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내게 말했다 “울지마, 걱정마,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
절대반지보다 손에 쥐기 힘들었던 솔로몬의 반지
‘개에게 친구가 많은 것은 혀 대신 꼬리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맞다. 내가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자꾸만 치인다는 느낌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혀로 말하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대화하려 하니 자꾸만 지쳤던 것이다. 그럴 때 개처럼 꼬리 한 번 치는 걸로, 고양이처럼 부비부비 한 번 하는 걸로 대화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난 어린 시절부터 동물처럼 살고 싶었고, 동물의 언어로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시탐탐 솔로몬의 반지를 노렸다. 하지만 솔로몬의 반지는 절대반지만큼이나 손에 쥐기가 녹녹하지 않았고 기껏 골목을 지나는 개나 고양이, 새들에게 말을 붙여보는 게 고작이었다. 미국으로 가버린 나의 ‘불알친구(불알친구처럼 여자들의 어린 시절 친구를 칭하는 근사한 말 어디 없을까?)’는 나와 12년간 등하교를 함께 했는데 유난히 동물을 무서워해 “제발 지나가는 온갖 짐승들한테 아는 척 좀 안 하면 안되겠니?”하며 나에게 애원하곤 했다.
이렇게 지나가는 동물들한테 말 걸었다가 그들이 말없이 사라지면 상처받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를 마당에 묶어서 키우던 시대가 지나고 마침내 우리 집에도 개와 함께 집안에서 자고,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밤마다 개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고, 이 녀석과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동거 13년 만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단어가 2백 개는 되는 것 같아. 그치?’라고 위안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죽은 동물들의 영혼은 오직 사랑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언니와 함께 살았던, 우리 엄마에게는 손녀딸과 같았던 개가 교통사고로 죽자 나는 다시 동물과 대화하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침 열 몇 마리 개들과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덕에 찌루 엄마로 잘 알려진 이성진 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죽은 밍키 문제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와 상담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미국에 사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제작진이 가져간 사진만 보고 밍키가 죽은 걸 알아맞힌 후 죽은 밍키와 대화를 시도해 “나는 지금 편해. 엄마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라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이름은 리디아 히비였고, 그녀가 쓴 책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를 입수해 읽기 시작하자 ‘죽은 동물들의 영혼은 오직 사랑만을 기억한다’라는 글이 보였다. ‘오직 사랑만을 기억한다, 오직 사랑만을…’ 이 말에 나는 리디아 히비와 상담을 신청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사랑을 간직하고 떠난 녀석에게 대화를 요구한들 그건 나의 이기심일 뿐이었다. 한 줄의 글로 이미 나는 충분히 위로 받았고 함께 살던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울지마, 걱정마,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
나는 리디아 히비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신비롭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동물들은 함께 사는 인간들의 감정을 아주 살뜰하게 헤아리고 있었는데 심지어 스탠더드 푸들인 사발라는 엄마가 예전에 함께 살았던 개의 죽음으로 아직도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브리더인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임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질투, 섭섭함 등의 감정이 뒤섞일텐데 동물들의 감정은 참으로 지혜롭고 정직했다.
이처럼 동물이 인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경험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이라면 흔하게 겪는다. 몇 년 전 마지막 사랑인줄 알았던 남자와 헤어진 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흐느꼈다. 그때 개가 이불을 헤집고 들어와 흐르는 내 눈물을 마구 핥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걱정마, 다시 사랑하게 될 거야.”
사랑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상처가 너무 깊어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은 두려움에 울고 있는 내게 개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나는 개를 깊게 껴안고 또 울었고 평소 같으면 몇 초도 못 견디고 품을 떠났을 녀석이 그날은 몇 분 동안 몸을 빌려 주었다. 개는 나의 도움 요청을 정확히 알아들었고 따뜻한 혀로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몇몇 동물애호가들은 인간이 동물보다 확실히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동물은 인간의 감정을 알아채지만 인간은 동물을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은 인간이 하는 말 “앉아”, “기다려!” 등의 말을 알아 듣고 행동하지만 인간은 동물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지 않는가.

함께 쫓겨나거나 혹은 개만 쫓아내거나
동물과 대화하기 시작하면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성격 좋던 개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나워지고 이상행동을 보이자 동거가 힘들어진 주인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힘을 빌어 대화를 시도하는데 문제는 새로 깐 마루바닥이었다.
“최근 새로 마루를 바꿨나요? 그것 때문에 걷다가 자꾸 미끌어지니까 짜증이 난다고 하네요.”
