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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inko (미국판)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원작소설
글쓴이
이민진 저
Grand Central Publishing
평균
별점9.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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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일 강제 합병 전후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1세대가 해방전에 일본으로 이주해서 겪게 되는 삶의 질곡을 시간 순으로 써내려 가는 대하 소설이다.  



 



소설은 부산 영도에서 허름한 하숙집을 운영하는 부부와 그들의 딸, 선자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대로 살만했던 삶은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고달파진다. 열일곱의 선자는 자신보다 열네살이나 많은 고한수와 사랑을 나누고 노아를 임신한다. 그와 결혼을 꿈꾸던 선자는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와 헤어지고 자기집에 묵던 결핵을 앓고 있는 목사 백이삭의 희생적(?) 결단으로 그와 결혼, 그의 형이 사는 일본 오사카로 이주한다. 아이가 없던 이삭의 형 요셉과 그의 처 경희는 선자의 허물을 감싸주고 가족으로 따뜻하게 대해준다. 세월이 흘러 노아 동생 모세도 태어나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듯하더니 목사 이삭이  일왕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몇년이나 갇히고 풀려나자마자 죽는다. 그의 형은 그때부터 이상해져서 여자들이 김치장사, 사탕장사 등을 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안정되어 가던 생활도 잠시 일본의 패망으로 오사카는 전쟁터가 되지만 선자 가족은 오사카 최강의 야쿠자 두목인 고한수의  도움으로 무사히 살아남는다. 



 



고한수의 도움은 계속되어 자기 아들 노아의 대학 학비와 생활비까지 책임지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과 절연한다.  그는 멀리 달아나 정체를 감추고 파친코 매니저가 되어 가정을 이뤄 살던 중 어머니가 찾아 온 다음 날 자살하고 만다. 이 장면이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야쿠자의 아들, 그의 돈을 받아 교육받은 사실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지, 지난 시간 고생 고생 키운 어머니에 대한 배신을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시대가 그렇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어도 그렇지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었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측은지심과 이해심은 왜 그리 부족했는지... 그의 유약함에 이해가 조금은 가면서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남편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편 왈, 아마도 노아는 야쿠자 친부와 부정한 어머니의 과거를 지우고자 도망쳤지만 정작 자신도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는 파칭코 매니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음에 대한 창피함, 부끄러뭉, 무력함때문에, 그렇게도 야쿠자를 저주하더니 야쿠자와 거의 같은 비난과 조롱을 받는 도박업을 하고 있는 자신이 저주스러워서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고.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지금은 한국, 그전에는 일본의 자살율이 최고였던 현실을 책 어디선가에는 넣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작가의 도리같았다고. 그 희생양이 노아였다는 것이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허무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이 소설이 조금씩 재미 없어졌다.



 



한편, 노아의 동생 모세는 공부 재주는 없고 장사 재주가 있어 파친고로 성공한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부자 아버지 덕분에 미국에 유학하여 돌아와 금융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일본인 사장에 의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해고된다. 국제학교에서 온실처럼 자란 그가 처음 겪는 공식적 차별인 듯한데... 재일 한국인의 한계에 부딛힌 노아는 아버지 파친코를 물려받고자 결심하기에 이른다.  재미 교포 여자친구는 청혼을 계속 미루는 솔로몬에 실망하고 결국 떠난다. 백씨 남자 3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소설은 70대의 선자가 남편과 큰아들의 묘지를 방문하며 회한에 젖는 장면으로 끝난다. 



 



책 중간 중간에 자주 나오지만 재일 한인들은 엄청난 차별과 멸시에 시달렸다. 그런 그들에게 좋은 직업이 주어질 리 없다. 직업 선택지는 신분을 숨긴 채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아니면 파친코, 야쿠자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무직으로 취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나머지는 일본인들이 하기싫은 고된 노동뿐. 



 



선자의 첫사랑 고한수는 아무리 야쿠자였지만 동족을 위한 마음과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인과 그 가족, 특히 아들에 대한 책임은 다하려했다. 전쟁통에 죽을 번한 선자의 시아주버니를 구하고 친정 엄마까지 일본으로 데려온 그가 왜 비난만 받아야 하는 지 모르겠다. 물론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긴것은 골백번 잘못된 일이지만. 



 



반면 선자의 남편 백이삭은 착하긴 하지만 유약하고 능력이 없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버린 양심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단지 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추앙받아야 하는가? 고한수가 아무리 나쁜 깡패 두목이라지만 그는 최소한 자신의 자식을  져버리지는 않았다. 신앙이 자신의 목숨과 가족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하긴 요즘도 광화문에 모여서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종교 무리들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있긴 있는 것 같다. 이삭처럼 순수한 종교인들은 물론 아니겠지만.



