들 중에는 경행천황을 백제 9대 책계왕의 손자인 걸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대 일본의 천황에 대해서는 실재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무천황, 숭신천황과 응신천황의 경우에는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세 천황의 이름에는 신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새로운 정권의 창설자로 의미를 부여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신을 '가미'라고 한다. 고대에는 신을 '가무간'으로 발음했다 하고 아이누어의 '카무이'또한 신이라는 뜻이다. 또 아이누 사람들은 신은 곰을 의미하는데 고조선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에도 신적인 존재로 곰이 등장한다.~우리말 '곰'이 일보에서 신의 고어인 '구무', '고마'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화라는 글자는 일본을 상징하는 글자가 되어 있다. 야마토라는 글자에도 화和자가 들어 있다. 환무천황의 어머니가 화신립 다카노 니가자라는 백제 왕족이고 아버지가 화을계인데 일본 황실이 야마토조신으로 모신다. 화씨는 백제 무령왕의 성씨라고 한다.~수백향황녀가 무령왕의 딸이라는 설이 있다. 수백향이 백제 25대 무령왕의 공주라는 이야기는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순전히 역사 해석에 의해 나온 이야기다.~'수백향이 낳은 태자의 이름이 천국배개광정이라는 사실에서도 수백향의 국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천국배개'를 말 그대로 풀이하면 '천국 즉 상국이 밀어주다'라는 뜻이 되므로 태자가 백제 왕실의 외손자일 것이라는 추리다.~그러나 글자 해석만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이지 다른 역사적 증거는 없다.


##6세기초부터 신지식, 기술을 가지고 대거 이주한 백제계 이주민들을 이마키노 아야히토라고 한다. ~이마키 아야씨와 더불어 아스카 시대에 활약한 기타 백제계 씨족으로는 쿠라쓰쿠리씨, 니시고리씨, 백제 진손왕의 후손 왕진이의 후예 씨족 등이 있다.~이런 이유로 백제의 성왕은 '이마키의 왕'으로 불린다.~일본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 수단과 군사력을 소유한 여러 한반도계 집단을 통합 지배한 것이 야마노 아야씨였고 그에 의거한 것이 바로 아스카 시대의 마지막 100년을 지배한 소가씨 일족이었다.~야마노토 아야씨로 대변되는 백제와 가야계의 이주민 집단은 당시 일본에는 없던 선진적 토목 기술과 수공업 기술을 가지고 야마토 분지 남쪽의 황무지를 개척해 나갔다.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을 받기 전에 미리 일본 가와치 지역에 나와 있던 곤지왕이 있었다. 곤지의 아들인 동성왕 시절을 거쳐 무령왕 시절이 되자 백제는 완전 부활하였으며 그 다음 왕이 성왕이다. ~즉 성왕 시절에 백제인의 일본 열도에로의 계획적인 이주가 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본 열도에서 야마토 정권이 생겨났고 백제계인 소가씨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것이 50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다.~씨족 집단이 움직일 때는 조상신을 같이 모시고 이동하는 습속이 있기 때문에 신사의 전파는 바로 집단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이 밖에도 일본 열도를 정복한 한반도 세력이 누구냐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다. 백제의 근수구왕,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 모용선비가 주도한 가야 세력 등이다. 이러한 가설 등의 공통점으로 그 주체가 정확하게 누구였든지 확실해 보이는 한 가지는 한반도의 어떤 세력이 일본 열도로 이동하여 일본의 통치 세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백제 진손왕의 후예 씨족인, 백저씨는 나라 시대인 720년에 후지이씨로 성을 고친다. 백제 진손왕은 근구수왕의 손자이자 진사왕의 아들이다. 근구수왕의 명으로 유학자 왕인과 함께 사절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도 현재 이들 히라노 신사의 4신을 모두 백제왕으로 인정하고 있다. 야마토타케루가 젊은 시절의 근초고대왕이라는 의미이다. 필자는 고토의 히다 신사를 방문하여 위의 글을 안내판에서 읽은 바 있다.