그 얘기를 들은 주인은 깜짝 놀랐고 미처 개에 대해 배려하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평소 주인이 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다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대화로 풀어갈 수 있었던 문제였을 것이다. 오랜 동거인이라면 자신들만의 대화법이 있을 테니까.
애묘인들에게도 고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소변 가리기이다. 특히 잘 가리던 고양이가 갑자기 아무데나 싸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때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각종 고양이 기르기 실용서에 나온 것처럼 붙잡아 혼내는 게 아니고 고양이에게 어떤 환경적이고 심리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많은 경우 고양이 변기를 바꿨다거나 모래를 바꿨을 때 이런 문제가 나타나고, 변기가 놓인 목욕탕에 있는 고무 매트나 비닐 커튼, 세탁용품 등에서 역한 냄새가 나도 고양이들은 목욕탕에 안 들어가고 아무 곳에나 실례를 하기 시작한다. 외국의 경우 이런 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손쉽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동거인으로서의 자질 부족이 아닐까?
공동주택이 많은 우라 나라는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끊임없이 짖는 개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이웃에게 눈치 보이는데 하루 종일 짖어댄다면 ‘함께 쫓겨나거나 혹은 개만 쫓아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의 해결책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빠져나간다거나 짖을 때마다 혼낸다는 주인들도 있고, 심지어 짖지 못하게 짖음방지 목걸이를 채운다는 비인도적인 방법을 쓰는 사람들까지 있다. 하지만 이의 해결책 역시 ‘대화’이다.
대화의 중심엔 사랑과 관심이 있다
학대 받다 버려져 유기견이 되었던 밀레는 좋은 새주인을 만났지만 문제는 또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인이 출근하는 순간부터 귀가할 때까지 줄기차게 짖어댄다는 것이었다. 불행했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새주인과 잘 살아야 하는데 계속 이런 식이었다가는 또 버려질 판이었다.
결국 내려진 특단의 조치는 밀레와 주인이 함께 ‘헤어졌다 만나기’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집을 나서기 전 밀레의 눈을 쳐다보며 “엄마, 금방 돌아올게. 금방!”이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그리고는 돌아와서는 잘 참았다고 칭찬한다. 단, 이 훈련에서 중요한 건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인데 처음엔 아주 잠깐 나갔다 오고, 다음부터 시간을 몇 분, 몇 시간씩 늘리는 식으로 훈련한다. 동물들은 특별하게 시간을 느끼며 살지 않기 때문에 ‘금방’이라는 단어로 순간을 기쁘게 해주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방법을 쓰면 혼자 남겨진 개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인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듯 개와 고양이와 동거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야 하는데 그 대화의 중심엔 사랑과 관심이 있다. 평소 함께 사는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사랑과 관심이 없었다면 어떤 대화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지붕 아래 산들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 성공률은 아마 야생 개미핥기랑 대화하기만큼 어려울 것이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인간은 동물과 함께 살며 많은 것을 빚지는데 그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 개는 조카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을 뿐인데, 조카는 세상을 꿈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열한살의 소년인데, 개는 벌써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 dj doc의 이하늘과 인터뷰하면서 살면서 제일 슬펐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망치한테 흰털이 난 걸 발견했을 때”였다고 했다. 우리 개가 망치와 나이가 같은 열세 살이다. 그리고 개 나이 열세 살은 죽음을 생각할 나이다.
죽은 후의 동물 영혼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 리디아 히비는 ‘동물은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과 달리 떠날 때를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떠돌이로 힘들게 살던 고양이가 “날 안락사로 보내줘. 난 이제 떠날 준비가 됐다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숨이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이 오면, 동물들이 미련 없이 떠나듯 나도 미련 없이 보내줘야 하는 걸까? 잘할 수 있을까?
쌀쌀해진 날씨에 햇살이 제법 좋아 개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개와 함께 코를 킁킁거리며 단 바람 냄새를 즐기고 있는데 노랑병아리 옷을 입은 유치원생이 달려온다.
“이름이 뭐예요?”
”응, 찡이.”
”몇 살이에요?”
”열세 살.”
”우리 형아도 열세 살인데 그럼 찡이오 6학년이에요?”
”..…..”(무학력자인 관계로 찡이도 나도 묵묵부답^^;;;)
”예쁘다. 어~ 가야겠다. 찡이 형아 안녕!”
저 아이는 나와 대화를 나눈 게 아니고 개와 대화를 나눈 거구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데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그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어린 시절의 능력을 되찾아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개에게 무슨 말을 할까? 아마도, 헤어지는 순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