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대중문화

naruse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2.7
88 올림픽 이후 국내 대중문화는 급격한 개방의 물결 속에 진화를 거듭합니다. 방송에서도 91년말 새로운 민방 SBS가 개국하면서 방송 3사간에 시청률 경쟁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가요계에선 91년 신승훈,윤상,심신 등의 실력파 신인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킵니다. 극장가는 직배영화의 상륙으로 인해 국내 영화의 설자리가 없어질 거라던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90년부터 수준이 높아진 흥행작들을 꾸준히 양산하며 서서히 경쟁력을 키워갑니다.
92년은 서서히 경쟁력을 키워나가던 국내 대중문화에 혁신적인 아이콘들이 등장하며 경쟁력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시장 파이를 확장하기 시작한 해입니다. 대중문화의 지도가 새로이 그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바다 건너 헐리웃도 92년은 나름대로 뜻깊은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전미흥행 수익 1억불을 넘으면 블록버스터급 흥행으로 간주를 하는데(최근에 들어서는 무더기로 쏟아지는 바람에 다소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였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흥행 1억불 돌파한 영화들이 10편을 넘어서는 경사(?)를 맞이합니다.
92년 미국 박스오피스 1위부터 11위까지의 흥행작 리스트입니다. (자료참조 : 박스오피스모조 닷컴)
91년 <미녀와 야수>에 이어 92년에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합니다.
로빈 윌리엄스의 재치있는 목소리 연기와 <미녀와 야수>에 이어 <알라딘>의 주제가인 <A whole new world>가 전세계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디즈니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그리고 성인들도 즐겨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90년 겨울 혜성같이 등장한 매컬리 컬킨의 블록버스터 집보기 소동극 <나홀로 집에2>가 흥행 2위에 오르는데요. 전편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구성,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등장하여 전편만큼의 재미를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역시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오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습니다. 실망스러운 속편에 동참한 또 하나의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리턴즈>입니다. 89년 여름 박스 오피스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배트맨>에 이어 3년만에 나왔지만, 조커(잭 니콜슨)에 비해 캣우먼(미셸 파이퍼)이나 펭귄(대니 드비토)의 역할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역시 89년의 <리썰웨폰2> 이후 3년만에 등장한 <리썰웨폰3>는 르네 루소라는 새로운 여형사 캐릭터가 등장하며 극에 신선함을 불어 넣습니다. 극 중 릭스(멜 깁슨)와의 티격태격 로맨스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줍니다. 또한 파트너 대니 글로버와의 아웅다퉁 입담 대결은 여전히 극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이전보다 스케일이 커진 시원한 액션으로 리썰웨폰 시리즈 중 최다 흥행 수익을 기록합니다.
92년 여름 헐리웃 박스오피스는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배트맨 리턴즈>가 기대에 못미치는 완성도로 인해 흥행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피골드가 수녀로 등장하는 <시스터 액트>가 예상밖의 호성적을 거둡니다. 하지만 여름보다 헐리웃 박스오피스를 더욱 뜨겁게 달궜던 영화는 봄에 개봉한 폴 버호벤 감독의 스릴러 <원초적 본능> 입니다. 주연을 맡은 샤론 스톤을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로 등극시킨 이 영화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언급을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 내용이나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이 영화 외적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이 영화는 머니머니해도 조 에스터하스의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가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폴 버호벤의 자극적인 영상연출 감각은 다시 한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극대화 시킵니다.
