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K목장의 리뷰(?)

선샤인맨
- 작성일
- 2021.7.26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글쓴이
- 마이클 셸런버거 저
부키
예전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때 같이 일하던 직원 중 하나가 커피를 몹시 좋아해서 출근하자마자 아메리카노부터 뽑아마셨고 심지어 퇴근 할 때도 커다란 텀블러에 듬뿍 담아 가져갔다. 나는 그가 그저 커피를 싸 가지고 가기 위해서 개인 텀블러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은 환경을 위해 텀블러와 에코백을 사용한다고 짐짓 자랑스럽게 말했다. 허나 그가 정말 텀블러를 자연 보호를 위해 사용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자신 뿐이었다. 그가 평소 자신의 취미 중 하나가 모 브랜드의 텀블러가 새로 출시될 때마다 색깔별로 전부 구매하는 것이라고 여러 번 자랑했기 때문이다. 텀블러와 에코백은 여러 번 사용해야만 환경 보호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기업들조차 에코를 표방하면서 무분별하게 만들어 사은품으로 뿌려댄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그 직원이 떠올랐다. 이 책은 환경 보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파괴에 일조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우리가 올바르게 지구를 위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 외였다. 목차를 보니 의문이 잔뜩 솟았다.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신재생 에너지가 자연을 파괴한다, 원자력은 자연보호의 희망이다, 라니. 하지만 내가 환경에 대해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목차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읽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통념이 흔들어지는 경험은 짜릿한 거니까. 그래서 내 통념의 안부를 묻는다면, 99%는 잘 살아있다.
셀럽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탄소를 펑펑 배출하는 전용기를 타고 각 나라들을 누비며 화석연료를 써대는 일에 대한 비판은 일리있었다. 이외에 에코백이나 종이봉투에 대해서도 여러 번 재활용하지 않으면 큰 효과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와서 내가 기대했던 부분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대다수였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극히 미미하며 햇빛을 받으면 다 분해되니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었다. 미미하다는 주장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바다에는 쓰레기가 천지이며, 설사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 된다고 쳐도 그 전에 동물들이 먹어서 고통받고, 찔려서 죽어가니까.
또 저자는 “극심한 기후 변화가 닥쳐온다 해도 인간이 갖추고 있는 홍수 관리 체계, 전력 공급망, 도로체계는 잘 작동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극심한’ 기후 변화가 아니더라도 고작 한파나 태풍 때문에 정전이 되고 시설들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본 바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후쿠시마가 방사능 청정지역이라고 주장하거나 온난화 때문에 북극곰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호들갑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의아했다.
그는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이 감정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저자야말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책은 종말론적 환경주의자의 과격한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데 환경주의자들이 전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흔해서 독자들이 폭넓게 공감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온건파의 주장도 예시로 들었다면 이보다는 신뢰감이 상승했을 것이다.
그는 환경보호론자들이 전부 지구 멸망을 얘기한다며 절망을 퍼트리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론자의 말을 듣고 지구가 멸망할 거란 생각은 안 한다. 그걸 진정 믿는다면 그렇게들 살고 있겠는가?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내가 봐온 ‘환경보호론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절망을 퍼트리거나 절망에 빠지기는 커녕 누구보다 절망과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환경보호론자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절망과 말이다.
읽으면서 파악한 저자는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과학기술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어떤 문제든 경제적 논리와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 안심하라고 다독인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역사와 문학과 영화, 뉴스와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보아왔다.
개발만을 정당화하는 느낌에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욕망에 충실하게 파괴와 낭비를 일삼자!”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겼다. 과도한 걱정일까? 어떤 이들은 자신이 유리하게 써먹을 것만 뽑아가서 옳지 않은 일을 할 때 방패로 써먹는다. 나는 이 책이 그런 방패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진리로 믿어왔던 것에 대해 의심을 해보게 하는 점은 좋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게 되면, 환경에 대해 또 다른 각도에서 연구가 진행될 수도 있으니까. 의료 약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듯 환경 쪽에서도 난립하는 주장이 많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 많은,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다.
독자들이 책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서 저자의 주장을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이 책은 특히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여러 사람과 읽고 토론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싸움이 아닌 토론 말이다. 다른 여러 사안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여러 관점을 대해야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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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