##히라오 고분군과 다카야스 고분군 일대는 고쿠분 지역의 지배자 계급을 위해 일하는 관료, 중산층 및 서민층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하토리가와에 살던 하토리씨는 옷감을 만들던 사람들이었다. 하토리씨는 가야, 신라계 도래인인 하타씨의 일족이고, 한 가래는 나중에 나라 동쪽의 이가 지역으로 이주하여 닌자의 원류가 된다.


##소가씨의 역사로부터 일본 역사의 비밀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 ~성덕태자와 소가씨는 강력한 파트너였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들여온 불교를 통해 경쟁 세력을 물리치고 일본 열도의 통일을 이루려고 다. 소가씨가 멸문된 이후 소가씨의 업적이 모두 성덕태자의 업적으로 각색되었다는 의심도 있다.


##고분을 답사할 때는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문패를 통해 성씨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처음 보는 '기노모토'라는 문패가 보인다.~'목씨의 근본' 또는 '원래 목씨'정도로 해석되는데 목씨는 백제 8대성의 하나로 천안 근처 목천이 본관지라고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백제 성씨를 여기서 본 셈이다. 물론 기씨도 같은 기씨다. 참고로 대성팔족이란 백제에 있었던 8가지 큰 성씨를 말한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는 백제의 대성팔족으로 사씨, 연씨, 협씨, 해씨, 정씨, 국씨, 목씨, 백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정씨는 진씨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고분 시대 후반에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만들어진 도자기가 스에키다. 이 도자기는 기존의 조몬토기 이래의 전통적인 토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기술과 수법으로 만들어진 도질 토기로 일본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 것이 오사카부 남부의 센보쿠구릉이다.


##도쿄 지방의 고구려와 신라, 이즈모의 신라, 규슈의 가야 도래인들은 모두 순수 이주민의 모습이었다.~일본 역사 이야기에 백제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순수 이주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정복자와 통치자의 이야기로 변모하기 시작한다.~야마토 지역에 머물렀던 사람이 바로 곤지왕이다. 곤지왕은 주로 군사적인 업무를 담당한 군벌 세력이다.~당시 한성 백제는 멸망하고 개로왕도 잡혀서 죽고 문주왕과 삼근왕이 4~5년 사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백제왕을 지명할 사람은 역사 기록상으로는 곤지왕이 유일할 것으로 추정된다.~지금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본다면 곤지왕은 일본의 유라쿠천황이며 그는 한편으로는 멸망한 반도 부여를 중흥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열도 부여를 고대 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한 군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곤지왕이 자리 잡았던 지역은 아스카베군으로 지금의 가시하라시와 하비키노시의 남동부 지역이다.


##아스카베 신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지금도 지역의 이름이 아스카다. 6세기 후반에 야마토 정권의 도읍이 들어서는 나라분지의 아스카와 지명이 같다. 가까운 아스카와 먼 아스카, 두 지역은 같은 사람들이 살았고 동일한 지배자가 통치하던 지역이었을 것이다. ~우리말로 아스카, 즉 큰 마을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시작되었을 것이다.


##곤지왕보다 먼저 이주한 진손왕의 후손들은 후지이씨, 후네씨, 쓰씨 등으로 번성하는 데 비하여 곤지왕의 후손은 아스카베노 미야쓰코씨 하나밖에 없다.~필자의 추측으로는 곤지왕의 후예들이 천황족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천황족은 성씨가 없다.


##사람의 이동은 지명의 이동을 동반하게 되었다. 야마토의 여러 지명들이 가와치의 것과 꼭 같은 것은 가와치 백제 세력의 가와치로부터 야마토에로의 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같이 백제계의 아야씨인데 아야씨를 동녘 동자를 써서 '야마토의 아야씨'로 부르고 서녘 서자를 써서 '가와치의 아야씨'로도 부르는 것과 같다.


