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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tique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8.1.14
<태왕사신기>의 이지아
판타지 드라마 속 신화의 인물 수지니를 연기하면서, 판타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영리한 신인 이지아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브라운관을 달리는 소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인 이지아에 대한 놀라움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태왕사신기>라는 대작에 끼어들어 처음부터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게 첫 번째 놀라움이다. 예뻐서 캐스팅되었나 싶어도 실은 이지아가 모두가 납득할 만한 초미녀도 아닌데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부담감과 어색함은 물론이고, 카메라에 녹아드는 시간까지 혼자 벌어둔 게 아닐까 할 정도였으니까. 다음의 놀라움은 수지니의 매력을 정확하게 구현해냈다는 데 있다. 만약 감독의 디렉션대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였다고 치더라도, 눈빛이나 작은 표정들과 동작들에서 소년의 그것을 흉내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다.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온 시기에 있는 여자들이 아무리 중성적 매력의 활달한 소녀를 연기하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는 이유는, 하는 여배우나 보는 여성 시청자나 반대 성의 매력을 의식하고 위장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간파당하기 쉽고 또 부끄러운지 체험하며 컸기 때문이다.
잠시 샛길로 빠진다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은찬을 남자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완벽한 설정의 세계다(극 중 남자들만 은찬을 남자라고 안다. 여자 유주는 대번에 알아채는…). 시청하는 입장에서 은찬에게 매료되는 것은 그녀가 미소년이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여자를 위장하는 아슬아슬한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흘렸기 때문이다. 극 중 의도하지 않은 순간 은찬의 몸에서 여성의 굴곡이 드러나는 것을 굳이 막지 않고 스킨십 또한 잦았던 것도 발각을 전제로 한 상상의 게임이 은찬이 품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었고, 부러 남자 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 크게 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다. 은찬이 여고생이었다면, 한 반의 세 명에게 우상이 되고 나머지 37명에게 이상한 애(위장할 수 없는 것을 위장하는 미련함을 경멸하는 감정)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커피…>의 막바지에 은찬이 더 이상 위장을 할 필요가 없었을 때도 위화감을 줄 정도의 변신을 택하지 않았던 이유가 앞부분의 은찬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이듯, 위장과 발각 이후의 괴리는 인물에 큰 손상을 가져온다.
수지니는 어디까지나 여자다. 생물학적 성 외에도 수지니의 매력은 미소년 쪽이 아니라, 날렵한 미소녀로 성장해왔다. 아무리 차림새가 지저분하고 머리는 덥수룩해도 극중 단 한 번도 수지니를 소년이라고 오해한 이가 없었던 것을 되짚어보자. 미소년으로 접근해 미녀로 성장해 담덕을 구워삶는 것은, 텍스트 혹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2D 세계까지만 가능한 창조의 영역이라는 것을 제작진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행동이나 정체성을 위장하지 않은 수지니는 더 자연스러울 수 있고,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들도 넓어진다. 말을 타고 몸을 뒤집으며 활을 쏘고 공중을 휙휙 날아다녀도 수지니는 감탄할 만큼 깜찍하고, 분노로 소리를 질러도 같은 장소에서 말을 타고 스쳐지나가며 담덕을 애잔한 눈길로 쫓는 것 사이의 괴리가 없다. 수지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그만큼 수지니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영리하게 자신을 제어할 줄 알았다는 답이 나온다. 이지아는 만화나 이야기 속에서 습득된 정보로 몸을 움직이면 발생했을 대형 사고를 피해갈 줄 알았던 배우다. 캐스팅 가이드의 탈을 쓰고 한 페이지를 이지아와 수지니에게 할애한 것도, 실은 그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한다. 이지아가 어느 곳에도 최적화되는 배우일지,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골라 입을 배우일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이른 문제지만, 최소한 나는 그녀가 차기작으로 힌트를 주었으면 한다. 바늘 틈 하나 없을 정도로 가쁜 호흡의 컷들 안에서 움직이던 그녀가, 배우 스스로 긴 호흡을 감당하고 짊어져야 하는 미션이 함께 주어지는 연출, 이를테면 <인순이는 예쁘다> 같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유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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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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