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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배우. 이전까지 배우 박희순을 수식하는 꼬리표였다. 그런 그가 <얼렁뚱땅 흥신소>의 매력적인 ‘깡패’ 백민철로, <세븐데이즈>의 정이 가는 ‘비리’ 형사 김성열로 돌아왔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으로 드라마는 무게를 잡고, 영화는 한결 가벼운 템포를 선사받았다. 시청자들은, 또 관객들은 지금 미처 알지 못했던 ‘원석’의 배우를 발견한 기쁨에 들떠 있다. ‘변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이미 연기경력이 너무 많은 베테랑 배우. 게으름 피우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온 십 수 년의 ‘연기계단’ 그 탄탄한 계단을 따라가본다.


 


 


 


「드라마틱」에서 최근 가장 만나고 싶은 배우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20대부터 30~40대까지 박희순을 들더라. 요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강동원 같은 꽃미남 배우 앞에 붙는 ‘완소’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니던데.
조만간 거품이 빠질 거다.(웃음)



거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뜨거운 지지다. 미니홈피 방문자 수가 하루 1천 명이 넘는다던데.
어리둥절하다. 보통 하루 열 명 정도가 오가던 홈피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으니까 뭐가 잘못된 건가 싶다. 처음엔 <얼렁뚱땅 흥신소>의 팬들이 많았다. 작품에 대한 사랑을 나한테도 조금 나눠줬던 것이다. 그러다가 <세븐데이즈> 개봉하면서 사람들이 늘고, 이 둘이 섞인 결과다. 단순히 내 인기가 많아졌다기보다는 두 작품이 모두 잘돼서 생긴 결과다.



작품이 잘된 이유도 있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워낙 돋보이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 역할이 좋았다. <세븐데이즈>의 ‘성열’ 같은 경우, 남자라도 저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멋지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은 남자들이 느끼기에는 닭살멘트도 많고 나쁜 점도 있는데 여자분들은 백민철이 희경(예지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봐주시더라. 나 역시 그렇게 연기를 했다. 희경을 매몰차게 차버릴 때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면면에 애정을 보여주시지 않았을까. 또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어머니 앞에서 흔들릴 수 있는 모습까지 여러 가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캐릭터였다.



‘청초하신 외모의’, ‘정신없이 소중하신’, ‘로맨티스트’ 등 낯간지러운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어떤 평가가 가장 인상적이던가.
고등학생들이 자꾸 오빠라고 그러니까 민망하다.(웃음) 심지어는 홈피에 한번 들어가봤더니 중학생도 오빠라고 하더라. 삼촌이라는 호칭도 있고 아저씨라는 호칭도 있는데 중학생이 오빠라고 하니까 참 할 말이 없다.



‘로맨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역시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의 공이 크다. 처음엔 백민철 캐릭터를 거절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고 하던데.
처음 6회까지 대본을 받았는데 그것만 보고는 감을 잡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못하겠다고 고사를 했는데 함영훈 감독이 또 전화가 와서 “7~8회가 나왔다. 이건 죽인다. 당신, 이걸 보면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고 설득하더라. 어떤 감독이 배우를 세 번이나 설득하겠나. 거기에 일단 감동을 받아서 흔들리고 있는데 예지원이 와서 끌어당기더라. 벌써 희경이는(예지원은) 백민철에 빠져 있더라. 박희순을 백민철에 대입시켜서 “백민철 너무 멋있다. 해야 된다. 이걸 놓치면 오빠는 바보다”라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나도 세뇌가 되었다. 작품은 운명인 것 같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을 어떤 사정 때문에 못하기도 하고, 이게 과연 나한테 올까 하는 작품을 한 경우도 있다. 그 당시에는 ‘아, 이 정도 되면 운명이구나’ 싶더라.



 