##마치는 일본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백제의 목씨일 수 있다. 마치는 『일본서기』 응신기에 나오는 목마치와 같은 동음동명의 인물이다. 목씨는 백제의 대성 족의 하나다. 이 마치는 『삼국사기』백제본기 개로왕대에 나오는 목협만치와 일치한다.


##400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금관가야가 심가한 타격을 받아 가와치평야로의 가야 유민의 제2 이주 시대가 있은 후 지금의 오사카 평원에 철기 대장간이 확산되고 도기 생산이 급속 확대되었으며 475년 한성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 이주민에 의한 제3이주 시대로 전환되며 백제식의 횡혈식 석실묘가 급속하게 획산된다. 백제 이주민에 의해 국가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다.


##아스카 시대는 고분 시대의 종말기와 겹치기도 하지만, 6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반에 걸쳐 아스카에 궁전, 도시가 세워진 시대를 가리키는 일본 역사의 시대 구분의 하나이다.~6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7세기 전반의 아스카 시대에 일본 최초의 불교 문화가 생겨났다. 


##법륭사는 7세기에 창건되어 고대 사원의 모습을 현재에 전하는 불교시설이며, 성덕태자와 인연이 깊은 사원이다. ~금당벽화는 우리에게 고구려승 담징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의 윈강 석불, 경주의 석굴암과 함께 동양 3대 미술품의 하나로 일본의 불교 회화의 대표작으로서 유명한 것이었지만, 1949년 벽화모사 작업 중 화재에 의해, 아래층 안쪽 벽과 기둥이 타버렸다. 새카맣게 탄 벽화와 기둥은 현존하고 있어, 절 안의 대보장원 동측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비공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성덕태자의 초상화는 사실은 본인이 아니었다. 성덕태자가 없었다고 여겨지는 설에는 '초상화가 본인이 아니다'라고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덕태자의 초상화라고 하면, 일본 최고로 불려 1만 엔짜리 지폐에도 그려지고 있는 등,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이 초상화는 성덕태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촌강 전투~663년 8월 백제의 백촌강 하구에서 백제-왜 연합군과 당-신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이에 관하여 우리 국사교과서에는 단 한 줄만 나온다. 왜군 4만 2000명 참전하여 1만여 명이 전사함으로써 왜국에 가장 큰 패배를 안겨준 전쟁에 대해 국사 교과서가 침묵하는 이유는 동맹국 백제를 원조했다는 사실이 통상적 일본과에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서기』역사 편찬 절대 원칙~ 백제가 본국이었다는 사실 철저히 배제~관련되는 사실 기록, 유적, 유물 및 역사적 인물에 대한 왜곡과 편집~가상의 영웅을 만들어 한반도 이주민 영웅들의 일본 열도에서의 업적 전가~일본 열도에 남아 있던 가야나 신라의 역사를 가리거나 왜곡.


##오늘날의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은, 신도의 제사를 포함해 주요 궁정 의식의 대부분은 천무천황에 의해 집대성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친신라적 성향의 천무천황.~나라 시대 초기에는 아스카 시대 말부터 시작된 일본과 신라 간의 우호 관계가 이어졌다.~720년경부터 두 나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기 시작했다.~『속일본기』에는 이곳에 온 신라 사신들을 그냥 돌려보낸 몇 차례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제국기』에는 성덕왕 때인 720년에 신라가 일본의 서쪽 변방을 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절이나 신사를 방문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절터 안에 옛날에 그 자리에 있던 절이나 신사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겨 놓는 것이다. ~가라구니 신사는 대불전의 동쪽의 대불상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가라구니 산사를 한자로 쓰면 한국 신사이다. 한국 신사는 도다이지를 세우는 데 공로가 컸던 백제계 이주민을 모신 신사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일본의 원효라고도 할 수 있는 행기는 지시키유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승속 혼합의 종교집단을 만들어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빈민구제, 치수, 가교 등의 사회 사업 활동을 했다.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과 흡사하지만 정부의 도움이 없는 민간주도의 운동이었다.~행기는 나라 시대의 승려다. 절과 승려의 수를 늘리고 불법의 가르침을 설해 사람들로부터 독실하게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행기집단이라는 겅슬 형성하여 도장이나 사원 49원, 저수지 15군데, 도랑 9군데, 가교 6곳을 건설했다. ~이 공적에 의해 도다이지의 사성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남아있다.~부모 모두 백제계 도래인이며, 아버지는 왕인이 시조인 일족이었다. 


