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과 생각

여보게
- 작성일
- 2021.12.28
밀회
- 글쓴이
- 윌리엄 트레버 저
한겨레출판
이 단편집에는 극적이고 특별한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기억, 모르는 사이 저질러진 나의 의뭉스러운 선택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민과 행동의 원인이 되는, 버리지 못하는 고집이나 움켜쥐고 있는 그 무언가를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 대하는지 그들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 속에 내가 살아왔던 모습이 비친다.
12편의 소설 중에서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마음으로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나에게는 해석되지 않는 감정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이 절대와 온전히 알 수 없듯이 그저 우리도 그는 그의 마음을 따라갔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성한 조각상>과 <큰돈>이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다. 내가 가장 많이 느끼고 고민했던 감정과 인생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순간들을 잘 포착했다고 느꼈다.
<신성한 조각상>에는 재능과 꿈은 있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고뇌하는 이들이 나온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마어마한 타협이 필요한 순간이 오고, 더 나아가 포기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나의 소중한 걸 포기하지 않기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 제목의 '신성한'이라는 단어에서 결코 닿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누알라의 태도에서 우울함을 느꼈는지 코리가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181P
<큰돈>은 내 사랑이 진심인 것인지 의심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것 같다. 나는 평소에도 내 감정을 잘 파악하려 하지 않고, 또는 추악하게 느껴져 알고 싶지 않아 외면하려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멋진 꿈을 꾸는 나 자신의 미래를 사랑한 것인지 고뇌하는 장면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누구나 해본 보통의 사랑 이야기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면서, 결국 추억할 수 있는 이들의 사랑은 나에게 보여주는 교훈과 같았다.
어느 날 피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피나는 자신이 존 마이클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224P
이 두 소설 모두 남들이 보기에는 찬란할 것 같았던 미래가 꺾였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발휘하기 가장 어려운 용기를 내고, 결국 자신의 삶의 다시 그려나간다. 모두의 삶이 그럴 것이다.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좌절의 순간이 오지만, 그저 우리는 계획을 수정하고 방향을 틀 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책을 덮고 나면 왠지 모르게 '나'를 더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몰랐던 내 마음을 다른 이들의 모습으로 대신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나'와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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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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