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1. 깃털 달린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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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2
글쓴이
알프레트 되블린 저
시공사
평균
별점8.7 (6)
수연

끔찍하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이동 서적 상인이 길거리에 서서 자신의 수입이 형편없음에 대해 욕을 하고 있자니 체자르 플라이슐렌*이 책을 실은 수레로 다가왔다. 그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상인의 젖은 어깨를 툭툭 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욕을 그만두고 마음에 태양을 지녀요."


그는 이렇게 위로하고는 사라졌다. 이것이 그의 우명한 태양시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 태양을,


물론 그와는 다른 태양 하나를 비버코프도 속에 지녔다. (384)


 


*서정 시인  


프란츠는 왜 라인홀트에게서 멀어지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애인 미체가 라인홀트의 손에 살해되고,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형사에게 잡히고 부흐 정신병원데 당도, 다시 정신병원에서 나와 거리의 자유를 맛보기까지 궁금했던 점은 그것 하나다. 죄는 항상 네 안에 살아숨쉬고 있으니- 이런 예언적인 조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걸까. 우리의 프란츠는. 살아있는 생생한 기쁨을 손에 쥐고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데 아직 행복이라는 걸 맛보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까닭을 알 수 없는 웃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선 주먹이 운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다른 사람의 행복까지 빼앗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게 진정으로 살아가는 거야,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한가득하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될까. 라인홀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모든 것들이 소급될 수 있다면, 그런 소급 과정을 바란다면 그야말로 정말 철부지 같은 짓거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방이 새카맣다. 그녀의 얼굴은 맞아 죽었다. 이빨도 맞아 죽고, 눈도 맞아 죽고, 입도, 입술도, 혀도, 목도, 몸도 다리도, 자궁도, 난 당신 여자, 당신이 날 위로해줘야 해, 경찰 관할구역 슈테틴 정거장, 아싱거. 난 몸이 좋지 못해요, 이리 와, 우린 곧 집에 닿을 거야, 난 당신 여자. (222)


이건 비단 남자만의 사랑인 걸까.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자는 항상 진실을 말하고 항상 진실을 듣고자 하는데 남자는 그렇지 않다. 진실만을 듣는다면 여자의 거짓말 속에 뒤섞인 진실만을 잘 헤아려서 듣는다면 오해 같은 건 생기지 않을 텐데,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하지는 않을 텐데, 마치 눈뜬 장님처럼 여자를 바로 코 앞에 두고도 엉뚱한 곳만을 향해 팔을 내미는 꼴이잖아. 문학 작품 속의 남자들은 그래도 현실의 남자들보다는 좀 더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라인홀트, 그마저 사랑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 서정 시인이 마음 속에 태양을 품으라고 했을 때 라인홀트 역시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것도 진심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 하지만 나는 변할 수 없는 인간, 그러니 대신 욕설을 내뱉으면서 그 태양을, 사랑의 광휘를 얻고자 했던 게 모든 불행의 사소한 어긋남의 출발이었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까. 이런 치졸한 변명을 꼭 해야만 하는 걸까. 여자는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미체가 아무리 라인홀트에게 욕설을 하며 프란츠에게 손을 내밀어봤자 프란츠는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 손을 대신 라인홀트가 잡아 여자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사랑과 모든 시간을 빼앗기고만다. 누구에게 화살을 날려야 할까. 이럴 때, 이런 경우, 아무도 책임을 대신하려하지 않고 프란츠는 라인홀트를, 라인홀트는 프란츠에게 화살을 겨누려 할 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겠노라 할 때 죽은 미체의 시신은, 이미 생명을 빼앗긴 미체의 두 눈은 누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까.


 


경쾌하게 이어진다. 프란츠 비버코프는 실수로 애인을 죽였다. 죽지 않을 정도까지 때렸는데 그만 죽고말았다. 그리고 감옥으로 갔다. 4년이 흘렀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으로 간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사람들과 잘못 어울린다. 팔을 잃는다. 외팔이가 되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죽음의 신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프란츠는 일을 하며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이런 사랑은 내 평생 처음이야, 이런 여자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이 여인을 놓치지 않겠노라 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식으로 영원이란 말과 뒤섞이려 하지 않는다. 팔을 가져간 라인홀트는 그의 애인 미체마저 가지려하고 미체는 모든 진실을 아는 순간 거세게 라인홀트에게서 나오려고 하지만 라인홀트는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니고 있다. 미체는 사랑도 목숨도 잃는다. 진실한 사랑이 사라지고난 후에야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된 프란츠는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쉬이쉬이 모든 것들을 품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태양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살아 돌아온 프란츠. 경비 보조가 되어 다시 삶의 광장 안으로 돌아왔다. 여기 한 인간이 있다. 자신의 두 다리로 굳건히. 가슴 안에는 여전히 태양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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