##일본 열대의 고대는 신과 신사의 나라였다. 일본 열도에 있었던 고대의 신사에는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인격신으로 표현된 자연신 그리고 조상신이 모셔져 있었다. ~따라서 동일한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를 추적하면 특정 이주민 집단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접근법이다.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가야나 신라 이주민의 경우는 그들의 신사가 많지만 백제 이주민의 경우는 그들 집단이 모시고 그들 집단을 대표하는 신사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때 개조한 시도는 전통신도와 모습이 다르다.~그 대신에 백제의 경우는 대규모 불교 사찰이 많다.


##일본 열도로의 첫 번째 이주 집단은 가야계와 신라계다. 그들이 이주해 오던 시기에는 불교라는 종교는 없었고 신을 섬기는 샤머니즘이 팽배했다. 이런 환경에서 수많은 신이 생기고 신사가 만들어진다. 가야와 신라 이주민 집단의 신사가 많은 이유다. 그에 반해 백제의 이주는 가야와 신라에 비하여 늦게 시작되었다. ~백제계 이주 집단은 본국에 있을 때부터 불교가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일본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538년이고 친백제계 아스카왕조가 본격적으로 불교를 국교화한 것은 587년 정미의 난 이후다.~백제계가 주도하는 역사는 헤이안 시대말까지 계속된다.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주도 세력은 사쓰마, 남부의 가고시마와 야마구치의 조슈 세력이다. 이들은 관서 지방에서도 서쪽 끝에 위치하기 때문에 백제 멸망 후에 발생한 백제 유민의 후예들일 가능성이 있다.~일본은 한반도를 두 번에 걸쳐 대대적으로 침략하였는데 첫 번째가 관서 세력을 대표하고 백제 혈통의 후예로 알려진 도요토미의 히데요시 때였고, 두 번째가 관서 세력이 주도해 일어난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제국 시대였다. 필자는 아직도 일본에 백제 후예들의 핏 속에 본토 회복의 욕망이 DNA처럼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해 볼 때가 있다.~한국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된 상태로 유지했던 일본 수상인 아베도 이토 하로부미와 같이 야마구치 출신이다.


##간무천황은 천도를 통해 친신라계 왕족과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794년, 간무천황은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옮긴다. 당시 교토를 헤이안쿄라고 했다 일본 역사상 헤이안 시대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천여 년이 지난 1868년이 되어서야 메이지유신의 결과로 수도는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진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일보의 수도는 교토다. 교토라는 지명이 수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나라에 남아 있던 한반도의 고대 불교로부터 탈피하여 일본식 불교를 세운 역사도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이초의 천태종이다.~일본 종교가 민중속에 뿌리내리게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에 일어난 정토종으로, 이후 여러 종파로 분립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란이 개설한 정토진종이다. 정토진종은 일본 불교 최대의 종단으로 천태종을 이었다. 교토에는 1,600개의 사찰이 있다.~에이사이는 가야계 이주민의 후예다. 참고로 도겐에 의해 창건된 조동종도 선종의 일파다. 일본 불교로서의 'ZEN'을 세계적으로 알린 종파다.


##오미는 백제 멸망 후 망명자들이 집단으로 이주한 곳이다. 백촌강 전투를 지휘했던 천지신황이 전쟁에 패한 후 수도를 천도했던 곳이기도 하다.~다시 말하면 온전한 한반도 이주민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전쟁이 두 번 일어났다. 임신의 난은 서기 672년에 일어난 고대 일본사 최대의 내란이다.~일본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측이 승리한 내란으로 일본국 탄생의 기반이 된 전쟁이다. 또 다른 내전인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이 승리하여 에도막부를 열게 된다. 우리나라 재야사학자 중에는 4세기에 이 지역에서 백제계와 가야-신라계 이주민 간의 전쟁이 있었다고도 한다.


