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깽Ol
- 작성일
- 2016.4.8
부상당한 천사에게
- 글쓴이
- 김선우 저
한겨레출판
며칠 전 지인이 이런 말을 한다. 공약을 지키지 않으니 투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사실 공약은 약속이고 약속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시행착오도 있기 마련이다. 다만 자기가 뱉은 약속을 나 몰라라하고 지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지탄 받을 일인 건 맞다. 투표권은 국민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공약을 지키지 않아서 투표하지 않는다, 같은 정의는 성립해서는 안 되는 게 맞지 않나. 어디 가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영 개운하지 않다. 투표권은 성인 남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강요가 아닌 자율 선택 의지이다. 선택이 필연이 되면 좋을 텐데 마지못해, 떠밀려서 하는 기분을 감출 수 없고 씁쓸함이 남는다면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왜 우리는 매번, 유쾌하게 투표할 수 없는지를 말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투표)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건 이 빨간책의 70% 정도는 정치, 정부에 대한 쓴소리 일색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일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정치 주제가 이렇게 상당 폐이지에 할애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물론 비중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치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현 시대의 이야기가 책 속에는 있다. 김선우 시인의 글은 장편 소설 『물의 연인들』 한 권을 읽은 게 전부다. 소설을 읽었음에도 나는 그녀를 시인이라고 부르련다. 시인이자 소설가, 산문가, 여러 형식의 글에 맞는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녀는 시인이다. 시로 등단해서가 아니라, 소설가와 시인의 경계를 나누던 그녀의 말에 백번 공감하기 때문이다. 시는 가난하고 남루한 밑바닥에서 자기 아픔을 노래하며 비로소 시인 자신으로 승화한다. 그래서 김선우는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걸맞은 여인이다. 아직 그녀의 시를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빨간책을 읽으면서 꼭 그녀의 시를 찾아 읽어야겠다는 약속을 한다.
시인,
비루한 사회에서 명랑을 외치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신조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그중에서도 갑과 을(갑질 논란, 갑질 횡포), 금수저, 흙수저(수저 계급론), 열정페이, 노오력, 루저 같은 자본이라는 지렛대 위에 계급 혹은 외모, 삶의 지수 같은 경계를 두고 무리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범람하는 시대다. 단어들의 실체는 지극히 현실을 대변한다. 불편한 마음은 계급을 넘어 개인에게로 맞춤하며 차마 입에 담기 싫은 신조어(녀녀녀로 대변되는)들을 끊임없이 배출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평등을 부르짖는 이데올로기의 민낯은 처참하다. 더럽고 추악하고 파괴적이다. 신조어들을 통해 보여지듯이 개인의 존엄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개인의 존엄은 땅에 곤두박질친 채 거대 권력 집단의 횡포로 있는 자, 가진 자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부상당한 천사이다. 날개가 꺾여 잠시 날아오르지 못할 뿐 곧 도약하게 될, 도약해야 할 부상당한 천사.
경제제일주의는 이제 이 나라의 종교다. 기득권자들의 도깨비방망이는 언제나 '경제 살리기'이고, 실제로 '살려놓은' 경제 수준에 상관없이 다수의 국민은 '경제 살리기'에 목을 맨다. 이상하지 않은가. 절대빈곤을 겪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토록 '경제'에 목매게 된 것일까. 행복의 가치를 향한 공동체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돈을 향한 탐욕은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부자 되세요!'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후진'이라기보다 '저질'이라 말해야 할 이 모든 사회 분위기에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딱 맞아떨어진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 사회 수준에 맞는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었다고 믿는 과거의 대통령 딸이 지금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놈의 경제'에 대한 국민의 강박관념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 아닐까.-24쪽(그놈의 경제 타령)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 뒤에는 그것을 만드는 노동하는 손이 있고, 다시 그 뒤에는 그것에 원료를 내어주는 자연이 있다. 이 모든 연결의 인연들이 알방적 착취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잘 기대어 있을 때' 세상은 유지되어간다. 세상에 정의가 필요해지는 것도 이 대목이다. 정의는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잘 존재하기' 위한 관계성을 돌보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고, 고통받는 노동이 있는 한 행복하기만 한 소비는 없다. 노동이 즐거워지고 생기발랄해져야 우리 모두 행복하다. 세상의 건설은 아름다움과 선함에 무지한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즐거운 노동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유쾌해지라, 노동이여! 노래하라, 기타 줄이여!-249쪽(유쾌해지라, 노동이여! 노래하라, 기타 줄이여!)
