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원서

루이스메이
- 작성일
- 2022.4.26
西の魔女が死んだ
- 글쓴이
- 나시키 가호 저
新潮社
어려서부터 친가 쪽도 외가 쪽도 조부모가 모두 안 계셨던 나로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부러움이 밀려든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또 다른 감각일거라고 여겨지지만, 아기 때의 기억은 도통 없으니 아무리 할머니가 나를 예뻐해 주셨다고 한들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을 뿐이다. 사람일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막연히 내 가까운 친지들이 계속 곁에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 나중에, 언젠가, 만나면 된다고. 묻어두었던 말도, 미뤄두었던 일도, 함께 떠나고 싶은 여행도, 그때 하면 된다고. 그런 나태함에 대한 후회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다. 주인공 마이는 그토록 좋아하던 할머니와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앙금을 남긴 채 작별하고 말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할머니는 마이의 마음 속 갈등과 회한을 훤히 알고 계셨다. 그리고 약속도 잊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너무 좋아.” “I know.” 할머니와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엄마를 그 자리에 대입해 본다. “말 안 해도 다 알지, 우리 딸.” 엄마의 미소 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자 나시키 가호의 따스한 성장소설 <서쪽 마녀가 죽었다西の魔女が死んだ>는 입소문만으로 출간 이래 쭉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먼저 접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원작을 거의 그대로 살려 소소한 부분까지 스크린에 담아냈다. 책으로든 영화로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보면 마음이 차분해질 듯한 작품이다. 여중생 마이가 등교 거부를 하자 엄마는 여름동안 그녀를 할머니에게 잠시 맡기기로 한다. 마이의 할머니는 영국인으로 일본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만난 남자와 결혼해 정착했다.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일본인보다 더 전통 문화를 사랑하는 할머니.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예지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마녀였다고 마이에게 살짝 귀띔을 해준다.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는 할머니의 지침대로 ‘마녀수행’을 하면서 마이는 건강과 의욕을 되찾아간다.
마녀라고 하면 마법 같은 초능력을 기대하게 되지만, 할머니가 의미하는 마녀란 스스로의 힘을 길러 주위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였다. 단단한 마음을 지닌 마녀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은 너무나도 평범한 것이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매끼 식사를 제대로 잘 하는” 규칙적인 생활이야말로 세상 지키기 어려운 것임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억지로 시킨다고 실천하게 되지 않는 일상의 중요성을 할머니는 현명한 방법으로 일깨운다. 또한 할머니도 엄마도 마이가 등교거부를 하는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짐작 가는 답은 뻔하다. 학교에서 당하는 괴로운 일, 그러나 그건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본인의 선택에 맡겨둔 것이다. 가족은 그저 아이의 결정을 지원해줄 뿐이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녀 수행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었다. 학교생활로 돌아간 마이는 습관이 된 ‘마녀 수행’을 성실히 이행하며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마이의 ‘마녀수행’이 사춘기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훈련이라 치부할 것은 아니지 싶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요즘의 루틴에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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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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