92년 겨울에는 롭 라이너 감독,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 키퍼 서덜랜드 등의 화려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군대 법정 스릴러 <어 퓨 굿맨>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자극적인 액션이 등장하지 않아도 등장 인물들 사이에 빚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에서 한치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세련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이 역시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출연한 <보디가드>는 숱한 히트곡이 담긴 OST와 더불어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내용이나 구성보다는 두 남녀배우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흥행에서 재미를 본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국내 대중문화를 살펴봅니다. 92년 초에는 대중문화계에 유쾌하지 못한 소식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우선 극장가에선 김지미가 야심차게 제작을 맡고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가 흥행에서 참패를 하였고, 마찬가지로 이장호 감독과 더불어 시대를 풍미했던 중견감독 배창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안성기, 이아로 주연의 <천국의 계단>도 고배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더 우울한 사건은 다름아닌 미국의 아이돌 팝 스타 <뉴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에서 발생한 불상사였습니다. 80년대 말부터 10대 팬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팝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 마침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당시 여중고생들은 콘서트 티켓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2월 16일 콘서트가 시작되었는데 시작 당시부터 1만 6천여명의 팬들이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한꺼번에 몰려들며 콘서트장은 아수라장 일보 직전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결국 여고생 한 명이 압사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급기야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한 콘서트장에 질려버린 <뉴키즈 온 더 블록>은 공연을 중단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았던 사건이었는데, 가장 우울했던 부분은 대한민국의 소녀팬들이 남의 나라 그룹 공연에 자신의 생명까지 위험할 정도로 열광하며 공연을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체념과 탄식은 불과 몇 개월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국 대중문화에 혁신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92년 4월 MBC <특종 TV연예>라는 프로에서 신인가수들이 선을 보여 노래를 부른 후 유명 작곡가 및 평론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에게 평가를 받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첫 회에 등장한 가수는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등 3명으로 구성된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이었습니다. 타이틀 곡 <난 알아요>를 부른 이들에게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던 하광훈, 92년 최고의 히트곡 중의 하나인 <타타타>의 작사가 양인자, 방송인 이상벽, 가수 전영록으로 구성된 4명의 패널들은 조심스러운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구동성으로 이전에 느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그들의 첫 방송이 나간 직후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은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마냥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흠뻑 빠져 버립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댄스곡과 세련된 안무, 무대매너, 의상 등 그들에게 관련된 모든 아이템은 곧바로 젊은 세대의 아이콘으로 부각됩니다. 이전까지 외국의 팝스타와 팝송에 열광하던 젊은 세대들의 워크맨에는 팝송 테이프 대신 <서태지와 아이들>의 테이프가 자리하게 됩니다. 매 쉬는 시간마다 중,고등학교의 교실 뒤편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안무 따라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당시 <특종 TV 연예>는 4월 11일 첫 방송을 시작하는데, 첫 방송 당시 토요일 오후 5시에 방영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예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패널들의 코믹한 토크와 진행자 임백천의 위트 진행 등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하며 토요일 저녁 7시에 방영되던 간판프로인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밀어내고 주말 저녁의 메인프로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종 TV 연예>는 당시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던 토요일 저녁 시간대의 방송 포맷을 새롭게 바꾼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서태지가 작곡하고 직접 부른 메인테마 송이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지금은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공교롭게도 4월 11일 프로야구에서는 잠실에서 해태와 OB가 맞붙었는데 수중전으로 진행됩니다. 선동렬과 박철순이 선발 맞대결을 벌여 선동열이 5-0 완봉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빗속에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선동열은 어깨에 고장을 일으켜 결국 92시즌 잔여경기를 거르게 됩니다.이후 선동열은 1년에 가까운 재활을 거쳐 93시즌부터는 선발대신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게 됩니다. 선동열의 선발투수로서의 압도적인 활약은 결국 92년 4월 11일 경기가 마지막이었고 그날 저녁에는 서태지라는 새로운 '문화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 오버랩이 됩니다.
대한민국 댄스가요 시장은 이후 급속도로 팽창하게 됩니다. 92년 가을에는 현진영이 <흐린 기억속의 그대>라는 노래로 후드티 패션과 특유의 안무로 다시 한 번 댄스 돌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가요계의 혁신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서태지는 본래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맡았었는데 당시 보컬이었던 김종서도 92년 <대답없는 너>라는 노래로 히트를 치며 대한민국 가요에 락 발라드라는 장르를 확산시키게 합니다. 92년 시나위 출신의 두 멤버(서태지,김종서)는 가요계, 나아가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돌풍을 몰고 옵니다.