##귀화는 군주의 덕을 흠모해서 신하가 된다고 하는 중화사상이 담겨 있다.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에 온 사람들을 귀화인이라고 총칭하는 것은 본래의 의미에서 무리가 있다는 김달수 씨의 주장으로 지금은 도래인이라고 하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필자는 도래인 대신 한반도 이주민 또는 이주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주민이 신사를 세울 때는 조몬 시대 이래의 성지 위에 세우는 적이 많았던 것 같다.~'피지배자에게 자신의 신과 같은 신을 빌게 해, 지배를 비교적 용이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 지배자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채용해 온 상투 수단이다'라는 논리가 되는 것 같다.


##하타씨는 이주계로서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하였는데 그들은 비단 생산, 즉 양잠 하타오리나 농업 관개 기술을 가진 강점이 있었다. ~핫토리는 하타오리의 줄임말로 하타씨에서 나온 성이라고 한다. 고카나 이가를 본거지로 하고 있었던 닌자 집단은 유명하다. ~핫토리라고 하는 이름의 원조를 찾으면 구레하타오리라는 이름으로부터 하타오리→하토리, 핫토리로 바뀌어 간 것 같다. 하타씨의 '하다'가 '하타'로 변한 것 같다. 그리고 구레하타오리의 구레는 고구려의 구레로부터 왔다고 한다. 이가우에노 지방은 베짜기가 왕성해서 유명한 이가짜기를 고려짜기라고 한다. 


##야마토족은 오오야마즈미, 이즈모, 다카치호의 3파로, 모두 한반도가 발상지다.~이세 신궁은 이즈모대사, 우사 신궁과 더불어 일본의 삼대 신사 중 하나이다.~(필자의 해석)역사적으로 일본국이 세워진 이후에는 이세 신궁이 천황가의 공식적인 종묘로서의 역할을 하여 왔다.~이즈모대사는 신라 도래인의 조상이 모셔진 고이고 우사 신궁은 가야-신라 이주민의 조상이 모셔진 곳이라면 이세 신궁은 원래는 한반도 남부에서의 이주민을 비롯한 해인족의 조상이 모셔져 있던 신사를 그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백제계 이주민이 일본 자체의 독자적인 신사로 바꾼 것이다.


##놀랍게도 일본의 신화는 규슈에서 시작한다. ~야요이 시대 전기의 토기는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 특징적이다. 이들은 총칭 온가가와식 토기로 부르며 북부 규슈의 토기가 벼농사 문화의 확산과 함께 서일본 일대에 퍼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발굴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유경 양익동촉과 구리끌이었다. 또 두 개의 구슬은 아마조나이트제로 한반도에서 산출되고 일본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 돌이었는데, 이 유물둘이 나온 3호 수혈식 주거지는 한국 부여 송국리 유적과 같은 형태의 수혈식이었다. 


##선주 이주민 집단의 자취가 드문 동부 일본에는 조선식 산성이 없다. 서부 일본에 있는 옛 산성을 조선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산성의 입지, 축조법 및 수문 구조가 우리나라의 산성에만 보이는 고유한 방법으로 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선식 산성이라고 명명한 것은 일본학자들이며 지금은 고대 산성이라고 부른다.~이토산성을 신라계 산성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는 역대로 산성의 수호신이었던 산성의 제사신이 신라신이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를 쳐들어온 왜구 중에서 확인된 무리 중의 하나가 마쓰우라당 왜구이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인 1225년경부터 마쓰우라당은 한반도의 고려국에 침입하여 왜구의 근원이 되었다. 


