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깽Ol
- 작성일
- 2016.4.8
룰루의 사랑
- 글쓴이
- 알무데나 그란데스 저/조구호 역
자음과모음
호기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본능적인 욕구이다. 호기심이라는 게 어떤 방향, 경로로 나아가는 지가 중요할 뿐 호기심 자체는 문제 될 게 없다. 무릇 인간이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항상 갈팡질팡 고민하며 살아가게끔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이왕이면 호기심이라는 게 건설적인 주제와 방향으로 나아가면 참 좋겠지만 때로는 더 자극적이고 더 위험한 것들에 반응하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사는 건 언제나 유혹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지 않던가. 성인이라면 자제력이라는 게 담보돼있지만 한참 자라는 10대 아이에게 과한 자제력과 인내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지극히 본능에 충실해서 자기 기분대로 일단 저지르고 마는 게 10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 않나. 특히 이 본능이 성이라는 주제와 맞물리면서 과한 호기심을 촉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열 다섯 살의 룰루 또한 과한 성적 호기심에 사로잡혀 일반적으로는 부정하다고 일컫는 비정상적인 성애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내 나날은 모두 똑같았다. 똑같이 회색빛이었다. 무엇인가로 가득 찬 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영원한 투쟁이었다. 수많은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도 나는 심각한 고독을 느겼다. -195쪽
그가 내 삶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난 행복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삶에 끼어들어,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전 23일 동안 내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날부터 흐른 모든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막간이었으며, 무의미한 우연이었고, 진짜 시간의 대용품, 그가 돌아오면 시작될 삶의 대용품이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왔다.-196쪽
룰루는 9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짐작하다시피 어려서부터 새 물건을 가져본 적이 없다. 헌 것을 물려받는 게 생활화되어있고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룰루는 항상 애정에 목말라 있다는 게 느껴진다. 유일하게 룰루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사람은 친오빠 마르셀로와 오빠의 친구 파블로이다. 사랑에 목말라 있던 소녀의 애정결핍이라는 본능은 사춘기 시절 찾아오는 성적 호기심으로 치환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그 대상은 12살 차이 나는 파블로를 통해서다. 15살 소녀와 27살 청년의 관계는 정상적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와 달리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룰루의 성적 호기심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 후 파블로와 합심해 동성애자와 관계를 맺거나 그룹 섹스를 요구한다거나 섹스 관전, 포르노영화를 습관처럼 보며 에로티시즘에 과한 집착 증세를 보이게 된다. 쾌락의 관계에 집착하는 룰루의 병적인 모습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이 소설이 성애문학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호기심이 동했던 거라서 수위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룰루의 사랑』은 알무데나 그란데스가 27살에 쓴 소설이다. 나이를 차치하고 주제 자체가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인 성을 다루고 있고 남자작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성의 민낯, 어두운 면을 묘사하기에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을 거로 본다. 그런데 이 소설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한 소설이 오버랩된다. 『룰루의 사랑』보다 30년 전인 1954년에 출간된 폴린 레아주의 에로티시즘 소설 『O 이야기』가 그것이다. 호기심에 읽어보려 했지만 그 소설은 중도에 읽기를 포기했었다. 표면적인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의하면 여성을 향한 가학적인 성애가 주를 이루는 작품인데 『룰루의 사랑』에서 룰루의 모습이, 남편 파블로에 의해 가학적인 성교를 맺는 장면 묘사나, 그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룰루를 보면서 계속 머릿속에 이 작품이 떠오르는 거다. 아무래도 여성성을 주종관계, 가학적인 성교 같은 사회에서 경시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게 비슷하게 와 닿아서일 것이다. 하나 단지 가학적인 성행위를 두고 이 작품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건 지양하는 게 맞겠다. 대신에 룰루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자신을 성적 행위를 통한 육체적 고통 속으로 내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특이한 일이었다. 누군가 우리 앞에 있을 때면 나는 파블로와 나의 진정한 관계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항상 나를 제대로 인식했고,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이해했고 그가 공정하고 논리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런 점은 그가 똑같이 행동해도 둘만 있을 때는 한 번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내가 항상 그에 대해 의구심을 지녔고, 그가 너무 잘생기고, 너무 위대하고, 학식이 너무 많고, 내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를 너무 사랑했던 것 같다.-146쪽
부부 두 사람을 위시해 제삼자, 타인, 이방인과의 혼성 관계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려 했던 룰루의 순수하지만 불편한(우리에게는)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룰루는 나이만 성인일 뿐 자리지 못한, 결핍으로 점철된 소녀이다. 결핍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충격적으로 바꾸어놓는지 『룰루의 사랑』은 피학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거다. 결핍은 정신적 학대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는 단절된 채, 모든 것을 내어주기만 해야 하는 룰루와 같은 성장기를 거쳤다면 말이다. 한 인간으로서 룰루의 행동에 연민을 느끼지만 문학적 가치로서의 이 작품을 정의하기는 모호하다. 특히 갈등을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의문은 나만 품은 것일까. 그 사건을 통해서 룰루가 얻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룰루에게 필요한 건 남편 파블로 이전에 자기 고유의 상처 치료가 아닌가 말이다. 부부 사이를 파멸에 이르게 했던 파블로의 미친 행동에 대한 당위도 부족할뿐더러 상처받은 여인을 더 극단으로 내모는 파렴치한이 순식간에, 납치된 가녀린 여인을 구하는 형사처럼 탈바꿈한 설정이라니, 사랑으로 모든 걸 감싸 안았다, 같은 보여주기식 해피엔딩보다 룰루의 상처에 더 집중해서 그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소녀와 그 소녀가 소녀로만 남기를 바라는 롤리타 콤플렉스의 전형 같은 남편 파블로의 모습이나, 여러 가지로 찜찜함이 산재했다.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이 책은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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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10
- 작성일
- 2016. 4. 15.
@異之我...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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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4. 15.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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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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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y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