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이야기

까만자전거
- 작성일
- 2015.8.4
[음악관련] J.E.T. (제트) - Fede Speranza Carit [LP]
- 글쓴이
- J.E.T.
BTF
J.E.T. - Fede, Speranza, Carita

카를로 마랄리 (Carlo Marrale, 기타, 보컬) :
알도 스텔리따 (Aldo Stelita, 베이스, 보컬) :
삐에로 카사노 (Piero Cassano, 키보드) :
렌조 코키스 (Renzo Cochis, 드럼) :
갈래 : 헤비 프로그레시브 록(Heavy Progressive Rock), 아트 록(Art Rock), 심포닉 록(Symphonic Rock)
공식 웹 페이지 : 없음
공식 에스앤에스(SNS) : 없음
J.E.T. - Fede, Speranza, Carita (1972)
1. Fede, Speranza, Carità (10:56) : ✔
2. Il Prete e Il Peccatore (11:10) : ✔
3. C'e' Chi Non Ha (6:35) :
4. Sinfonia Per Un Re (8:00) : ✔
5. Sfogo (3:42) :
Bonus Tracks (1973 Singles)
G. Gloria, Gloria (3:36) :
7. Guarda Coi Tuoi Occhi (3:19) :
(✔ 표시는 까만자전거의 추천 곡)
카를로 마랄리 : 기타, 보컬
알도 스텔리따 : 베이스, 보컬
삐에로 카사노 : 키보드
렌조 코키스 : 드럼
안토넬라 루지에로 (Antonella Ruggiero) : 보컬
표지 : 움베르토 레가 (Umberto Lega)
제작 (Producer) : 삐에로 빨미에리 (Piero Palmieri)
발매일 : 1972년
성스러운 <성배>를 표지에 등장시키고 음반 제목을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정했다면 이는 분명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음반일 것이다. 1971년에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결성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일룽가에띠(일룽고에띠)>가 1972년에 발표한 밴드의 데뷔 음반이자 유일한 음반이 바로 그렇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뜻의 <Fede, Speranza, Carita>를 음반 제목으로 하고 있고 표지에는 예의 성배를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배가 조금 화려하다. 겉모습을 대충 보기에도 재료비가 상당히 들어갔을 것 처럼 여겨진다. 그렇기에 성배가 아니라 술잔이라고 하더라도 무지하게 비쌀 것 처럼 보이는 화려한 모습은 조금 낯설기 까지 하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에 등장했었던 소박한 모습의 성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일룽가에띠의 유일한 음반에 등장한 성배의 모습에서 조금 과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음반의 타이틀 곡인 <Fede, Speranza, Carità>의 가사를 번역해 놓은 것을 보면 종교적이긴 하지만 그 내용에서 진한 허무주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가사를 떠올리지 않고 음악만을 생각한다면 화려한 모습의 성배와 일룽가에띠의 연주는 거의 일치한다. 대단히 강력하고 화려한 연주로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헤비 프로그레시브 록의 명반으로써 충분한 가치를 음반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룽가에띠가 1971년에 발표했었던 데뷔 싱글 <Vivere in Te>를 들어 보면 데뷔 음반에서의 일룽가에띠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단순한 팝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모습을 데뷔 싱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데뷔 음반을 녹음하면서 180도 변해버렸다. 부드럽고 달콤한 팝 음악 대신 강력하고 실험적인 헤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음반의 대부분을 채워 넣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밴드의 결성 동기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룽가에띠이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당시 진행되고 있던 이탈리아 록 음악계의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미권의 히트 곡들을 번안해서 부르던 1960년대의 밴드들이 점차 자신들의 음악에 실험적인 면을 주입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1970년대 초반에 이를 바탕으로 발전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흐름이 이탈리아 록 음악계의 주류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타이틀 곡 <Fede, Speranza, Carità>와 음반에서 가장 긴 대곡 <Il Prete e Il Peccatore>, 그리고 중편인 <Sinfonia Per Un Re>를 통해서 헤비 프로그레시 록의 진수를 들려주었던 일룽가에띠는 데뷔 음반 발표 후 1973년에 산레모 가요제(Festival di Sanremo)와 또 다른 음악 축제에 출전하면서 활동을 펼쳤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아울러 데뷔 음반의 판매실적 역시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밴드는 1974년에 해산을 결정하고 말았다. 참고로 드러머인 <렌조 코키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구성원들은 밴드 해산 후 일룽가에띠의 데뷔 음반에서 객원 보컬로 참여했던 <안토넬라 루지에로>와 함께 1975년에 팝 음악 그룹인 <마띠아 바짜르(Matia Bazar)>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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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