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만큼 집착에 가깝게 정치 뉴스에 몰입한 적이 없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나에게 정치 뉴스란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영역에 있었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스와 SNS를 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주변 반응을 보며,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정치 뉴스에 피로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민생이 걸린 현안이나 우리나라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보다는 가십성 이슈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뉴스를 보려고 굳이 ‘노력’을 해야 했던 이유다. 물론 언론이 가십에 중점을 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정치가 그러한 사안에 주목했기 때문일 테다. 지난달 경향신문에서 미류 역시 산적한 현안을 무시하는 정치를 문제 삼은 바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압축 소멸 사회》의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가 소멸 위기에 처한 원인을 정치 소멸로 진단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를 비판한다. 독자는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는 글을 읽으며 근본적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세워 볼 수 있다.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시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일련의 사태는 ‘정치 소멸’로 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의 결집만을 꾀하고 자신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는 정치 세력이나 민의를 무시하게 된 것이 분명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검찰국가의 배신》(한겨레출판, 2024)은 윤 정부 이전부터 두드러졌던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해부했으며 《불온한 공익》(한겨레출판, 2024)은 사회가 강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공익을 인정해 왔다는 점을 짚었다. 이 책의 저자는 변질된 계파 정치나 정부의 사법 관료 포퓰리즘, 대통령의 우경화된 이념과 역사 인식을 지적하며 정치가 내부에서 어떻게 실패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여당은 가치와 비전을 뒤로한 채 권력에만 눈독 들였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정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사법적 논란만을 부각했고,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전 정부나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명명했다. 독자는 이러한 정치적 실패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사회 문제 자체도 시의적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저출생과 자살, 지방 소멸과 기후위기는 시급한 대처를 요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 자극적인 이슈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 교수가 한국의 출생률을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놀라는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한국에서 출생률이 감소하는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소멸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그 원인으로는 자산 양극화와 가계 부채, 여성의 육아 부담이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지목된다. 그러나 저출생 예산 지출은 생색내기식에 불과했다. 지방 소멸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치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성화’를 하라며 오히려 소멸을 가속화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RE100이나 기후공시 의무화를 추진하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기후공시 의무화 조치를 무기한 연기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증명하는 얄타 체제의 해체나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9·19 남북 군사 합의의 효력 정지 등은 전쟁 위협으로 한반도가 우발적 소멸에 직면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간담을 더욱 서늘하게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6일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를 오직 ‘정부’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치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의 역할에도 기대고 있음을 되새기며 여러 당 사이의 경쟁뿐 아니라 당 내부의 여러 정치 세력 간 경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때 경쟁이 뜻하는 바는 권력 투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놓고 경합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현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 소수 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책 마련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다. 저자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정치 탄압을 받은 것은 맞지만, 당 대표의 생존을 이야기했을 뿐 실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자살률이나 출생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로서 시민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4·19,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1987년 민주화, 2016년 촛불 등 위기 때마다 시민이 있었다는 저자의 말대로 2024년 여의도에는 형형색색의 불빛을 밝힌 시민들이 있었다. 시민들에게서 탄핵 이후 정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소멸하는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촉구하고, 숙의와 토론이 가능한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라며 뒤로 밀려났던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규정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성차별 타파, 장애인 이동권 보장,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비롯해 무분별한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다시 불러와야 할 때다. 한국이 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고민하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며 동료 시민들과 정치 및 사회 각 분야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싶다. 저자가 말했듯, 침몰하는 배에서 백 명 중 열 명을 가려 구명정에 태우는 기준을 따지는 식의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면 구명정이 왜 그렇게 작을 수밖에 없는지,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