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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부
- 작성일
- 2009.3.25
태평천하
- 글쓴이
- 채만식 저
문학과지성사
주위를 살피기가 그토록 어려울까요?
조금만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하긴 처음부터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윤직원에게는 개소리에 불과하겠지요.
그 양반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주 관심대상이니 말입니다.
자신과 자신 가문의 영달을 위해 관심을 두는 족보 만들기, 자신의 사회적 입지, 신분 상승을 위해 양반가문과의 통혼, 권력자 배출(군수, 경찰서장)하기만이 윤직원영감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룩해야 할 인생의 과업입니다.
그런 양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말하는 사람 입만 아픈 게지요.
그러니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오줌이나 먹고, 인력거 품삯을 깎았다고 좋아하고, 한참 손녀뻘 되는 여자아이를 희롱하고 있으니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훌륭한 부모 밑에 개차반 자식 없다고 부모가 그러니 그 자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버지를 사기를 처먹는 자식이나 부모의 첩과 매음하는 그 손자나, 증조부의 애인과 놀아나는 증손자나 하여간 막 나가는 집구석입니다.
그런 사고를 하고 있느니 그나마 제대로 된 종학이 사상관계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고 하니 윤직원의 속마음이 어떨지 안 봐도 딱 맞습니다.
하는 말이 이 정도니 말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야?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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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