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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 작성일
- 2024.7.14
어떤 물질의 사랑
- 글쓴이
- 천선란 저
아작
오랜만에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랑과 나의 사막, 천 개의 파랑, 노랜드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이다.

《천 개의 파랑》으로 2020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첫 소설집!
정세랑의 다정함과 문목하의 흡인력을 두루 갖춘
역대급 괴물 신인 작가 천선란의 첫 소설집!
#어떤물질의사랑
#천선란
#아작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읽고 나면 여운이 긴 편인데 각각의 단편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들이 마음을 휘젓기 때문이다.
지구는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인류애는 점점 상실되고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믿으며 나아가야 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공감능력을 제거(그림자놀이)하는 사회가 되고,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는(어떤 물질의 사랑) 사람들 속에서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있을까? 더 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고 사막의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없는 세상(사막으로)과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 바다를 보며 우리는 뒤늦게 소중한 것을 지키게 될 수 있을까? 창 없는 고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라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던(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 은지의 선택에서 자본주의 앞에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300만 달러와 생명을 맞바꾸는 결정에서 우리는 은지를 비난할 수 있을까?
본 적도 없는 사막의 쏟아지는 별을 떠올리며 우리를 비행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바다를 잃었지만 새로운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고.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사랑은 찾아오고.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지구에서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길은 늘 외롭지만 천선란의 소설은 절망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디스토피아의 세상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지만) 인간은 가지고 있다. 어떤 물질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든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으므로.

작가는 소설 안에 자신이 간직해두고 있던 감정들, 분함과 억울함, 쓸쓸함과 서러움, 외로움과 기괴함을 담았다고 했다. 감정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소설. 엉망진창인 지구를 보며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나아가는 마음. 작가의 신념이 드러나는 소설은 힘이 세다. 외계인과 바이러스는 식상하고 감정을 가진 로봇 역시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 그대로 잠기고 싶은 소설들이라는 김초엽작가의 추천사로 대답을 대신한다.
<책 속 좋았던 문장>
p. 11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본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믿는 것만 본다. 그래서 보는 것만 쓸 수 있다고.

P. 24 요즘에는 그 반대 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인데?
‘모든 걸 다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그런 거잖아. 이를테면 네가 지금 눈을 뜨고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그렇다면 네 간격에도 외로움이 생겼겠네.
리윙은 나를 가만 끌어안았다. 리윙은 그때 내 표정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리윙이 놓을 때까지 안겨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외롭구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이 덤덤해지는구나.

P. 35 그리고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P. 153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응, 그럴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
˝응, 알겠어.˝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돼.˝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 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P. 188 하필 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이 네 아래에 있었다.
P. 196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있었으니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거야. 분쟁과 전쟁이, 다툼과 사냥이 전부 사라질 거야. 간결하고 깔끔하게 지구가 변하겠지. 우리는 그게 간절했어. 네가 있었다면 너 역시도 수술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도아야, 나는 내가 너를 잃더라도 너를 이 세상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게 했을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이해할 수도 없을 거고. 내가 지금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p. 256 뒤늦은 용서는 사회 속에서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이 상황을 올바르게 헤쳐나갈 수 있는 선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불안할 것이다. 오래도록 의심할 것이다. 오래도록 용서할 것이고, 오래도록 받지 못한 용서가 토양에 쌓여 침전되고 그렇게 지구가 될 것이다.
P. 328 ˝좀 더 행복할 것 같나요?˝
˝잘하면?˝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더미가 반짝이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더미가 노래를 불렀다. 쳇 베이커의 ‘블루룸‘이었다. 자동차는 속도를 유지하며 연구실로 향해 갔다. 마지막 드라이브를 향해.
P. 332 세상을 알아갈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다.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인구수만큼 존재하는 사공이 산도 아닌 우주로 지구를 날려버리는 것 같다. 나 하나가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바뀔까? 내가 가는 방향을 옳은 방향일까? 이런 생각들을 언제나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저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 작가의 말 중에서
랑과 나의 사막, 천 개의 파랑, 노랜드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이다.

