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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타우로스는 실존했다?


식인황소에 바쳐진 인간제물의 진실


 


 


 


 


크레타의 왕이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을 데려다 식인황소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쳤다는 신화를 들어보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신화 속 이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상상의 산물만은 아님이 밝혀졌다. 크레타 왕국의 유적에서 살해당한 청소년들의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지중해로 둘러싸인 발칸 반도 남부에는 아름다운 나라 그리스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인류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리스 신화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그런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크레타(Creta)섬의 미궁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 신화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크레타 섬에는 미궁이 있었다고 한다. 미궁은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가 만든 것으로 황소에게 사람을 바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미노타우로스라 불리는 반인반수의 식인황소였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제우스 신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와 결혼해 낳은 아들이었다.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국왕으로 도시국가연합을 세우고 법전을 제정했다. 점점 자신의 권력에 도취한 미노스는 어느 날 제사에 쓸 황소를 보고, 신에게 바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좋지 않은 다른 황소와 그 황소를 바꿔치기했다. 이에 화가 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의 자식들 가운데 소머리를 가진 괴물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한다.



후에 이 예언은 현실이 됐다. 왕비 파시파에가 미노스가 바꿔치기한 황소에게 그만 반해버린 것이다. 황소를 사랑하게 된 왕비는 고민 끝에 암소의 몸통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황소와 사통했다. 그 결과 머리는 황소고 몸은 사람인 괴물이 태어났으니, 크레타인들은 이 괴물을 '미노타우로스'라 불렀다. 다 자란 미노타우로스는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을 잡아먹고 궁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왕비가 낳은 엄연한 왕자를 죽일 수는 없는 일. 왕은 천재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무수히 많은 통로와 방이 있어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진 미궁의 중앙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기 위해서였다.



한편 미노스 왕은 또 다른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했다가 사망하자, 아들의 복수를 위해 아테네에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아테네인들은 항복했고, 9년에 한 번씩 7명의 소년과 7명의 소녀들을 미노타우르스에게 바치게 됐다. 껌껌한 미로 속을 헤매던 아테네의 아이들이 미노타우로스와 마주칠 때면, 미궁에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미궁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 덕분이었다. 자진하여 희생제물이 되기로 한 왕자가 크노소스 궁전에 도착하자, 그를 본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그를 본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테세우스를 구하고 싶었던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마술 검과 실뭉치를 주면서 실을 입구에 매어놓고 가닥을 풀면서 들어가라고 일렀다. 왕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찾아 미궁 속으로 들어갔고 한 차례의 격투 끝에 마술 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찔러 죽였다. 왕자는 다시 실을 좇아 미궁을 빠져나왔고 공주와 함께 아테네로 돌아갔다.



 


 




크레타 섬 유적에서 발견된 황소 경기 장면. 크레타 섬에서 황소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동물이었다. ⓒ예문



 

신화 속의 왕 미노스는 과연 실재하는 인물일까, 아니면 신화 속의 가상 인물일 뿐일까.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Thukydides)의 저서에도 미노스 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의문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미노스 왕조가 있었다는 크레타 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문은 19세기 말, 영국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에 의해 비로소 풀렸다. 그는 1893년 아테네에서 삼각형 또는 사각형 형태의 문자와 부호가 새겨져 있는 돌을 발견했다. 이 돌이 크레타 섬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된 그는, 이듬해 크레타 섬으로 가 폐허에서 대량의 상형문자 파편들을 수집했고 이후 25년에 걸쳐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지를 발굴했다.