극장가에도 한국 영화의 새로운 바람이 일어납니다. 92년 7월에 개봉한 김의석 감독 최민수,심혜진 주연의 <결혼 이야기>가 피카디리 극장 등에서 개봉하여 서울관객 52만명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립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대한민국 영화에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는데 사전에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인 젊은 신혼 부부등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하여 영화의 제작방향을 잡아나가는 철저한 기획하에 제작된 기획영화인 것입니다. 대기업의 자본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영화이기도 한데, 이 영화의 성공으로 90년대 후반까지 대기업들의 한국영화 투자붐이 조성됩니다. 91년 히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최민수는 <결혼 이야기>에 이어 최진실과 함께 공연한 강우석 감독의 <미스터 맘마>도 22여만명을 동원하며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어갑니다. 정작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터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코미디 장르에서 부드럽고 유쾌한 이미지로 변신을 꾀한 것이 대중들에게 어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외에도 월남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안성기,이경영 주연)도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장군의 아들>의 완결판 <장군의 아들3>도 전편들에는 못 미쳤지만 16만명을 동원하며 나름대로 선전합니다.
국내 극장가에도 샤론 스톤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동아수출공사가 배급권을 따내 허리우드,동아,연흥극장 등에서 개봉한 <원초적 본능>은 당시 극장가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며 대박을 터뜨립니다. 서울관객 97만명을 동원하며 그 해 개봉작 중 최다 관객을 동원합니다.
91년말 <황비홍>으로 새롭게 이름을 알린 이연걸의 돌풍은 92년에도 이어집니다. 80년대 후반 <영웅본색> 이후 주윤발의 초창기 출연 영화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이연걸의 초창기 작품인 <용행천하>가 개봉하여 11만명을 동원, 비수기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둡니다. 그러나 이연걸의 돌풍을 이어가게 만든 영화는 다름 아닌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 입니다.
92년 봄,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을 겨냥하여 당시 주요부문 수상을 노리던 <벅시>,<케이프 피어>,<사랑과 추억> 등의 영화가 개봉하여 아카데미 후광효과를 노립니다. 하지만 정작 작품상 및 주요부문을 휩쓸었던 작품은 이미 91년 여름 개봉하여 28만 관객을 동원했던 <양들의 침묵> 이었습니다. 아카데미 후광효과는 의외로 허무하게 소멸되는 사이 관객들은 홍콩 무협 영화인 <동방불패>에 전폭적인 성원을 보냅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남장여인으로 등장했던 임청하는 <동방불패>가 낳은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중성적인 매력의 임청하의 출연작들이 이후 2-3년에 걸쳐 무더기로 개봉하게 될 정도로 임청하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한 <동방불패>는 비수기인 3월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35만명을 동원하는 흥행을 기록합니다.
유난히도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들이 돌풍을 일으킨 92년 극장가에는 제인 마치와 홍콩배우 양가위가 함께 공연한 <연인> 이란 영화가 33만명의 성인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읍니다. 92년 여름 국내 극장가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선을 보입니다.
