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악마를 보았다]를 봤다. 잔혹한 범죄에는 인정사정없는 대응, 심지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개인적인 복수까지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토요일에는 [음모자]를 봤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어떤 잔악한 행위에도 법에 의거한 재판과 처벌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논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봤다. 끔찍한 폭력을 사법제도가 효과적으로 처벌하지 못 할 경우 한 개인이 그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진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말 그대로 사무실이 없이 미국의 고급 승용차인 링컨을 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변호사 믹 할러(매튜 매커니히)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시작부분 크레딧을 보며 나는 시드니 루멧을 생각했는데 얼마간은 맞는 이야기였다. 오래된 팝송 (정확히는 바비 “블루” 블랜드의 [Ain't No Love in the Heart of the City]) 이 흘러나오고 LA의 시가지 모습 위로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이야기 자체도 구식스럽다. 영화가 시작할 때만 해도 믹 할러는 돈만 밝히는 타락한 변호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변호를 맡은 루이스 룰레(라이언 필립)와 예전의 의뢰인 마르티네즈(헤후스 페냐) 사이에 생각지도 않았던 연관관계가 밝혀지면서 할러는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우처럼 하드 보일드한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후줄근한 양복을 걸친 기사이며 위스키를 들이붓는 정의의 사도인 것이다. 떳떳하지 않은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고 냉소적인 대사를 읊조리기도 하겠지만 그의 정직함과 의지는 돈과 권력을 패배시킬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너무 감상적이고 낙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사법제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결국 법치국가를 이루는 것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 개개인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시작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믹 할러의 근성과 끈질김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를 연기한 매튜 매커니히도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느끼지 못 했던 그의 새로운 면이랄까. 그의 남부사투리나 자연스러운 대사 전달력도 유난히 말이 많고, 아니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변호사 역할에는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범죄의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라는 문제를 생각한다. 범인은 이미 체포되었고 공범이 밝혀졌으며 사건의 전말도 속속 보도되고 있으니 재판도 멀지 않겠지만 그 어떤 진실도, 구형도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상처를 씻어주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도 불완전하게 마련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노력하는 일 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