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시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내 언어의 나무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더 겸허하고

좀더 인내롭고

좀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해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이해인 저 샘터 | 2000년 04월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란 시다. 

글이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면 말은 곧 그 사람이다. 그만큼 우리는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 즉,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경청해서 잘들어야 그에 맞는 시의적절한 말을 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힘들어하거나 슬픈 이들에게는 한 마디 말보다 같이 있어주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이해인 수녀님은 이 시에서 침묵의 지혜를 말씀하신다.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리라...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사람을 살리는 말, 기쁨을 주는 말의 씨를 곱게 심어서 내 마음 속 언어의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