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수
- 작성일
- 2023.2.28
이방인
- 글쓴이
- 알베르 까뮈 저
민음사
아마 이 북클럽 모임장이 교보문고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면 영원히 읽지 않았을 고전이었다. 모임장이 막 구입한 따끈따끈한 새 책을 그 분이 화장실 간 사이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집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고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져서 그 날 20페이지 정도를 읽고 나머지는 동네 도서관에서 같은 출판사 것을 빌려 끝까지 읽게 되었다.
사실 전체적인 내용은 싱거웠다. 요즘 같으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불리기 딱 좋은 무감각한 주인공이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광기어린 재판을 거쳐 사형선고를 받는 게 주요 내용인데, 주인공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끝나긴 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이 글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해제를 찾아보았다.
<이방인>에 등장한 세 가지 죽음-자연사, 살인, 사형-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이에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주장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 해설의 골자였다. 이러한 해설이 유효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주인공 뫼르소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이 부당하다는 전제말이다. 그러나 뫼르소의 재판과정이 부당할지언정 그에게 선고된 사형 또한 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뫼르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에서 분리된 이방인처럼 산다. 실제로 그 또한 세상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뫼르소는 수많은 세상의 부조리를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무감하게 지나쳤다. 그런 뫼르소가 세상의 부조리에 억압되어 결국 사형당한다한들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자를 친구로 삼아 도와주고, 태양이 뜨거워 무고한 아랍인을 쏴죽인 그 또한 부조리의 일부인데, 결국은 인과응보가 아닌가? 내가 왜 뫼르소를 통해서 삶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느껴야 하는가? 그의 마지막 항변 또한 자기가 죽기 직전에서야 겨우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많은 자유의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그제서야.
이런 관점에서 나는 꽤 흥미로운 칼럼 하나를 발견했다. '<이방인>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소설가 장정일씨의 칼럼이었다. 이 칼럼에서는 프랑스에서 겪는 아랍인의 차별에 주목하며-고전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 <이방인> 또한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에 대해 별다른 비판적 시각 없이 쓰였다-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였기 때문에 결국 감형되어 출옥하고 그 뫼르소가 <이방인>을 썼다고 가정하는 <뫼르소, 살인 사건>이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피살자의 동생이 뫼르소가 집필한 <이방인>을 읽으며 분노하고 논쟁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는 서구의 문학 정전속 제국주의 정당화를 고발하며 그 문학 정전을 제3세계, 비서구적 시각으로 '다시 쓰기'를 한 것이다. 나에게는 해설을 통해 겨우 알게 된 <이방인>의 철학보다 다시쓰기 된 <이방인>의 내용이 훨씬 의미있게 다가왔다. 다음에는 차라리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