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베리
  1. 나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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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이별을 하면 마음에 구멍이 생긴다. 떠난 사람의 존재감은 만날 당시 보다 분명해져서, 그 사람의 빈자리가 정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는 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생긴 마음의 구멍을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했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어떤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이 차지했던 구멍에 꼭 맞는 모습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마음의 한 구멍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남긴 흔적은 또다른 구멍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의 마음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폰지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워졌고 많은 것을 머금고 있게 되었다.

몸의 구멍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몸에는 여러 개의 분명한 구멍들이 있지만 그 중에 보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나는 보지에 남의 살덩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비로소 그곳이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 모호한 구멍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미처 몰랐던 구멍을 발견한 뒤에는 여러가지 실험을 시작했지만 이 구멍은 점점 더 모호해지는 것 같다. 이리가레의 텍스트에서 보지는 '두 입술'에 비유된다. 보지에 나란하게 포개져있는 두 음순은 지속적으로 서로를 만지기 때문에 여자의 욕망은 자기색정적이라는 이야기. 글쎄, 지금 내 생각에 보지는 구멍 같기도 하고 살덩어리 같기도 하다. 비워져 있을 때도 차있고 채워져 있을 때도 텅 비어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내뱉고 토하면서 삼키기 때문에. -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몸의 구멍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구멍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구멍은 소통의 증거이며 관계맺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매끈하고 단단한 벽과 같은 존재는 절대 다른 존재와 만날 수 없다. 구멍은 튕겨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끌어당긴다. 그래서 나는 구멍을 생각하면 많은 위안을 얻는다.

외로운 영혼은 서로를 부른다. 라고 한동안 생각했었다. 나는 구멍에서 외로움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글쎄.

그만해요, 이제 당신은 당신의 외로움에 서명을 해야할 줄 알아요,
(이기인, 소녀의 곰인형,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에서)

외로움에 서명을 하고 나면 구멍이 더 분명해질까. 그럴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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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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