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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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가려 뽑은 가사
글쓴이
박연호 저
현암사
평균
별점8.8 (10)
도시여행자

 



 


[ 가려뽑은 가사 ]가 이다지도 좋을 수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이 맞다. 현암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 시리즈가 참 좋구나 싶었다. 민음사 서양고전 시리즈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19세기 기행가사를 열심히 파고 다녔던 나였기에 시중에 나온 시가 책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12년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논문에 좀 더 도움을 받았을 텐데 참 아쉽구나 싶은 대목이다. 항상 왜 한 발짝 늦게 나타나는건지...당시엔 국문학과에서 나온 논문이나 그냥 가사모음집이 많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가사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가사에 대한 저자의 해설글이 함께 실려있어서다. 이런 글들이 쉽게 '나 여기 있소'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항상 옛 서적들을 뒤져 어딘가 숨겨져 있던 가사를 건져내거나 학자들이 모아 놓은 가사집을 뒤져서 내가 필요했던 기행가사를 발췌하곤 했었다. 이건 내가 공부해야할 능력 밖의 일들이라 항상 피곤하고 이런 책들이 마구마구 내 눈 앞에 나타나길 바랬는데, 이제서야 나타나다니 혀를 끌끌 찰 일이다.


 



 


 박현호 님이 쓰신 <가려 뽑은 가사> 에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가사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가사는 시조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국문 시가이다. 4음보 율격 속에 유장한 정서를 담아낸 가사에는 성리학적 이념에 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다양한 계층의 관심사와 경험이 녹아 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시조 보다는 가사가 주를 이룬다. 사대부들은 유배지에서도, 여행을 가서도 가사를 지었다. 여기에서 내가 예전에 지겹게 찾아다녔던 기행가사가 등장한다. 오늘날 다시 가사를 읽는 것은 가사 문학을 향유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몸담았던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리 고전 읽기의 즐거움
2. 강호 가사
3. 유배 가사
4. 기행 가사
5. 교훈 가사
6. 가사의 갈래 교섭
7. 작품 해설 _ 조선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짓고 즐기던 유장한 노래



 


 


 



 


 강호가사 중에서 대표적으로 <면앙정가>를 살펴보겠다. <면앙정가>는 1533년에 송순(1493~1582) 이 지은 면앙정을 노래한 가사이다.  


 



 


 사대부들은 거처와 그 주변의 자연 사물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양태와 거처하는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냈다. 이런 문학을 여기선 원림 문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원림 문학을 알 필요는 없으나, 사대부들이 본인의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정자를 짓고 이를 기념하는 가사들을 많이 만들어내어 마치 그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찬양하고 그 곳을 만든 본인을 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만 이해하면 되리라.  


 



 


 유배 가사 중에 대표적인 <사미인곡>은 유명한 정철(1536~1593)의 가사이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정철은 자기 삶에 대한 회한, 자기 번민에 대한 글을 쓰지않고 님을 향한 사랑을 썼다. 님에 대한 사랑은 문학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 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왜 사랑에 관한 가사를 썼을까.


 



 


 정철의 <사미인곡>은 여인에 대한 사랑을 쓴게 아니다. 바로 변치않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쓴 것이다. 이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유배지에서 무엇을 써서 남기겠는가. 변치않는 충성심이라도 보여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야할 것이 아닌가. 나라를 걱정하며 충성심이 변치 않는 것이 당시 사대부가 견지해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상사에게 비비는 것과 뭐가 다르리. 내가 지금 공장으로 좌천되어 일이 꼬여만 간다면 싹싹 비비더라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뭐, 조금은 구겨진 내 자존감은 자리로 돌아간다음 찾는 걸로 해두자.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기행가사 차례가 왔구나. 아하! 좋다, 좋아. 우선 대표작품으로 여기선 정철의 <관동별곡>을 다뤄 보고자 한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원더니..." 로 시작하는  <관동별곡>은 결국 벼슬을 버리고 강호자연에 은거했다는 의미이리라. 여기서 죽림은 바로 죽림칠현에서 나온 말로써 죽림칠현이란 중국 위, 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를 말한다. (가려뽑은 가사 중 125쪽 주석 참조)