어느 인터뷰를 보니 “TV가 제일 어렵다”라고 하던데, 매체에 대한 부담이 컸던 건가?
작품 고사한 게 알려지면서 내가 잘난 척하느라 작품을 거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려움이 컸다. TV가 처음인데다 완성된 대본 없이 캐릭터 분석을 해야 하는 게 만만치 않겠더라. 빠른 스케줄이나 템포에 과연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괜히 처음 하는 배우가 나와서 욕이나 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현장에서 그런 걱정이 현실이 됐나. 드라마는 영화보다 훨씬 템포가 빠른데 그 차이를 실감하겠던가.
오히려 템포는 <세븐데이즈>가 훨씬 빨랐다. 카메라가 두 대에다 한 테이크 가면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이동을 하기 때문에 무대가 사방이라 게릴라처럼 뛰어다니면서 연기를 해야 했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그에 비해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사실 어려웠던 건 내가 뒤늦게 촬영에 투입됐다는 점이다. 서로 대화하고 작품을 같이 시작했으면 캐릭터 잡기가 편했을 텐데 난 중반부터 등장했다. 다른 친구들은 5회부터 벌써 날아다니고 있는데 뒤늦게 가서 폼 잡으려니까 어색하고 힘들더라. 괜히 이러다가 욕이나 실컷 먹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초반에 TV 모니터를 하면서 식은땀이 막 나더라. 시청자들은 모를 수 있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창피하고 땀나서 TV를 볼 수가 없더라.



 


방송은 혼자 봤나.
집에서 봤는데 어머니하고 동생은 마루에서 보고 나는 문 꼭 닫아놓고 방 안에서 봤다. “아, 저걸 어떡해” 하면서 봤다. 처음엔 TV에 나온 내 얼굴에 대한 적응도 필요하더라. 모니터로 적나라하게 내 얼굴을 보면서 ‘내가 왜 저걸 했을까’부터 시작해서 별 생각이 다 들더라. 촬영감독님이나 조명감독님도 내 얼굴에 대한 적응 기간이 필요하셨을 거다.(웃음) 다행히 7회, 8회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도 조금 적응이 되고 캐릭터도 안정이 되었다. “영화가 더 낫다”라던 동생도 중반 가서는 “왜 오늘은 조금 나왔어?”라는 말도 하더라.



 


처음과는 달리 드라마에 대한 매력이 생겼나 보다.
하다 보니 그렇더라. 나는 이 장면에 대해서만 최선을 다했는데 다른 장면에서 용서받는 장면이 나오거나 그러면, ‘어, 그렇지. 얘가 그럴 리가 없지’ 하고 안도하게 된다.(웃음)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는 거다. 스스로는 악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하니 관객들이 나중에 공감을 할 수 있는 거다. 캐릭터가 O, X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모도 가질 수 있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가족>에서 비열한 깡패 역할을 한 이후, 계속 비슷한 역할들이었다.
영화는 아무래도 그 배우한테 인정된 부분을 보고 캐스팅을 한다. <귀여워>부터 조폭 역할을 한번 하니 계속 그쪽으로만 제안이 들어오더라. 그래서 변화를 시도한 게 <남극일기>, <러브토크>, 또 개봉은 안 했지만 <바보> 같은 작품이다. 나름대로는 연기 톤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남극일기>가 흥행이 안 됐고, <러브토크>는 그것보다 더 안 됐고, <바보>는 개봉도 안 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박희순은 그나마 알려진 <가족>으로만 기억되고 깡패로 남는 것이다.


 


백민철 역시 깡패라 처음에 거절한 것도 있었다던데, 다른 깡패와는 다르던가.
함영훈 감독이 뒤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표현되고 절대 깡패처럼 안 그릴 자신이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깡패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한 번 힘줄 때를 대비해서 가자고 하더라. 처음엔 비열해보여도 희경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감정, 사연들이 있는 인물이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크게 잡아 백민철을 해석했다. 백민철이 희경에게 함부로 할 때면 ‘아, 이 자식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희경이 목을 조를 때 ‘이렇게까지 졸라야 하나. 여잔데’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 크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 찍고 나서 욕먹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용수 때리는 장면에서 더 많이 욕먹더라.(웃음)



 


<얼렁뚱땅 흥신소>의 박연선 작가는 디테일한 대사를 쓰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박희순 스스로 만든 장면들은 없었나.
역할 자체가 애드리브를 할 만한 역할은 아니다. 게다가 함영훈 감독은 토씨 하나 바꾸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 이 역할이 어미 처리가 굉장히 힘들었다. ‘습니까’를 평소에 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랬수, 저랬수 할 수도 없고 뭘 넣어도 부자연스럽더라. 이걸 자연스럽고 편하게 쓸려니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조금 내 식대로 고쳐봤는데 안 된다 하고… 만약 이걸 평상시 목소리 톤으로 했으면 굉장히 어색했을 것 같다. 그나마 목소리를 쫙 깔고 가니까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다.