##필자는 일본의 천강 신화의 주인공인 아마테라스나 니니기가 가야 출신의 지도자를 은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돕는 무나카타 세 여신도 가야인으로 추정한다. ~가라이에 라는 곳이 있다. 가라이에란 '한국집'이라는 뜻이다. 일본 발음으로 카라인신이 같은 카라라는 발음의 한과 통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이에는 국가의 가와 통한다. 가라이에 향의 위치는 무나카타군 쓰야자키정에 있는 가라보 즉 한국동네라는 곳에 비정된다.~고대 일본에서 한반도계 이주민에 하타씨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말 바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반도의 하타씨를 '파타'로 표기하는 것은 '하타'와 관계된다.


##'민달천황'의 대에 불상을 속히 카라구니에 갖다 버려라'라고 한 기사가 실려 있다. 이것은 『고사류원』의 편찬자들이 고대 시기에 규슈의 풍국을 일본 사람들이 카라노구니 즉 한국라고 읽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역사적 사실은 일본에 불교를 맨 먼저 전한 나라가 백제나 신라였기에 불상을 가지고 간 나라를 카라구니로 읽었던 것이며 그를 풍으로 표시하고 카라로 훈을 달았던 것이다.~말하자면 풍국이란 카라구니, 즉 한국을 가리킨 말인데 그것은 한국이 풍요한 나라, 금은보화가 가득한 나라라는 뜻에서 풍요한 나라는 카라구니라는 대명사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며~일본인의 말처럼 풍을 옛날부터 일돤하게 '도요'라고만 읽어 왔다면 이 백제승 풍국의 이름은 일본말로 카라구니가 아니라 도요구니로 읽어야 할 것이다.


##아라히토란 가야인이라는 의미다.~일본의 초대천황인 신무천황은 신라인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신무천황은 신라 이주민의 리더를 모델로 재구성된 인물일 것이다.


##아리타에서 전철로 약 30분 거리의 이마리 근교에는 나베시마번의 전용 가마가 있었던 오카와치야마 마을이 있다. 고도의 기술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험준한 바위산 속에 가마를 만들었다고 한다.~아리타야키의 시조는 조선 사람 이삼평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조선인 포로로 일본에 끌려온다.~그의 조선 이름이라고 알려진 '삼평'은 일본 이름인 '산베이'를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복원하여 추정한 것이다. 메이지 시기의 연구자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표현으로, 1917년에 도조 이삼평비가 세워지면서 그의 이름이 이삼평으로 통용된 것이다.~다만 성을 가네가에金江로 지은 것을 보고 충청도 금강부근으로 추측할 뿐이다. 조선에서 도자기로 유명했던 고을은 경기 이천, 전남 강진, 경남 김해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 지역 출신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나주나 익산이 가깝고 서해안을 거쳐 바닷길로 쉽게 규슈 서부의 히고 지방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백제왕이 익산이나 나주에 준 것과 똑같은 금동관이나 금동 신발을 규슈 히고 지방에 있는 백제 세력의 수장에게 주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춤추는 신녀』의 저자인 이종기 씨가 일본어로 쓴 『히미코 도래의 수수께끼』라는 책이 있다. 이씨는 이 책을 통하여 일본인들이 개국 시조라고 믿는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이 한반도인으로 가야국 수로왕의 딸이라는 가설을 주장했다.~아마테라스의 자손인 니니기가 지상의 나라인 아시하라나카쓰쿠니의 평정 임무를 받아 휴가에 강림하였다.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를 흔히 호노니니기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니니기는 아마테라스의 지시에 따라 옥구슬, 거울, 신검 등의 신령러운 물건 세 가지를 들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 오는데 이를 천손강림이라 한다. 단군 신화와 같은 내용이다.


