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은 가끔씩 마음에 온기를 넣어줄 따뜻한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특히나 고구마를 먹으며 누워서 읽을만한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이 소설을 손에 든 이유는 그래서였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가벼워도 심하게 가볍다. 책 속 주인공들의 나이는 20대이지만, 청소년들이 읽으면 가볍게 읽으면서도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전세계'는 신문광고에서 [남자친구 구함]이란 광고를 보고 장난삼아 전화를 걸었다가 '은제이'와 애인 계약을 하게 된다.'계약과 동시에 계약금 3억 원을 지불하며, 10일 기준으로 300만 원씩 추가 지급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계약으로 갑이 원할 땐 장소 불문 근무해야 하며 계약기간은 단 100일. 그전에 갑이 사망할 경우 계약이 종료되며 다만 을이 갑에게 마음을 뺏기는 경우 계약 해지와 계약금 반환을 해야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일을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은제이는 심각한 심장병 환자로 남은 날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다. 그녀는 전세계를 애인 삼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해간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생일날 나이만큼의 장미꽃 받기, 어린이병동에 사랑의 도시락 만들어 배달하기, 일출 보기, 둘만의 페이크 웨딩 하기, 기차여행하기, 가족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만들어 먹이기 등..



처음엔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이 귀찮고 돈이 남아돌아하는 철없는 행동같이 보였지만 전세계는 수시로 찾아오는 은제이의 심장발작을 보며 죽음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결국 갑에게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하는 조항을 어기고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는데....







이 책은 사실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근데 엔딩까지 그야말로 소설이기에 가능한 스토리로 마무리하고 있다. 다 읽고 책을 덮으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적어도 엔딩만이라도 조금은 현실성 있게 다가갔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내용으로만 보자면 이 책은 많이 아쉽다. 그런데도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유치하다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는 전혀 허술하지 않다. 오히려 통통 튀고 야무지다. 그리고 가끔씩 툭툭 건네는 문장들이 가슴에 콕 박힌다. 청소년기에 읽는다면 몽글몽글한 로맨스에 죽음에 대한 철학까지 배울 수 있는 꽤 괜찮은 소설로 다가갈 수 있을 거 같다. 이 소설은 블로그에 가볍게 써서 올린 소설이지만, 진짜 마음먹고 쓰면 멋진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사느라 바쁜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죽어가느라 바쁜 그녀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p226



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시간에 쫓기고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가 보낸 오늘은 과연 나의 하루가 맞을까? 왜 우린 꼭 죽음이 코앞에 닥쳐야 삶을 돌아보고 아끼며 살게 되는 걸까? 길거나 짧거나 사형선고받은 건 똑같은데 말이다. 버킷리스트, 그건 죽음을 앞둔 자가 하는 게 아니고, 살아있음을 느낄 때 하는 것임을 이 가벼운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느껴본다. 내 삶의 끝이 보일 때 더 이상 해야 할 버킷리스트가 남아있지 않은 삶... 난 그렇게 살고 싶다.







삶은 하나의 아름다운 놀이라고 생각해. 놀이에는 항상 규칙이 있지만 진정한 재미는 그 규칙을 위반하는 것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어? 무언가에 얽매이지 말고 재미있게 놀이를 즐겼으면 좋겠어. 우린 삶을 구경하러 온 구경꾼들이 아니니까. p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