 




 


 


시종일관 무게 잡는 백민철과 <세븐데이즈>의 껄렁껄렁한 비리 형사 성열은 판이하다. <세븐데이즈>에서는 코믹한 연기로 일대 변신을 했다.
그렇다. 내가 그동안 했던 역할과 다르게 박희순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었고, 하고 싶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한테는 그런 역할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무겁고 비열하고 나쁜 놈, 아니면 깡패인데 멋있는 깡패, 그런 역할이 전부였다. 결국 깡패에서 맴돌았다. 극단 목화에서 연기할 때는 희극적인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런 장기를 보여줄 만한 기회가 없으니까 답답하더라. 이 역할이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너무 좋았다.


 


도중에 촬영이 중단되고 감독, 주연, 제작진까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나로서는 큰 변신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믿음 하나로 일 년 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리다 보니 원신연 감독이라는 귀인도 나타난 거고. 지금 극장에서 잘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정도 입소문이면 벌써 500만은 됐을 텐데 관객 수가 저조하다. 그만큼 영화계가 요즘 어렵다는 것일 게다.



 


관객들이 김윤진이라는 톱배우의 명성으로 <세븐데이즈>를 보러갔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얼굴도 잘 모르는 박희순의 팬이 돼서 나온다고 한다.
그게 기대치인 거 같다. 내가 알려져 있는 배우이고 둘이 나온다 했으면 사전에 더 많이 언론에도 노출됐을 거다. 나는 잘 모르는 배우니까 본의 아니게 블라인드 마케팅이 돼서 신비스러운 쪽으로 보인 거다. “김윤진 원톱의 영화라고 봤는데 저 배우는 뭐야?” 이렇게 된 거다.



 


이전 작품에서 박희순이라는 배우를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세븐데이즈>의 변신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영화가 무거운데 혼자 발랄한 역할이라 자칫 잘못하면 작품의 분위기를 흐릴 수도 있는 역할이었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다들 까불고 있는데 나 혼자만 무게 잡고 있고 <세븐데이즈>는 다들 무게 잡고 있는데 나만 까불고 있는 모양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열이 같은 경우 자칫 잘못하면 ‘쌈마이 감초’ 소리 들을 게 뻔했다. 물을 다 흐려놓는 그런 캐릭터가 될 수 있으니 쉽지 않았다. 원신연 감독님이 “살아 있는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초반에는 형사인 것도 모르게, 형사가 아니라 거의 치대는 인간으로 보이게끔 하다가 점점 믿음을 주는 식으로 가자더라. 대사도 맘대로 고쳐도 된다 하고. 앞부분에서 만 번을 까불어도 뒤에 내가 보여줄 게 있기 때문에 더 편하게 막 저지를 수 있더라. 성열이 유난히 꿍얼거리는 편인데 이런 것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다가 슛 들어가면 해본 거다. 열쇠수리공한테 ‘직업의식’ 운운하는 것도 애드리브였다.

그나저나 형사가 돼서도 비리 형사라니, 여전히 ‘나쁜 놈’이다.
너무 FM적인 형사는 매력이 없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2% 부족한 그런 사람이다. 김성열이란 인물을 내가 잘 만난 거다.



‘극단 목화의 박희순이 영화계로 가면 영화계를 뒤집어놓을 거다’란 이야기도 있었다. 그만큼 오태석 선생님부터 인정해준 배우였는데 연극 무대를 박차고 나온 건 무엇 때문인가.
오보다. 예전에 어떤 기사에 그렇게 나가고서부터 다들 그 말씀을 하시더라.(웃음) 목화에 10년 넘게 있다 보니까 같은 연출, 같은 작가, 같은 동료배우,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하니 아무리 변신을 해도 거기서 거기고 사람들은 변신이라고 생각을 안 해주더라. 내가 아기에서 어른이 되거나,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쳐주질 않는 거다. 변신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 박희순도 바깥세상을 보고 뭔가 더 느끼고 싶었다. 오태석 선생님한테는 “바깥바람 좀 쐬고 올게요” 했다. 나와서 처음 한 게 뮤지컬 <록키 호러 픽처 쇼>였다. 등장하자마자 소녀들이 까무러치는데 그걸 접하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 예술적인 걸 사랑하는 관객들의 조용한 호응에 길들여져 있다가 환호와 열광을 받는 무대에서의 흥분은 전혀 달랐다. 영화 역시 폭넓은 대중과 만난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영화계로 온 이후, 나를 몰라준다는 일종의 자괴감도 들었을 것 같다.
관객들한테 서운함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건 불편하다. 지금도 길거리 가면 사람들이 “세븐데이즈, 세븐데이즈” 하고 속삭인다. 안 들리게 말하는데 그게 다 들린다.(웃음) 그럴 때 고개 숙이고 가는데 너무 부담스럽다. 그보다 감독이나 제작자 측에서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은 많이 있었다. 물론 내 인생 자체가 계단이기 때문에 한 번에 고속으로 올라갈 거란 생각은 안 했다. 밟고 올라가는 건 좋은데 문제는 멈추는 경우다. 개봉 안 하고, 제작 중단되고 멈출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래도 그런 힘든 시기를 지나니까 두 작품이 이렇게 인정받지 않았나.



