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란 단어를 들려주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제일 먼저 할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우선 대한민국은 입양수출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 국내입양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한민족, 한핏줄의 힘이라는 걸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에게 버림받고 낯선 타인들의 손에 내맡겨진다면 그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을까. 자의건 타의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그 다음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불행하다는 생각은 내가 딸아이를 낳고난 이후다. 조막만한 입술로 옹알이를 하듯 "엄마!"라고 부르면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부터 슬픈 이야기일까봐 조마조마했다.

조마조마한 나의 가슴은 페이지를 넘길 적마다 차분하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책의 뒷표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가족은 운명적으로 주어지고 완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

새로운 가족, 핏줄의 힘을 넘어서서 끝없는 애정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 서로를 보듬고 할퀴고 다시 보듬는 경험. 그 경험은 가슴으로 사랑을 하는 이들만이 겪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이 짧은 소설의 주인공 하늘이는 입양아이다. 아픈 아이들은 국내입양이 더 힘들다고 하는데

멋진 부모님의 선택을 받아 하늘이란 이름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실상 하늘이의 속내는 이렇다. 웃는 가면을 쓰고 그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해마 한 마리를 가슴에 안고 있다. 초등학생 6학년이면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때,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알았다고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되는 때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더 신경이 쓰일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은데 엄마의 마음과 자꾸 핀트가 어긋난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는 끊임없이 구박을 해대고. 유일한 편이라 여길 수 있는 아빠 곁에 있으면 하늘이 가슴 안에 살고 있는 해마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또다른 입양아 한강이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하늘이는 한 단계 성숙해진다. 엄마와의 갈등이 터지고난 후에야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잔소리가 실은 애정의 또다른 표현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하늘이가 동생을 얻게 되는 결말로 이 작은 소설은 끝을 맺는다.  하늘이의 심장에서 사는 해마는 앞으로 웃음보 터질 일만 남았다. 이 작은 소설을 읽는 내내 내 가슴은 한없이 따뜻해졌다.  낯선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낯선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심성을 가지고 있다.

 

김려령 작가는 짧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 그 따뜻한 인간애를 심어놓았고 노석미 그림작가는 화려하지 않은 심플한 몇몇 색조만으로 해마의 주변환경과 해마의 마음상태를 담백하게 그려놓았다.

앞으로 '입양'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면 나는 해마 한 마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 작고 여린 해마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가여울 정도로 굳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주변의 정성과 사랑으로 튼튼해지고 한층 아름다워지리라.

여건이 좋아야 입양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고 있는 가난한 이들도 있다. 아니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가난한 아이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하늘이의 작고 여린 해마가 많은 사람들의 텅 빈 가슴에 한 줄기 바람과 같은 떨림과 빛을 선물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불행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웃고 또 웃기를, 울면서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