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어클럽 서평단 리뷰

문학소녀
- 작성일
- 2023.11.23
하루의 바깥
- 글쓴이
- 신대훈 저
꿈공장플러스
글쓰기의 염원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바램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섬세한 문체로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듯 묘사하는 글을 발견하거나 그런 책을 읽을 땐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로 행복하면서도 부러웠다. 늘 느끼는 거지만, 글로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입히는 작가의 역량은 과연 태생적인 타고남인지 숱한 세월의 더께를 덮고 이룬 노력의 산물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은 한결같이 많은 책들을 읽는 다독가이며, 책을 집필한 경험들을 트로피처럼 갖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언어의 마술사 혹은 언어의 연금술사라 부른다.
나는 책을 고를 때마다 꼭 고려하는 것이 있다. 물론 책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기에 반드시 살피게 되는 것이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책을 집필한 저자의 문체다. 문체마다 여러 성향들이 있겠지만, 나는 섬세하면서도 묘사에 살을 붙이는 유연하고도 부드러운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렇게 작가의 문체를 따져가면서 책을 구매하는 편이기에 내 책들은 거의 소장용에 가깝다. 가볍게 내용만 보고 읽을 책이라면 차라리 사는 것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한 권의 책이 흡사 묘묘한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언어의 보고(寶庫)같았다.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소개하면 이 책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하지만 좋은 책은 스스로 찬란하게 빛날 것임을 알기에 이 공간을 빌어 가감 없이 소개하려 한다.
『하루의 바깥』: 신대훈 에세이/신대훈/꿈공장플러스, 2023년 10월 27일
이 책 『하루의 바깥』의 저자 신대훈 작가는 자칭 "쓰는 사람"으로서 "모든 생을 세밀히 사려하고 연민하는 인간이 되려 한다"고 책날개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결국 모든 날이 괜찮지 않았지만』이 있다.
작가는 본문에서 "나는 두려웠다. 영원히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작가라는 사람은 철저하게 '나'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p.175)라고 하면서 작가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내 글은 오직 노동의 산물이며, 엄중한 규칙과 시간의 근육으로 탄생했다." (p.175)
이 책은 작가의 말 및 첫 글, 마치는 글과 함께 총 세 파트로 나뉘며, 순간의 피사체들, 고통의 정면으로, 잃어버린 빛깔이란 주제로 총 83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며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익숙한 단어들이 아닌 생소하게 낯선 언어들이 주는 신선한 느낌은 그 자체로 책의 만족도를 높여주어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예를 들면, "우리 곁엔 우릴 위해 "묵연히" 그늘지는, 흔하고 평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p.50)에서 "묵연히"란 단어는 "잠잠히 또는 말이 없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동의어로는 "묵묵히, 잠잠히"로 쉽게 써도 되지만, 새로운 단어를 익숙함으로 천착시키기 위해서는 당분간 문장들에 적용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은 절을 감싸 보호하고 있고, 절은 산에게 "담쏙" 안겨 있다." (p.86)이 문장에서는 "담쏙"이란 단어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담쏙"이란 '손으로 조금 탐스럽게 쥐거나, 팔로 정답게 안는 모양'이란 뜻을 갖고 있는 의태어이다. "담쏙"이란 단어가 주는 정겨움이 좋았다. 마치 유년 시절의 정겨웠던 풍경들이 오버랩되면서 내게 잊혀지지 않는 정겨운 단어로 각인되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청년 작가가 쓴 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책의 완성도가 높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과 고립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는 작가의 지난한 세월의 하중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작가에게는 꿈도 부잡스러운 사치가 될 정도로 삶이 버겁고 고단했다. "사는 일은 어쩌면 나날이 깍여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생은 어느 방면에서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p.218)
"10대 초반, 방황과 글쓰기, 고립된 나날, 우울, 그것들은 모여 내가 된다." (p.277) 이 대목의 문장처럼 작가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은 횟집 장사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한 살 어린 동생을 돌봐야했고, 가난한 어른들의 퉁명스러움과 돈으로 야기된 갈등과 이기적인 충돌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니 작가는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가 느끼는 행복이란 즐거움이 아니라 "뿌듯함과 보람"과 같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느끼게 되는 자기만족과 같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작가는 늘 즐거움 뒤에 따라오는 불행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즐거움과 불행은 서로 상충하면서도 동일시되는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기억이란 꼭 뾰족하고 껄끄러운 장면을 가져와 남기는 성질이 있어서, 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은 마치 행복과 근접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검고 이상했다. " (p.147~148)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강인한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내공이 깃든 필력은 도대체 어디서 발원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더욱 책읽기에 몰입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들이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겠지만, 나는 특히 출중한 작가의 문체를 닮고 싶어서 책을 읽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다. 이 책의 저자는 특히 단문을 좋아한다고 한다. 단문은 곧장 핵심으로 치고 들어가기 때문에 농밀하고 깊다고 하면서 "버리고 걷어냄의 미학"이라는 말로 칭송하고 있다. 이렇게 문장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작가도 다른 작가들의 글에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처음 접하는 생경한 단어들의 뜻을 살피고, 예문을 적어 놓으며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기본에 충실한 것'만이 최고의 진리이며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처음 보는 단어를 쓴다. 곧장 국어사전을 열어 그 단어를 검색한다. 메모장에 뜻과 함께 예문을 옮겨 적는다. (그 단어가 내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 그러나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도 없는 "묘묘한 지옥"에 나는 빠져 있다. (...) 일단 적어놓으면 단어에 잔열이 남았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 자체가 수많은 잔열을 그러모으는 일이기도 하고." (p.176~177)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하루의 바깥>이란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가 궁금해졌다. 하루란 다른 말로는 일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상의 바깥은 무슨 뜻일까. <하루의 바깥>은 이 책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에피소드의 제목이기도 하기에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 이 에피소드의 주제문인 "나는 날마다 익숙한 듯 낯선 관통을 느낀다." 라는 문장 역시도 추상문처럼 느껴졌다. 특히, 이 에피소드는 '바람'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풀어놓는다.
"계절이 건네오는 수많은 선물 중에서 나는 '바람'을 가장 사랑한다." (p.75) 작가는 바람의 종류와 느끼는 감응들이 장소와 시간, 감정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릴 적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할아버지의 손길처럼 보드랍다가도, 뺨을 후려 맞는 것처럼 따갑기도 하다." (p.75)
"따분하고 무겁게 타고난 나의 기질을 거스르는 바람을 맞으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신기로운 감각을 여는 하루가 살포시 왔으면 한다고, 일상이 권태로울 때마다 나는 종종 소망해 본다. " (p.76) 어쩌면 이 문장에서도 말해주듯이 '하루의 바깥'이란 반복되는 일상 속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생기와 신선한 감각을 여는 하루가 오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싶으신 분들이거나, 마음의 감기를 앓고 계신 분들과 여전히 사는 것의 무게에 짓눌려 버거운 삶을 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가난하지 않은 다정을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작가의 진중한 글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일렁이며 꽂힐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나처럼 작가들의 문체에 매료되서 책을 읽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리뷰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정말 생경한 언어들의 천국이자 보고로, 다채로운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즐거웠던 행복보다는 다행이었던 행복에 더 편안함을 느꼈던 이 책의 저자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이 글의 끝을 맺는다.
"너는 그 순간순간 너도 모르게 단단해진, 행복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모든 순간이 너였다. 中)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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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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