성인 취향의 영화(원초적 본능, 연인,결혼이야기), 블록버스터 액션물(리썰웨폰3, 에일리언3, 장군의 아들3 - 공교롭게도 모두 3번째 시리즈 영화입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인도차이나, 하얀전쟁), 가족단위로 즐겨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만화를 기반으로 한 블록버스터 (배트맨2, 후크)등 관객의 입장에서 마치 뷔페 메뉴를 고르듯이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92년 여름시즌(5월~8월) 개봉작들의 흥행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관객 기준)
1. 원초적 본능 (메인개봉관 : 허리우드 극장) - 970,180명
2. 미녀와 야수 (메인개봉관 : 서울극장) - 590,904명
3. 결혼 이야기 (메인개봉관 : 피카디리 극장)- 526,052명
4. 에일리언 3 (메인개봉관 : 서울극장) - 349,150명
5. 연인 (메인개봉관: 명보극장) - 337,233명
6. 유니버셜 솔져 (메인개봉관 : 대한극장) - 308,429명
7. 리썰웨폰 3 (메인개봉관 : 서울극장) - 301,877명
8. 인도차이나 (메인개봉관 : 씨네하우스, 코아아트홀) - 300,865명
9. 후크 (메인개봉관 : 대한극장) - 281,084명
10. 하얀전쟁 (메인개봉관 : 호암아트홀) - 176,851명
11. 배트맨2 (메인개봉관 : 씨네하우스) - 168,943명
12. 장군의 아들3 (단성사 단관개봉) - 162,600명
주목할만한 부분은 3편의 성인관람가 등급 영화(원초적 본능, 결혼이야기, 연인)가 나란히 1,3,5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편의 영화는 각각 스릴러(원초적 본능), 코미디(결혼이야기), 정통멜로(연인) 등 장르에 충실함을 통해 영화의 개성을 잘 살려서 관객들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매년 방학 시즌마다 작품성 위주의 수준높은 외화들을 엄선하여 개봉하는 것으로 유명한 호암아트홀이 처음으로 한국영화인 <하얀전쟁>을 방학 특선 프로로 개봉하여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만큼 한국영화의 수준 및
작품성이 한단계 도약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인기 액션스타로 각광받으며 극장에서 나름대로 짭짤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던 장 클로드 반담과 돌프 룬드그렌이 처음으로 공동 주연을 맡은 <유니버셜 솔져>는 영화적 완성도 보다는 두 주연배우의 당시 인지도와 개봉관(대한극장)의 명성 등이 흥행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의 반응과는 달리 국내에서 유독 큰 인기를 모았던 주연배우들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스티븐 시걸, 그리고 <유니버셜 솔져>의 두 주연배우인 장 클로드 반담과 돌프 룬드그렌을 들 수 있습니다.
단관개봉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는 개봉관의 브랜드 인지도도 관객들의 영화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멀티 플렉스가 개봉관의 주류를 이루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외 영화정보 및 박스오피스 정보등을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전과 같은 '밀어붙이기식 흥행'은 더 이상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추석 극장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액션영화 및 홍콩영화가 강세를 보여왔는데, 92년에도 어김없이 '명절의 단골손님'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3>가 2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추석 흥행 1위에 올랐으며, <황비홍>,<동방불패> 이후 불어 닥치기 시작한 홍콩 무협영화의 붐과 임청하 신드롬을 겨냥한 <신용문객잔> (양가위,임청하,장만옥 주연)이 24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습니다.
여름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목이라 할 수 있는 겨울방학 극장가에는 휘트니 휴스턴,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보디가드>가 전국 극장가를 접수하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주제가인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의 인기는 90년 겨울의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였던 <Unchained Melody>를 능가하였는데, 노래 인기 지표의 척도였던 길거리 리어카 노점상에선 마치 돌림노래처럼 '웬~다이아~~'(노래 첫 소절의 And I~will always love you를 빗댄 표현)가 퍼져나왔습니다.
국내 영화에서도 영화 만큼이나 OST가 큰 인기를 얻은 영화가 나오는데요. 이현승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안성기,강수연 주연의 <그대안의 블루> 였습니다. 상당히 감각적인 영상으로 관심을 모은 이 영화는 재능있는 가수 김현철이 영화음악을 담당했는데, 김현철과 이소라가 듀엣으로 부른 주제가 <그대안의 블루>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이소라라는 실력파 여가수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됩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 이후 무려 56년만에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황영조 선수는 단번에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으며 90년대 중반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성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당당하게 세계의 모든 관중과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골인하던 모습이 마치 우리 대중문화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던 92년의 상황과 너무나도 의미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변화의 속도와 퀄리티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던 92년의 대중문화 탐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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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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