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리뷰

하린
- 작성일
- 2025.5.10
아무튼, 디지몬
- 글쓴이
- 천선란 저
위고
어릴 때 꿈꾸던 세계가 있었다.
선과 악이 명확하고 항상 주인공 편이었던 세계. 그 세계는 주로 TV를 통해 만날 수 있었고, 나는 경험해보지 못할 세계를 그리워했다.
'아무튼 디지몬'을 쓴 천선란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에 방영된 디지몬 어드벤처는 일곱 명의 선택받은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 즉 디지몬들이 있는 세계로 차원이동하며 시작된다.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아이들은 파트너인 디지몬을 만나고 악과 싸워나간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작한 '디지몬 어드벤처는' 천선란 작가님의 말처럼 SF 애니메이션이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며 그 일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디지몬 어드벤처는 매트리스보다 24일 먼저 세상의 빛을 본 SF장르였다.
그 시대의 애니메이션은 철학적 면모를 담고 있었다. 선악구도는 명확했으나 마냥 꿈과 희망을 담고 있지 않았고 암울한 부분도 보여준다. 여기서 어린 작가님이 충격받았다는 세일러문의 절망적인 장면은 내 기억속에도 남아있다. 굳이 그랬어야했을까?라는 생각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받아먹기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때문에 작가님이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과거의 디지몬 이야기는 내게 추억이었고 동시에 다시한번 그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은 항상 낯선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가 존재한다 믿으며 살았던 어렸던 나와도 비슷했다. 극내향인인 나는 외로웠고 외면받은 내향성에 좌절했으며 슬퍼했던 것도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상 속의 이야기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은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내면엔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가님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고, 비슷한 상처를 발견하면 마음속 울림도 커졌다.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면서 자란 세대라서 에세이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기억나는 것이 있다는 점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꾸밈없이 작가님의 상황을 보여주며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내면의 아이가 없는 사람이 드물고 자기 세계가 없는 사람 또한 드물기에 그럴 수도 있고.
이제껏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실 수 있을까?였다. 이 에세이를 통해서야 내내 침잠해있던 작가님의 이면을 본 느낌이다. 대체 어떤 것을 겪어야 이런 문장이 나올까했던 적이 있었는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삶을 만났다. 그리고 내 세계는 좁고 편협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좋아하며 친구로 삼고 버팀목삼아 살아온 날들에서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살 수 있었을까라는 경외감이 들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내면에 깔린 다정함과 우울감 외에도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조금씩 움트는 희망같은 느낌을 많이 떠올렸었는데 에세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에세이또한 작가님만의 이야기임으로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가도 마지막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라게 된다. 책을 통해 나 또한 디지몬을 만나 좋았고 오랜만에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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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