##동종의 명문이 한중일 동북아 삼국 중에서도 조선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류큐는 조선에 각별한 호감 아니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류큐국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왜 류큐국은 명문에 삼한이라 표현된 한반도를 애틋하게 생각하는가?~우산국 주민의 이주설. ~당시 우산국 주민들은 마한과 백제, 고구려 계통으로 추정되는 천손씨로 불리던 집단으로 울릉도에 풍부했던 느티나무로 만든 선박을 타고 오키나와에 도착한 뒤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 670년간 왕위를 유지했으나 1187년 국왕이 신하에게 살해된 뒤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


##삼별초의 오키나와 이동설~구스크로 불리는 성들~13세기 말에서 14세기에 걸쳐 갑자기 오늘날 오키나와에 산재하고 있는 비슷한 모양의 수많은 구스크가 만들어졌다.~삼별초가 제주에서 마지막으로 무너진 것이 13세기말이고 우연인지 이때를 즈음하여 갑자기 류큐섬에 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민속적으로도 관련 있는 사례가 몇 개 있는데 삼별초가 항쟁했던 진도에서는 모내기나 논매기를 할 때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머리에 담쟁이넝쿨이나 칡넝쿨을 감는 풍속이 있다. 오키나와의 도작의례때 신제무당인 신녀가 신맞음을 의미하는 나뭇잎이나 풀넝쿨을 머리에 감는 것과 흡사하다.


##홍가와라는 류큐제국의 봉건 세력에 맞서 농민들을 위해 투쟁했던 인물이다. 오키나와에서 추앙받고 있는 '아카하치'가 홍길동과 동일인이라는 설은 처음에는 오키나와 측에 의해 제시되었다. 홍가와라가 홍길동이라는 것이다.~홍길동은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서남 해안과 전라, 충천권, 특히 공주를 근거로 의적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던 실존인물이다. 극형을 면한 홍길동은 곧바로 일당과 함께 출국, 겨울 북풍을 타고 오키나와 열도의 최남단 하테루마섬에 처음 정착한 뒤 '아카하치'라는 이름으로 이시가키섬, 구메섬 등 여러 섬을 옮겨 다니며 의적 활동을 벌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연구팀은 밝히고 있다.


##제주도의 당은 주변 나무들에 천을 둘러 늘어뜨리고, 성황신도 나무 등에 백지나 새끼줄을 두르게 한다. 놀랍게도 나무 끝에는 나무새 형상물을 붙인다. 새가 있는 것이다. 일본 열도의 신사나 축제에서도 흰 종이를 접은 종이걸이나 새끼줄을 쳐 결계를 마련한다. 그리고 신사 입구에 세우는 것이 '도리이'鳥居(새의 형상물은 없지만)다.


##대마도의 호족~선대구사본기 국조본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쓰시마 아가타아타이는 쓰시마국을 본거지로 한 고대 일본의 호족으로 쓰시마국의 국조이기도 다. 아가타아타이라 하는 것은 조정에서 아타히라는 성을 받은 현주다. 아타히는 국조급의 성이다.~아마테루란 아마테라스와 다름이 없으며, 중근세에는 신불습합에 의해 조일권현이라고 불리었다. 이 일신을 조상으로 한 대모도의 고족은 위지, 왜인전에 대마도의 대관 '히코'라고 기록된 그 히코의 후예로 여겨진다. ~실질적으로는 일본 고대사가 규슈의 다카마가하라가 아니라 대마도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해 주는 일례이다.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만든 사람이 대마도의 신화나 전설을 이용했다고도 할 수 지만 그렇게 한 저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즉 대마도는 일본의 기원이 되는 지방인 것이다. 다만 신생국인 일본국이라는 국가의 아이덴티티 문제로 한반도로 신화를 확대하지 못하고 국경의 끝인 대마도에서 신화를 종결한 것은 이해가 된다.


##BC 3세기 한반도의 남쪽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 열도 전역에는 이십여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북방계의 아이누족이며 일부 남방계인 하야토 족도 있었다. 이즈음부터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로의 인구 이동이 시작된다.~이주 루트가 달랐던 고구려계는 서기 400년을 전후하여 한반도 동해를 건너 나가노 방면으로 들어와 800년이 될 때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교토 방면과 도쿄평야로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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