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vd 이야기

woodyse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9.6.26

가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피로가 밀려오는 밤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였건, 더위였건, 이유야 다양하죠. 그럴때마다 냉장고 냉동실에 놓았던 초콜릿 조각을 꺼내먹곤 합니다. 달짝지근한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소진된 체력과 가라앉은 기분을 잠시나마 `업' 시켜주는 것 같아서요. 초콜릿의 달콤함을 혀끝으로 음미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진답니다. 더위와 일에 찌들린 요즘이 초콜릿 생각이 자주 나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초콜렛'(Chocolat)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개 같은 내 인생'을 만든 덴마크 출신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이지요. 줄리엣 비노쉬, 조니 뎁, 알프레드 몰리나 등 연기파들이 즐비한 출연진도 호화롭습니다. 이 정도 스태프에 배우면 신문이나 잡지의 평, 평론가들의 입방아에 개의치 않고, 영화를 선택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실제로도 그랬구요.
1959년 프랑스 한 마을. 여인 비엔(줄리엣 비노쉬)이 어린 딸을 데리고 나타납니다. 비엔은 감옥처럼 사람들을 옥죄는 전통이라는 이름의 고정관념, 규범에 사로잡힌 마을에서 초콜릿 가게를 엽니다. 엄격한 마을시장 레너드(알프레드 몰리나)는 비엔을 찾아와 교회에 나올 것을 요구하지만, 비엔은 거부하죠.
별다른 관심을 못받던 비엔의 점차 초콜릿은 힘을 발휘합니다. 소원했던 중년의 부부가 부부관계를 되찾게하고, 삶에 찌든 노파에게는 웃음을 안겨줍니다. 점점 초콜릿에 매혹되는 마을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에 젖었던 사람들은 쉬쉬하지만 속으론 점점 사랑과 정열을 되찾습니다. 레너드 시장은 비엔을 몰아내기 위해 종교적 절제와 신성한 삶을 마을 사람들에게 강요합니다. 비엔이 마을을 찾아온 집시 로(조니 뎁)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 레너드는 비엔을 더욱 모함하고 다닙니다.
영화 `초콜렛'은 초콜릿의 그런 속성(사람을 편안하고 업시켜주는)에서 착안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실제 초콜릿이 잠시잠깐 육체적 피로를 잊게 해주는 정도인데 비해, 영화속 초콜릿은 사람들의 정열을 되찾아주고,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합니다. 비엔은 접시를 돌리는 등의 주술적 행동으로 마을사람들의 취향을 발견하고, 초콜릿을 권합니다. 영화속 초콜릿은 마약이고 비엔은 마녀(좋은 의미의)인 것 같기도 해요. 과장된 설정이지만, 어차피 리얼리즘 영화도 아닌데요 뭐. 한편의 동화같은 영화로 보시면 됩니다.
영화개봉 당시 평단에서는 줄리엣 비노쉬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특히 비엔과 집시 로의 사랑, 이들이 마을에 편입되는 과정 등을 거론하며, `삶의 방식,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과 사랑'을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해석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줄리엣 비노쉬, 조니 뎁 등 배우의 무게를 감안하고, 그들 중심으로 영화를 볼 때는 `포용과 사랑' 따위가 이 영화에 맞는 독법(讀法)이겠지요.
근데 저에게는 달리 보였습니다. 진짜 주인공이 시장 레너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종교적 엄격함과 절제로 인해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던 그가 강박관념을 탈출하게 되는 과정이 와 닿았습니다. 초콜릿 축제를 망치기 위해 가게로 숨어들어갔던 레너드는 엉겹결에 입에 닿은 초콜릿의 맛에 취하고, 그속에서 밤새 뒹굴지요. 그제서야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편한 웃음을 짓게 되구요. 한 개인이 은연중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강박관념과 도덕적 엄숙주의를 벗어던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해석대로라면 영화속 초콜릿은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장치겠지요.
영화를 본 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야 한다'는 당위론에 자신의 삶을 꽁꽁 얼리기 보다는, 때때론 맘내키는대로 감정가는대로 사는 것이 지친 일상의 청량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궤변이라구요. 아마도 일상탈출을 꿈꾸는 저같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제 말에 공감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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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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