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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구려’는 「바람의 나라」에 없었다


 


김진의 세계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신수들은 개인의 운명이 형상화된 존재들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운명도, 능력도 아니며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


 



 

<태왕사신기>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 이건 「바람의 나라」의 표절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시놉 단계에서 「바람의 나라」에 저작권을 협의하려 한 일이 있고, 애초에 ‘어떤 수준에서건 참고로 해서 만들어진 드라마라면 정당한 값을 지불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소송 원고 측의 의견도 당연히 납득이 간다. 혹은 애초에는 닮은 구석이 상당히 많았던 시나리오와 공개된 드라마가 거의 완전히 다른 점을 봐서, 저작권 시비가 있은 후 ‘닮은 구석이 없도록’ 열심히 시나리오를 수정한 듯도.
닮아 있지 않다는 것은 단순히 설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왕사신기>는 따지고 보면 김진이라기보다 김혜린적이고, 김혜린적이라기보다 신일숙적인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시계>에서 이미 송지나 작가의 극본은 김혜린과 뚜렷한 접점을 보여준 바 있다. 비운의 역사가 있고, 고상하지만 하층계급과 함께 웃을 줄 아는 주인공이 있으며, 혁명가들이 있다. <모래시계>와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꽤 닮은 점이 많았다. 적어도 <실미도>와 「공포의 외인구단」이 닮은 정도는 되었으리라. <태왕사신기>는 굳이 비교하자면 신일숙이다. <태왕사신기>의 상고시대 여전사들을 보면서 어라, 어딘가 신일숙…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꼭 나뿐이었을까. 그리고 전체의 분위기는 「리니지」를 연상시킨다. 정통의 왕이 될 만한 자가 가짜 왕을 이기고 왕이 된다는 것.
이제 다시 「바람의 나라」와 김진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김진이 한국 순정만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이 두 대가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고, 그것은 단순히 플롯의 차이가 아니라 내면에 자리한 풍경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김진의 경우, “주인공이 왕이 되는 성공담”이나 “여성이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담”은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김진은 신일숙과 차별되는 작가다. 또한 김진은 어떤 여인의 비련을 말하지 않는다. 비운과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순수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 남자는 죽어버리는 그 여인 말이다. 그래서 김진은 김혜린과 다른 작가이다. 요컨대 김진은 고난을 이기고 승리(신일숙)하거나, 고난을 이기고 초극(김혜린)하지 않는다. 김진 작품의 주인공은 고난 속에서 고난 그 자체가 되어 동상처럼 굳어지거나, 그러기에는 너무 순수해서 부스러진다.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태왕사신기>의 상고시대 여전사를 보면서(기하, 새오) 신일숙이 자주 등장시키는 여전사를 연상한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진은 확연히 남성 중심적인 세계를 그려왔다. 남자들은 ‘국가’를 건설하고, 여인들은 그 안뜰에 앉는다. 야심을 가진 여인은 왕의 옆에 앉아 그 귀에 독의 혀를 기울이고, 야심이 없는 여인은 피의 폭풍을 피해 뒤뜰 정원에 앉는다. 제국의 바깥에는 원귀들이 가득하다. 고구려 왕 유리는 부여의 눈치를 보며 태자에게 자결을 명한다. 둘째인 무휼(대무신왕)은 바로 그것, 아비가 아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며 자라났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아들 호동에게 죽으라 명한다. 이것이 김진이 말하는 ‘국가’이자 ‘남성들의 세계’이며, ‘세계의 심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결코 ‘별의 운명을 받아’, ‘만백성의 환호 아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런 ‘심상 이미지적 세계’와 ‘한국적 가부장제’에 대한 통찰이 김진을 천재 작가로 만들었다. 「바람의 나라」를 두고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역사를 다루었다고 마케팅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솔직히 틀렸다. 「바람의 나라」는 도리어 ‘가족’과 ‘가부장제’, ‘왕권’이라는 테마에 대해 깊이 숙고하여 우리가 지나온 80년대가, 그리고 고구려가 실제로 어떤 감정적 폭력 속에 일구어져온 것인가를 숙고한다. 그 안에는 너무 많은 피와 눈물을 보아 이제 웃는 것조차 잃어버린 남자들로 가득하다. 김진의 세계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신수들은 개인의 운명이 형상화된 존재들이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운명도, 능력도 아니며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 왕자 호동은 ‘봉황’의 신수를 가지게 된다. 봉황의 신수는 아버지 무휼의 청룡과는 서로 ‘살성’ 관계다. 그래서 그는 죽는다. 그것이 김진이 말하는 ‘고구려’다.
그렇다면 김진은 ‘반(反)민족주의적’인가? 아니, 오히려 ‘탈(脫)민족주의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김진이 보여주는 국가와 가족에 대한 애증은, 지나치게 델리케이트하고 또한 드라마 플롯으로 잘 정리되기 어렵다. 「바람의 나라」의 KBS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우려스럽다. 지금까지 드라마화된 고구려 관련 사극은 모두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진의 「바람의 나라」는 그들 사이에 놓이지 않는 작품이다. 그래서 과연 작가의 의도를 살리면서 드라마화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공개된 <태왕사신기>는 김진과는 전혀 무관한 작품이었다.


 


김남훈 「판타스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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