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elf
  1. 歷史/人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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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스페인사
글쓴이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 외 1명
글항아리
평균
별점8.3 (7)
waterelf
스페인, 하나의 국가인가
 
얼마 전에 읽었던 <중앙아시아, 막이 오른다>라는 책을 펼치면,

소비에트 이전까지 중앙아시아 대부분 나라는 단일한 민족국가라기보다는 씨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연방이 해체된 뒤 각각의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되자, 이제 하나의 민족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을 결합시킬 구심점이 필요하게 되었다.1)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단일민족 국가에 태어나고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국가가 나서서 이렇게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모습은 ‘근대적’ 국경(國境) 개념이 희박했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절대왕정(絶對王政)을 처음 꽃피웠다고 여기지는, 서유럽의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스페인 내전 이후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이하 ‘프랑코’) 총통은 ‘스페인은 하나’임을 내세워, 우리에게 스페인어로 알려진 카스티아어를 제외한 각 지역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탄압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각 지방이 독자적인 언어와 역사, 전통을 가지고 있으니 이에 대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바스크 분리주의자’나 ‘카탈루냐 분리주의자’처럼 ‘분리 불가능한 국가로서의 스페인’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심지어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의회는 ‘카탈루냐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카탈루냐 지역이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 680~741)에 의해 프랑크 왕국의 속국이 된, 아키텐 공국(602~1453)의 지배에 반항하기 위해 지역 유력자들이 바르셀로나와 손잡고 형성한 바르셀로나 백작령에서 기원했다는 점에서 이런 중앙집권에 대한 반항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기원(起源)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를 포르투갈과 공유하는 근대국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곳의 지리적 용어는 모두 복잡한 역사를 지닌다. 그리스인은 이 반도를 이베리아(Iberia)라고, 로마인은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다. 로마제국 말기부터 8세기까지 사용된 스페인(Spain)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현실보다 편의에 따른 용어였다. 이곳의 영토와 민족들을 묘사한 다른 용어들은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무슬림이 스페인을 장악했던 시기에 그들은 반도에서 손에 넣은 지역을 알안달루스(al-Andalus)라고 불렀고, 이 단어가 이르는 지리적 범위는 이슬람 세력의 통치하에 팽창하다가 종국에는 축소되었다. 중세 유대인들은 이곳을 세파라드(Sefarad)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 스페인에는 수많은 왕국과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중세 말에 이르러 반도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다. 카스티야의 통치자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통치자 페르난도 2세의 결혼은 스페인이라는 근대적 국가 개념의 기원이 되었다. [p. 13]


즉, 스페인은 처음부터 지방자치적 성격이 강한, 연방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오랫동안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왔다. 예를 들면, 한때 스페인의 황제를 칭했던, 나바라 왕국(Reino de Navarra, 824~1841)의 산초 3세(Antso Ⅲ, 재위 1004~1035)는 그의 자식들에게 나바라, 레온(Leon)-카스티야(Castilie), 아라곤(Aragon)을 나눠주었고, 이들은 상당기간 서로 견제하면서 존속했다. 산초 3세의 차남이자 카스티야의 백작 겸 레온의 국왕인 페르난도 1세는 자신이 확장한 영토를 그의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페르난도 1세의 차남 알폰수 6세는 그의 아버지가 나눈 카스티야, 레온, 갈라시아(Galicia)와 포르투갈 백작령을 재통합했다. 이런 식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왔다.

오늘날 이베리아인과 전 세계 스페인어 화자들은 중세 카스티야에서 쓰이던 언어에서 유래된 카스티야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스페인인 외에는 대부분 이 언어를 스페인어라고 부른다.

~ 중략 ~

반도의 로망어들 가운데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의 공용어이고, 가까운 사촌 격인 갈리시아어는 지역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출판계에서 사용되며 스페인 서북부에서 부활하고 있다. 카탈루냐어는 수많은 카탈루냐 주민의 모국어로 교육과 대중매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카탈루냐어는 프랑스 남부의 중세어인 오크어, 즉 프로방스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 중략 ~

가장 특이한 언어는 바스크어(에우스케라(Euskerra)어)다. 이 언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구어이며,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무렵 언어가 쇠퇴하자 바스크 지식인들은 바스크어를 다시 사용하고 이전에 미흡했던 문어체를 발전시켰다. 그 후 에우스케라어의 사용은 바스크 민족주의로, 스페인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기 위한 다양한 모색으로 연결되고 있다. [pp. 15~16]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오늘날 스페인은 스페인어로 알려진 카스티야어 외에 옛 왕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17개의 광역자치주(Comunidad Autónoma)가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은 연방의 성격이 강한 미국 못지 않은, ‘연방국가’의 성격을 띄고 있음이 드러난다.


스페인,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다

아마도 스페인이 국민 스스로가 ‘스페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되려면, 소수 언어와 문화 등에 대해 프랑코 총통 이상의 강력한 탄압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예컨대 베트남의 경우 불교를 믿는 비엣[越]족이 지속적인 남진(南進)을 통해 중부와 남부를 병합했다. 그런 후,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 문화, 민족들을 포용하는 대신 배제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말레이계 참족에 대한 민족말살정책이다. 그 결과, 한때 참파 왕국(192~1832)을 형성하고 베트남 중남부를 장악했던 참족은 베트남 내에서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프랑코 정권이 지속되었다면, 스페인에 있어서 베트남의 얘기는 남의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은 신앙,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적 계층, 직업, 가문의 내력 등을 근거로 또는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해 본인이 무엇에 진정으로 충성하는지를 규정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자기가 살고 있던 지역을 장악한 진영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한 진영에 서서 싸우려고 다른 진영의 통제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목숨을 걸었다. 다른 곳의 내전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내전은 가족과 공동체를 산산이 부숴놓았다. 강한 신념, 공포, 개인적 반감, 야심, 비겁함, 혹은 온갖 수많은 다른 동기로, 이웃들은 서로를 공격했다. 내전은 억압된 분노와 과거의 증오 곁에 참상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만들어냈다. [p 341]

 
이런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권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을까? 프랑코 총통의 후계자로 등장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지방자치를 존중하는, 입헌군주정을 추구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스페인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가 정서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나가는 등 프랑코 정권의 유산(遺産)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불행했던, 그리고 잊고 싶었던 과거를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Cuéntame como pasó)>라는 제목의 주말 드라마는 가공의 알칸타라 가족 이야기를 몇 세대에 걸쳐 풀어놓는다. 이야기는 프랑코 정권 말기인 1968년부터 그들을 따라가면서 현재로 이어진다. 드라마 방영이 시작된 이후 매주 목요일, 스페인의 저녁 식사 시간인 밤 10시, 자신들의 삶과 조국의 최근 역사를 다룬 이야기가 펼쳐지면 수백만 명의 스페인 사람이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꼼짝 않고 앉는다. 노련한 작가, 프로듀서, 배우로 이루어진 팀이 얽히고설킨 역사를 인간애와 더불어 균형 있게 묘사하는 이 시리즈는 압도적인 성공작으로서 그 자체로 사회적·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p. 393]



 
1) 김주연, <중앙아시아, 막이 오른다>, (파롤앤, 2025),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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