그래도 유해진이나 임원희, 성지루같이 먼저 영화계로 진출한 연극계 후배들은 소위 ‘잘나갔다’. 힘들 땐 다시 익숙한 연극 무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 같은데.
10년 넘게 연극 무대에 서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까지도 해봤다. 거기에 대해서 아쉬움은 없다. 그런데 영화는 아직 내가 보여준 부분이 한쪽이었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부분이 반은 더 남아 있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그걸 보여줄 기회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원래 한 우물 파는 걸 잘한다. 기다리는 건 자신 있다. 한 극단에서 외부작품 하나도 안 하고 12년 있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데는 선수다.(웃음)



 


크게 조바심이 없었단 말인가.
답답하고 속상한 느낌이 왜 없었겠나. 대기를 잘하니까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게 목화에서 연습이 돼 있었다. 내가 어떤 극단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할까 하다가 처음 목화에 인사하러 갔는데 어두컴컴한 극장에 선생님부터 선배들이 앉아 있었다. 무슨 절간인 줄 알았다.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고 대본만 보더라. 한 시간이 100년 같았다. 그 첫 경험을 하고 나서 목화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거기선 풀어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연습시간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내가 뭔가를 해내지 않으면 성취감이 전혀 없는 거다. 그 외에는 마루 쓸고 청소하고 소품 만들고 포스터 붙이고 그랬다. 누가 말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직 무대에서만 떠들 수 있는 거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기를 잘할 수 있게 된 거다.



 


연기를 그만두고 싶은 고비도 있었겠다.
연극하면서 특히 많이 했다. 막 때려 치고 싶은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 대한 급 좌절감. 연기 5~6년 했을 때쯤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서 관객이 무서운 지경까지 간 적도 있었다. 내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무대에서도 옴짝달싹 못하는 거다. 그때 그만두려 하다가 깨달았다. 연기로 받은 상처는 연기로 치유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극복을 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 사실 그만두려고 생각할 때마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더라.(웃음) 다른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낯이 두꺼워서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딱히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내 일이나 잘하자’였다.



 


김성열과 백민철을 비교하자면 실제 박희순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백민철은 멋진 사람이다. 나랑은 거리가 있는. 성열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껄렁껄렁하고 편안한 면은 좀 비슷하다. 원래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뒤에서 조용하게 있다가 학예회 같은 거 하면 “저도 할게요” 하고 손드는 아이였다. 잠재되어 있는데 표현은 못하던 시기랄까.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 봐도 꽤 수줍음이 많아 보인다.
낯을 좀 많이 가린다. 술자리에서 사적으로 만나면 어느 시간만큼은 낯가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떨 땐 낯가림이 굉장히 오래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여자를 만날 때. 처음 만나면 할 말이 없으니 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연기는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내성적인 박희순을 무대로 불러들였던 건가.
조명이었던 거 같다. 밝은 데서 뭘 하다 보면 굉장히 쑥스러운데 조명이 켜지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는 거다. 배우들은 상상력이 굉장히 풍부한 사람들인데 그 어두운 무대에 빛이 비춰졌을 때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는 거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난 당연히 배우가 될 사람인데,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기 잘하는 사람 보면 “저 사람, 평소 생활이 저렇지 않고서는 저런 연기 안 나와” 하지 않나. 비열하고 못된 역할을 그렇게 보일 정도로 잘했다. 내성적인 면도 있지만 감추어진 폭력적인 성향이 연기하면서 밝혀진 건 아닌가.(웃음)
그런 연기할 때 쾌감이 있다.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라 연기 아니면 어디서 발산을 해보겠나. 연기에서 발산하니까 그게 재밌는 거다. <가족>에서는 수애 씨랑 첫 촬영이 재떨이로 때리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이야기해본 적도 없고 인사만 하고 시작하는데 그런 센 장면을 했다. 수애 씨랑은 그거 하면서 친해졌다. 한참 때리는 장면 찍고 “저, 좀 괜찮으신가요”(웃음) 이러는 식이었다.



