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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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글쓴이
김초엽 저
허블
평균
별점8.8 (1315)
waterelf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겉보기에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는 과학소설 SF지만각각의 단편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게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담론(談論)이 커서 이 짧은 지면에 7개 모두를 다루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이야기는 장애와 비장애정상과 비정상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순레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였다.

 

이 이야기는 데이지가 소피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소피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괜찮다면 대신 이야기를 전해줄래여전히 그분들을 많이 사랑한다고하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야.

너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할 거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시초지’로 가고 있어맞아우리가 순례를 다녀오는 그 장소를 말하는 거야.” [p. 9]

 

언뜻 보면 명절에 고향을 가는 이가 남기는 편지의 서두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천재 과학자 릴리 다우드나(이하 릴리’)로 인해 ‘완벽한’ 유전자의 선택이 가능해져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난 신인류와 그렇지 못한 비개조인이 살고 있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어떻게 보면 익숙한 배경이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도 유전자 선택에 의해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의 상층부를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의 하층부를 구성한다정확하게는 열등인자를 가진 이가 사회의 하층부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렇다면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내면 어떨까그렇다면 차별 없는 세상이 만들어질까? ‘신인류를 만들어낸 생애 초/중반기의 릴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이는 훗날 올리브가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발견한릴리의 마지막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릴리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증오한 것으로 보인다릴리에게는 나와 같은 질환얼굴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흉측한 얼룩을 남기는 유전병이 있었다지구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릴리를 마음껏 멸시하고 혐오할 수 있는 하나의 낙인이었다.

이민자의 딸그리고 흉측한 외모를 가진 음침하고 삐쩍 마른 소녀릴리는 생애 초반기에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 듯했다.

중략 ~

릴리가 하필 인간배아 디자인에 손을 대게 된 계기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릴리는 태어나는 아이에게 아름다움을아무런 병도 갖지 않고 오직 뛰어난 특성들로만 구성된 삶을 선물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선행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결과적으로 릴리의 배아 디자인 연구는 세상을 배제의 층계로 나누었을 뿐” [pp. 44~45]이었다.

 

릴리의 착한의도와는 반대로 그녀는 훗날 시초지라고 불리는 지구를 차별과 배제가 판치는 디스토피아 혹은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녀의 나이 40대 중반에 그녀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자신의 인간배아 디자인 기술을 이용해 만든 올리브에게 자신과 동일한 흉측한 얼룩이 생길 것임을 확인하고올리브를 위해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지구 밖에 조성된 마을은 장애도차별도혐오도 없는 그리고 사랑도 없는 일종의 ‘유토피아’가 된다하지만 마을도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혹은 미성숙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아마도 그래서 성년이 되면 순례라는 이름의 성인식을 하는 관습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한 곳에 모아 둔다고 그들이 행복할까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게토에 갇혀버린 유대인들처럼동물원에 갇힌 다양한 동물처럼 사회에서 격리되고 구경거리가 된 것이 아닐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사회에서 격리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아마도 그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머지 않아 미치거나 죽어버릴 것이다.

 

마을의 순례 관행은 그런 불행을 막기 위한 장치였을 지도 모른다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은 현실의 우리가 어떻게 보면 혐오와 차별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중략 ~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내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우리의 원죄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레자들은 알게 되겠지.” [pp. 52~53]

 

이 소설에 나오는 순례자들은 어쩌면 우리가 눈 돌렸던 수많은 선구자들처럼 끊임없이 고통과 슬픔을 나누며 변화를 지향하고 있을 것이다분명 그 길은 가시밭길일 것이다하지만 웃으며 걸을 수 있는 가시밭길일 것이다데이지의 편지 마지막 부분처럼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p.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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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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