 


 에반스가 발굴한 궁전은 현재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Iraklion)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다. 궁전에는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500여개의 궁실이 분포돼 있는데, 높은 지역에 잇는 서쪽 건물은 대다수가 2층집이고 낮은 지역에 위치한 동쪽 건물들은 4층집이 주류를 이룬다. 각 궁실들은 복도, 계단, 대청 등으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 미로에 빠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이 궁전은 명실상부한 미궁임에 틀림없다. 왕실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힘든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크노소스 궁전의 일부. 전설 속의 미궁은 크노소스 궁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문
 

 

결국 신화 속의 미궁은 크노소스 궁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노타우로스의 존재와, 아테네의 소년 소녀들이 그의 먹이로 바쳐졌다는 이야기 역시 사실인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궁의 존재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후세에 덧붙여진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곧 '아테네 아이들이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대목이 신화 속 허구만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크레타 왕국의 문화가 제일 찬란했던 기원전 2300~1500년경은 바로 미노스 왕조의 시기였다. 미노스 왕의 강인함과 현명함, 통치력에 힘입어 나라는 번성기를 맞이했다. 에게 해의 여러 섬들은 미노스 왕조의 신하를 자청했으며, 아테네도 공물을 바쳐야 했다. 당시에 미노스 왕조가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크노소스 궁전의 내부. 지금 보아도 화려하고 세련된 무늬의 벽장식과 벽화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예문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원전 1500년경, 크레타 섬의 모든 도시들이 동시에 파괴됐다는 점이다. 크노소스 궁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밀이 드러난 것은 1967년,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에 의해서였다. 크레타 섬에서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는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토리니(Santorini) 섬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해발 566m에 불과한 이 화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1500년경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하며 섬 자체가 순식간에 두꺼운 화산재 속에 매몰됐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화산분출이 얼마나 맹렬했던지 이집트 상공에도 3일간 연속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됐다고 한다. 곧이어 화산분출로 인해 발생한 높이 50m의 해일이 크레타 섬을 강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스피리돈 마리나토스는 크노소스에 닥친 재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갑작스런 굉음에 놀란 크노소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어서 돌과 흙이 뒤범벅된 화산재가 엄습했다. 불똥과 시커먼 연기를 동반한 화산재는 순식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화산과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해안을 덮쳐 육지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화산재로 뒤덮인 덕분에 크노소스 궁전과 그 일대는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화려하게 채색된 벽화와 도자기, 생활물품들이 다량 발굴됐으며 문자가 기록된 진흙판도 수만 장이나 출토됐다. 그런데 그 진흙판 가운데서 뜻밖의 문구가 발견됐다. '아테네에서 여자 7명, 남녀 어린이 각 7명씩을 공물로 바쳤다', 이는 미노타우로스의 신화에서 전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곧이어 발굴된 섬의 지하에서는 200여 구의 인골이 발굴됐는데, 이중 상당수가 10~15세 남녀 청소년의 것으로 밝혀졌다. 유골의 뼈에는 칼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후 버려진 것이다.

 

한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어느 신전에는 사제와 그의 조수 여러 명이 제사를 진행하던 도중 화산폭발을 맞이한 듯 쓰러져 있었다. 신전에는 제사용 도자기 그릇과 제단이 남아있었는데, 제단에 누워있는 제물을 본 고고학자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165cm 정도 키의 젊은 남성이었던 것이다. 제단 주변에서는 제물의 피를 받기 위한 그릇과 날카로운 청동칼도 발견됐다. 제물이 된 대상은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아테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크레타 왕국에서는 실제로 인신공양이 이루어졌다. 아테네인들은 바다 건너 섬에서 행해진다는 무시무시한 제의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들은 크레타 왕국에 공물로 사람을 바치고 있었다. 여기에 미노스 왕조의 강력한 왕권과 크레타 왕국의 황소숭배 풍습이 어우러져 식인 황소와 같은 신화적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테네 인들의 상상력은 크레타의 횡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줄 영웅 테세우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화와는 달리 오늘날 유적은 인간제물의 비극이 크노소스 왕국이 멸망할 때에야 비로소 끝났음을 보여준다.

 

 


 


기사 출처 : 뉴스인북_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발칙한 고고학
후즈펑 저/송철규 역 | 예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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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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