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퀴즈에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승부' 홍보차 실제 주인공인 조훈현 국수와 이병헌 배우가 나왔더라고요. 그걸 보고 너무 흥미로워서 영화를 봤습니다.

정말 재밌게 봤어요. 영화에서 이창호 님의 불편함도 다루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는, 그래서 영화에 담아내기 좋은 조훈현 님의 비중이 더 많은 편인데요. 사실 이창호 님도 너무나 힘들었을 겁니다. '둘 다에게 못할 짓이다'라는 영화 속 작은 엄마의 대사처럼요.

유퀴즈에서도 나왔듯이 말 한마디로, 한 문장으로 표현이 안될 만큼 복잡한 감정이 오갔을 텐데 두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바둑의 신인 이창호 님의 책을 읽어봤습니다.

이거 읽고 마침 넷플릭스에 승부가 떴길래 한 번 더 봤는데요.

몰입이 더 잘 되더라고요. 영화에선 짧게 지나갔던 그 장면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서야 깊이 와닿았어요.

오늘 리뷰할 책은 바둑의 황제 조훈현 국수가 키워낸 바둑의 신 이창호 님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이창호의 부득탐승이란 책인데요. 영화를 먼저 보건 책을 먼저 읽건 꼭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바둑 규칙도 모르는 저이지만 책도 정말 재밌었고 영화도 정말 재밌었어요. 

책은 이창호 님의 36년 생애를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요. 영화 '승부'에서 다룬 건 이창호 님이 조훈현 님의 내제자로 들어가 타이틀을 빼앗고 출가해 다시 만나겨루기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책 분량으로 따지면 3분의 1 정도 밖에 안되고요.

그 3분의 1의 분량 또한 엄청난 생략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영화 초반부에 이창호 님의 할아버지가 잠깐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바둑과 손자를 사랑하는 건 유추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창호 님에게 처음 바둑을 알려주고 기원을 순례하며 자유로운 바둑의 틀을 잡아주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세상의 진리를 어렸을 때부터 체험시켜주고 이창호라는 사람의 인생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마음의 스승이 그의 할아버지라는 건 영화에선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죠.

이 책을 참고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게 운동화 끈을 못 묶는 장면이었어요. 영화에선 연구생들에게 계속 피하고 선생님께 혼나서 편지를 남기고 터미널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이병헌 배우가 나타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신이 있죠.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책에 그 이유가 자세히 나옵니다. 아인슈타인 증후군이더라고요. 어린아이가 얼마나 바둑에 혼신의 힘을 다했으면 저랬을지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뇌의 한 부위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발달해 갖가지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뇌 부위가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내 언어기능이나 성장발육에 필요한 상당한 자원들이 바둑에 몰입하는 에너지로 소모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한다. p.58

그리고 저 또한 그랬는데 영화 '승부'가 조훈현 vs 이창호, 스승과 제자 사이 피 튀기는 혈투 막 이런 식으로 강조가 돼서 이창호의 스승은 Only 조훈현이라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책에서도 운명의 스승이라고 조훈현 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 외에도 이창호란 사람이 바둑 기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더라고요.

전국 대회 우승 전력을 가진 전주의 아마 강자 이정옥 사범에겐 1천 판이 넘는 바둑을 배웠고 전영선 사범이나 영화에선 조우진 님이 연기한 남기철의 모티브가 된 서봉수 9단 등 많은 분들께 가르침을 받았더라고요.

물론 조훈현 국수가 어마어마한 바둑의 천재이고 확실한 스승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배우고 같이 성장했기 때문에 여러 스승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책에 있는 내용 중에 참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 많은데 조훈현 국수를 넘어 세계 바둑 대회에서 여러 강자들을 만나 승리하고 패하며 성장해 나간 이야기들도 참 재밌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일본 바둑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긴 조치훈 9단의 휠체어 대국에 관해 뒷이야기에요.

이건 인터넷에도 찾아볼 수 없는 얘기라 참 인상적이었어요. 

바둑을 아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정말 재밌을 것이고 바둑을 잘 모르시더라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책을 읽고 나서 모차르트나 마이클 잭슨이 떠오르더라고요. 한 분야에 이름을 새기려면 그토록 어린 나이부터 한눈팔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창호 9단은 강제로 떠밀린 게 아닌 그 어린 나이부터 본인이 바둑이 좋아서 시작한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 약간 다르지만요.

일반적인 수식어가 아닌 무려 바둑의 신, 신급의 계산 능력이라 불리는 역대 최고의 기사 이창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 영화 승부를 재밌게 보신 분들, 바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