희망이라도 없으면 사는 것은 지옥 그 자체다. 그래서 그녀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미약한 희망이나마 잡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며 우리를 독려한다. 명랑, 또 명랑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글 도처에 날 선 시선이 가득하다. 곳곳에 아픔과 상실, 결핍으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글이 날카로운 건 필연적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정치색을 드러내길 서슴지 않는 시인, 잘못된 것들에는 일침을 가해야 하는 성정이 글 곳곳에 보인다. 읽는 내가 간혹 걱정한다. 이래도 될까,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이미 허울뿐이지 않나. 과거로 역행한 듯이 검열과 압제의 시대를 살고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시대에, 출판물이라는 매개로 그들을 직접 지칭해 '말'해도 될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물론 누구나 해야 할 말이지만 제대로 하며 살지 못하는 실정에 그녀의 쓴소리가 무지막지하게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저주받은 정치계, 정부, 대통령, 노조,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 세월호 참사, 소외된 사람들 등 모두를 아우르며 진행되는 글은 2008~2015년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행되는 시점에 쓰인 글들이다. 그녀가 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쓰인 글들이라서 더 애착이 가고 남다르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종교를 넘나들며 마음을 정화하는 글도 가득하다. 몇 년 사이, 우리에게는 아픈 일이 너무 많지 않았나. 앞으로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부는 여전히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꼬리 감추기에 급급할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답답함을 김선우 시인의 글로 일정 부분 해소한다. 반성도 한다. 그녀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많은 사람이 있어 주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챙길 줄 알고 먼저 발 벗고 나서려는 올곧은 뚝심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테니까. 그녀는 냉소를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무관심에서 비롯한 냉소가 폭주하는 사회야말로 인간미가 말살된 죽은 사회일 테니 말이다. 돌아본다. 나도 때로는 냉소주의로 일관하는 사회와 격리된 인간이 아니었는지. 올해 초에 읽은 문강형준의 『감각의 제국』도 그렇고 김선우 시인의 『부상당한 천사에게』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책이다.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참 좋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악처럼 문학 역시 삶을 위해 있다. 문학 자체에 무슨 절체절명의 가치가 있다는 듯한 문학주의적, 탐미적 경향에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저마다의 개인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한 번뿐인 삶을 사랑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문학은 존재한다.(…)
예술을 저 높은 천장 금고에 보관하며 '교양'으로 떠받들지 말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삶의 모든 순간에 친구처럼 불러내 수다 떨 듯 누리자. 예술은 숭배할 것이 아니라 삶에 힘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고단한 일상일수록 더더욱!-116쪽(예술 사용법)
시인은 차마 못 한 말을 '문학'이라는 탈출구를 통해 뱉어낸다. 언어(말,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언어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는 건 신기한 일이다. 단어, 체제, 관습에 구속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은 불편함과 시원함을 수반한다. 보여지는,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자기 검열에 구속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시원하게 갈겨주는 사람도 있어서 참말로 다행이다.
우리는 빨간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책이 많이 주어져야 한다.
때문에 시인, 소설가, 산문가, 작가들은 써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현실을, 아픔을, 고통을,
우리가 보지 못하면 그들이 써 주어야 하고,
우리는 그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로부터 유리된,
부상당한 천사.
아무리 고통받고 처참함 속에 스러져 있을지언정 우리 안의 마지막 보루, 천사의 날갯짓은 숨죽인 고요 속에서 날갯짓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루한 세상일지언정 우리, 희망만은 버리지 말자.
*(그러고 보니 문강형준의 책도 김선우 시인의 책도 모두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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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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