《천 개의 파랑》으로 2020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첫 소설집!
정세랑의 다정함과 문목하의 흡인력을 두루 갖춘
역대급 괴물 신인 작가 천선란의 첫 소설집!
#어떤물질의사랑
#천선란
#아작

천선란 작가의 소설은 읽고 나면 여운이 긴 편인데 각각의 단편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들이 마음을 휘젓기 때문이다.
지구는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인류애는 점점 상실되고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믿으며 나아가야 할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공감능력을 제거(그림자놀이)하는 사회가 되고,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는(어떤 물질의 사랑) 사람들 속에서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있을까? 더 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고 사막의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없는 세상(사막으로)과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 바다를 보며 우리는 뒤늦게 소중한 것을 지키게 될 수 있을까? 창 없는 고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라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던(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 은지의 선택에서 자본주의 앞에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300만 달러와 생명을 맞바꾸는 결정에서 우리는 은지를 비난할 수 있을까?
본 적도 없는 사막의 쏟아지는 별을 떠올리며 우리를 비행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바다를 잃었지만 새로운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고.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사랑은 찾아오고.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지구에서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길은 늘 외롭지만 천선란의 소설은 절망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디스토피아의 세상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지만) 인간은 가지고 있다. 어떤 물질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든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으므로.

그러나 나를 만나고 싶다면 당신도 주저하지 마시길.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든 나는 이렇게 대답해줄 테니까. 그렇군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혹시 배꼽도 없으신가요? P. 153
작가는 소설 안에 자신이 간직해두고 있던 감정들, 분함과 억울함, 쓸쓸함과 서러움, 외로움과 기괴함을 담았다고 했다. 감정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소설. 엉망진창인 지구를 보며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나아가는 마음. 작가의 신념이 드러나는 소설은 힘이 세다. 외계인과 바이러스는 식상하고 감정을 가진 로봇 역시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 그대로 잠기고 싶은 소설들이라는 김초엽작가의 추천사로 대답을 대신한다.
<책 속 좋았던 문장>
p. 11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본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믿는 것만 본다. 그래서 보는 것만 쓸 수 있다고.

P. 24 요즘에는 그 반대 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인데?
‘모든 걸 다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그런 거잖아. 이를테면 네가 지금 눈을 뜨고 기회를 떠나보내는 것 같은. 그렇다면 네 간격에도 외로움이 생겼겠네.
리윙은 나를 가만 끌어안았다. 리윙은 그때 내 표정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리윙이 놓을 때까지 안겨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외롭구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이 덤덤해지는구나.

P. 35 그리고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P. 153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응, 그럴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
˝응, 알겠어.˝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돼.˝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 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P. 188 하필 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이 네 아래에 있었다.
P. 196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있었으니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거야. 분쟁과 전쟁이, 다툼과 사냥이 전부 사라질 거야. 간결하고 깔끔하게 지구가 변하겠지. 우리는 그게 간절했어. 네가 있었다면 너 역시도 수술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도아야, 나는 내가 너를 잃더라도 너를 이 세상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게 했을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이해할 수도 없을 거고. 내가 지금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p. 256 뒤늦은 용서는 사회 속에서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이 상황을 올바르게 헤쳐나갈 수 있는 선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불안할 것이다. 오래도록 의심할 것이다. 오래도록 용서할 것이고, 오래도록 받지 못한 용서가 토양에 쌓여 침전되고 그렇게 지구가 될 것이다.
P. 328 ˝좀 더 행복할 것 같나요?˝
˝잘하면?˝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더미가 반짝이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더미가 노래를 불렀다. 쳇 베이커의 ‘블루룸‘이었다. 자동차는 속도를 유지하며 연구실로 향해 갔다. 마지막 드라이브를 향해.
P. 332 세상을 알아갈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다.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인구수만큼 존재하는 사공이 산도 아닌 우주로 지구를 날려버리는 것 같다. 나 하나가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바뀔까? 내가 가는 방향을 옳은 방향일까? 이런 생각들을 언제나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저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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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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