 


"회양 옛 이름이 마침 같을시고


급장유 풍채를 다시 아니 볼 것인가"


 


-<관동별곡> 중 14~15줄 부분 발췌-


 


 회양은 강원도 북부의 지명이고, 급장유는 중국 한나라 때 회양 태수를 지낸 인물로, 선정을 베푼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결국 강원도에 관찰사로 온 정철은 이름이 같은 회양의 태수였던 급장유를 본인과 동급으로 이야기하며 본인을 선정을 베푸는 벼슬아치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옛 가사를 살펴보면 숨겨진 의미들이 많아 재미있다. 왜냐하면 이 가사는 정철이 정치적으로 불우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관찰사로 좌천되어 신세한탄을 하기보다 본인의 치적을 올리는 가사를 쓴 이유는 정철의 정치적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으로 봐도 될 것이다. 


 


내가  <관동별곡> 이 좋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저자가 정철이 관료로서 직분과 포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담아낸 점을 높이 평가하여 이 가사를 보자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원래대로 금강산을 포함한 관동 지방의 빼어난 풍광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다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영중이 무사하고 시절이 삼월인 제


화천 시대 길이 풍악으로 뻗어 있다


여행 짐을 다 버리고 돌길에 막대 짚어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섞여 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퍼졌으니


들을 제는 우래더니 직접 보니 눈이로다"


 


-<관동별곡> 중 16~22줄 부분 발췌-


 


 여기서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고, 백천동과 만폭동은 금강산여행의 대표적인 여행장소이다.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섞여 돌며 뿜는 소리 십 리에 퍼졌으니" 이 부분을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가. 만폭동의 지형은 물살이 세서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형세라 이를 저렇게 정철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 기행가사들은 미술사적으로도 주목되는 이유이다. 금강산 그림들을 연구할 때 그 시기에 함께 나온 가사들에서 금강산화집을 소장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욕망까지도 읽어내는 이유이다. 이는 여기까지만 논하고 다음 교훈 가사로 넘어가겠다.


 



 


 교훈 가사 중 대표작품으로는 <용부편>이 눈에 띈다. 여기에서 '저 부인'과 '뺑덕어미'를 통해 제시된 부도덕한 행위는 게으름, 사치, 음란한 행동들은 자신의 신분 하락, 가문의 명예와 경제적 기반의 붕괴를 뜻한다고 한다. 19세기 교훈 가사에 제시된 부녀자의 악행과 대한 과한 평가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을 뜻하는 것이리라.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은 이렇게 가사로도 잘 나타나 있다. 여성에게 특히 강조된 것이 바로 정절이었다. 그리하여 이를 어긴 여성을 질타하는 가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현대에서 보면 무식하다 못해 어이없을 지경이나 이 글이 쓰여진 시기를 참조하고 참아야하지 않을까. 조선시대 후기 아직도 몽매한 시기였고 여성에 대한 지위를 논할 시기가 아니었다. 윤리적으로 여성의 사랑은 비난만 받았던 시절 태어나지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안타깝다. 그 시절 여자의 삶이란....


 



 


 마지막으로 가사의 갈래 교섭의 대표작품으로는 <세장가>를 들 수 있다. 이운영의 가사 작품들은 한시를 통한 민요적 세계를 수용하고 우리말 노래인 가사로까지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한다.


 


 이렇게 <가려 뽑은 가사>를 살펴보니 조선시대를 이해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일상에 가끔은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이해해보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에서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 가려 뽑은 가사 ]가 이다지도 좋을 수가. 가끔은 옛 글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게 다 인생이 아닌가. 돌고 돌아가는 만폭동의 물줄기처럼 돌아돌아 여기까지 흘러들어온게 아닐까. 다만 재미로 보기엔 어려울 수 있으니, 진지하게 옛 고전에 빠져볼 각오가 된 독자에게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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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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