연기를 하는 와중에 캐릭터로부터 스스로 영향을 받기도 하지 않나.
내가 좀 이중적이다. 말 한마디 없이 있다가도 할 때는 또 쾌활해진다. 그 격차가 크다 보니 그런 면이 연기에도 드러난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비슷한 캐릭터로도 몇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있는데 나는 그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다. 여기서는 어떻게 다르게 할까가 포인트다. 아직은 영화를 아홉 작품밖에 안 했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 안에 있는 여러 성격을 다 보여주고 그 다음에는 이런 모습들을 통합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렁뚱땅 흥신소>에 대한 호평과 <세븐데이즈>의 성공. 두 작품으로 인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두 작품이 배우 박희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내가 지금 이십대 후반이라면 지금의 반응에 굉장히 만족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걱정이 더 많다. 다음 작품 <헨젤과 그레텔>만 하더라도 지금 홍보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블라인드 마케팅을 생각하고 시작한 거다. 그런데 내가 좀 알려지다 보니까 나도 이제 전면에 나서야 하는 걸로 마케팅이 바뀌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심경이 복잡하다. 그리고 <세븐데이즈>는 제일 마지막에 찍었는데 먼저 개봉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는 하나씩 계단을 밟아 <바보>부터 올라가야 하는데 이거부터 터져서, 오히려 뒤에 오는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다. 기쁜 건 하루 이틀이었던 것 같다.



<남극일기> 개봉 때 네티즌의 혹평 때문에 “네티즌이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했다. 지금은 그 야속한 네티즌들이 <세븐데이즈>를 살린 격이 됐다. 조금 씁쓸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줄 모른다.(웃음) 심지어 인터넷에  “<남극일기> 때 날 좋아했던 사람인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세븐데이즈>를 보고, 저 배우 괜찮다. 누군가 했더니 <남극일기>의 그 사람이더라” 하고 써놨더라. 좋아하긴 좋아했는데 따로 좋아한 거다. 네티즌이 배우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한 번 죽어봤고 한 번 살아봤으니 일희일비 안 하려고 한다.



알려지면서 좋은 점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내 전작들을 찾아보시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흥행이 안 된 작품들이라 작품이 다시 살아나고 재평가 받는 기회가 돼서 기분 좋다. 지금 홈피에 옛날 연극했던 자료까지 올라오고 그런다. 사실 그게 인터넷에 막 떠다니니 창피하긴 하다. 연극은 현장에서 땀방울 흘리는 걸 봤을 때 감동을 느끼는 건데 그걸 평면적인 화면으로 잡아놓으니.



이젠 역할에 선택의 폭도 넓어지지 않았나.
많이 안 들어온다. 요즘 불황이지 않나. 그래도 코믹 쪽이 전혀 안 들어왔었는데 들어왔다는 게 큰 변화다.



두려워했던 드라마 연기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드라마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
이건 잘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웃음) 함영훈 감독이 쫑파티하면서 “희순이 형이 <얼렁뚱땅 흥신소> 하면서 다시는 드라마를 안 한다는 말이 안 나와야지, 안 그러면 실패한 거다”라고 하더라. 자신도 박희순을 끌어들인 데 대해서 정당성이 생겨야 하고, 나 또한 이 작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야 서로 윈윈이 되고 면목이 선다더라. 난 이 작품을 한 걸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헤매고 있는 나를 끌어들여서 이렇게 끝마치게 해준 것도 너무 감사하다. TV의 영향이 크긴 크더라. 난 다 필살기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해왔는데 막상 TV드라마 한 편으로 알아봐주시니 서운한 감도 있었다. TV의 파급효과를 봤기 때문에 오히려 더 두려움도 있다. 그걸 이용하면서,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성격상 더 조심하게 된다.



현재는 어떤 역할이 끌리나.
그걸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작품이 일단 재밌고, 캐릭터가 새로워야 하고, 그리고 좋은 감독님이 작업한다면 오케이다.



 


지금은 다시 떳떳하게 연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폭이 넓어지게 되면 그때는 다시 연극을 할 수 있겠지.



 


<얼렁뚱땅 흥신소> 시즌 2가 나오면 다시 참여할 것 같나.
안 할 것 같다.(웃음) 새로운 걸 하고 있지 않을까.


 


 



이화정 | 사진 이난 | 스타일리스트 김봉법 | 헤어 박종원 (La Lune) | 메이크업 정선내 (La L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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