 



한편 백씨 3대남, 솔로몬은 파칭코 머니로 사우디 왕자처럼 부유하게 자라 국제학교에 미국 콜럼비아대학까지 나온 능력남이지만 정작 비교할 수도 없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창녀가 된 그의 첫사랑이자 아빠의 일본인 동거녀의 데려온 딸과 현재의 재미 한인 여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를 보면 딱하다. 이것이 재일 청년의 현재(80년대 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까? 국적조차 불분명하게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들.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외국인으로 사는 삶. 한국을 택할 수도 일본을 택할 수도 없는 현실. 솔로몬은 결국 일본인 전 여자친구의 충고를 따른다. 아버지의 파친코를 물려받기로. 그는 경계인으로서 가장 현실 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다. 멸시받는 직업일망정 자신이 있을 곳은 거기밖에 없다는 자각때문이엇을까? 삼촌 노아는 야쿠자 친부의 존재와 그것을 숨겨 온 엄마를 참을 수 없어서 자살하지만, 솔로몬은 야쿠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파친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이 세대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같아 다시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는 요코하마에서 유치원부터 국제학교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아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한다. 그런데도 재일한국인이라는 그 불편한 정체성을 왜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일까? 왜 재미교포 애인을 따라가지 못했을까?  노아는 그토록 영미 문학이 좋았으면서도 왜 일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재일 한국인으로 고통받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죽어야만 했을까? 



 



고국이 아닌곳에서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책을 읽을때 스쳐가던 의문들을 열거해 보니 작가가 이 책에 많은 생각할 지점을 남겨놨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는 7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 작가인데 성인이 되어 일본에 4년간 거주하며 수집 조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소설 속 모든 사건은 실화라고 한다. 여러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 집에 책이 있는데도 요즘 눈이 좋지 않아 못읽고 있다가 마침 이곳 전자도서관에 들어왔길래 빌려 들었다. 대개 오디오북은 저자가 읽어주는데 이책도 마찮가지였다. 그런데... 소설은 사람이 읽어 주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아무 감정 없는 로보트가 읽어주는 편이 훨씬 객관적으로 들린다. 가끔 작가가 연기를 하며 읽는 부분은 조금 억지스럽고 닭살스러워 작품에 몰입하는데 굉장히 방해가 된다. 한국어나 일본어 발음이 둘 다 너무 어색해서 역시 몰입에 방해가 된다. 영어권 청자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녹음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강연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한국어 발음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듯.



 



 다만 저자가 읽어주는 이 책을 들으며 세계 어디에 있든 모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가르쳤다, 미국인처럼 영어 잘하게 하려고 집에서 한국말을 일부러 안썼다. 한국이 이렇게 잘살게 될 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질 지 몰랐다...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한국어를 배울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 미래에 한국어를 쓸 일이 생길 줄 몰랐을테니까. 그들이 떠나던 시점은 한국이 너무나 못살던 시절이었으니 이해는 간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데 한국어에 목마를 이유가 없었으니. 요즘은  K-pop이나 드라마때문에 세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끔 한인 교회를 가보면 20년전보다 확실히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하기는 한다. 내 가족 중에 영어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나는 혼자 열심히 독학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너는 부모가 한국어를 하는데 왜 배울 생각도 안하느냐... 라고 나무라는 것은 좀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다들 개인의 능력과 사정의 차이가 있을테니.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은 일단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아 모르겠다. 그저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정체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태어나 자란 곳이 내 나라면 내가 어느나라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어나 청소년기를 지나서 이민을 간 사람들도 자신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릴때 이주했거나 이민2,3세들이 정체성으로 많은 고민들을 하는 것 같다. 어떤 재미교포는 그 기준이 5세라고 하기도 하던데. 최근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혼란이 더 커졌지만 오히려 정체성 갭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일 언어와 단일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이민족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이민자의 나라 미국, 캐나다, 호주가 아직도 이민 선호도에서 최상위에 있지 않은가. 소설 속 백씨 3대가 이삭의 첫번째 아내의 소원대로 미국으로 이주했더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흑백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이지만 일본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좀 더 개방적인 사회에서라면 노아는 그런 무의미한 죽음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같은 생각이 든다. 독자로서 소설 속 인물들 중에 가장 총명한 노아에게 많은 기대를 했어서 그런지 그의 죽음이 아주 실망스러웠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희망과 해피엔드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었는데 내가 괜한 기대를 해놓고 실망을 했던 것이다. 내 책임이다. 크.



 



사족. 우연찮게도 지난주에 본 싱가폴 드라마 "The Little Nyonya"와 작품 배경의 시기가 일치한다. 일본에게 고통받는 시기도 같고, 여인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개척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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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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