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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토리
- 작성일
- 2019.12.11
걷는 사람, 하정우
- 글쓴이
- 하정우 저
문학동네
걷는 사람,
하정우

담백한
자기다움에는
멋 부리지 않은 멋이
깃든다.
■ 나만의 리듬, 나만의 스타일
나는 배우 하정우 씨를 좋아한다.
그냥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럴듯하게 내세울 만한 이유를 찾진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 녀석과 느낌이 비슷하다. 그런
익숙한 감상 때문은 아니다. 좋은데 이유 없다지만, 남자가 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겐 다른 끌림이 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걷는 사람? 걷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리가 불편해서 부득이 휠체어나 목발의 도움을 받더라도 사람이 움직이다는 건 걷는다는
행위에 포함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굳이 '걷는 사람'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역시나, 그만의 의미가
있었다.
신선했다. 이렇게나 걷기에 열광하는 천만배우라니. 어쩌면 이런 편견 때문에 그는 걷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처럼 걷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처럼 걷진 않았다. 그는 세상에 어우러진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것 같다. 반면,
나는 세상을 향해 나를 잊고 걸었던 것 같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겉으로 볼 때는, 우리가 볼 때는.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렇게 보지도 않고
그럴 이유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하정우라는 사람으로 사는 것뿐이다. 오히려 화려함이나 특별함이라는 관념에서 자유롭다. 그에게 하정우라는
사람은 자존감을 갖고 자기 삶을 사는 세상 속 존재에 불과하다. 나는 어떤가?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겉으로 보나, 누가 보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기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그저 유승욱이라는 사람으로 사는 게 안타깝고 때론 버겁기까지
하다. 세상 속에서 빛나기 위해 안달이 난 채 잰 걸음만 재촉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매일 걷지만 '리듬'이 없다. 나만의 리듬이 없으니
스타일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 내가 느낀 하정우 씨의 멋은 그런 '스타일'인 것 같다. 달리 말하면, '그답다'는 거다.
'~답다'는 말은 그 사람 특유의 성질이나 특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아도취와는
다르다. 제 모습으로 제 삶을 사는 것뿐이다. 거기에는 자기 삶의 여건이나 처지에 대한 인정과 감사,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의지와 신념이 있다.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길 원하는 그의 철학이 리드미컬한 걸음에 실려 삶의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 멋 부리지 않은 멋
'꾸안꾸'라는 말을 들어 봤는가?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줄임말로 자연스러운 멋을 표방하는 신조어다. 최근 한 주류회사가 새로 런칭한 맥주 광고는 '최고의 공법은 아무 공법도
쓰지 않는 것이다'라며 자연의 기다림을 내세웠다. 하정우 씨의 걷기가 그렇다. 걷기의 끝에 만끽하는 쾌감이나 만족감보다는 걷는 동안 '많이
웃었다'는 회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2부의 제목은 '먹다 걷다 웃다'다. 특별한 것 없는 특별함이 삶을 충만하게 함을 깨닫게
한다.
사실, 안 꾸민 듯 꾸미는 일은 어렵다. 아무 공법도 쓰지 않는 공법을 구사한다는 건 어쩌면 말장난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엔 치열하지만 과열되지 않은, 진솔하지만 경솔하지 않은 입장과 태도가 담겨 있다. 멋은 드러내지 않을수록 베어나온다.
우러난다고 한다. 우리는 그걸 아우라(aura)라고 부른다. 그는 오디션 과정에 대한 언급에서 '보석은 그 짧은 시간에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고
했다. 한밤 별이 빛날 수 있는 건 한낮 몸을 숨기고 태양빛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은 온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감내하느냐의 문제다.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 위한 지름길은 없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배워보길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당연한 것으로부터 연기를 배워가는 것이다'라고.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이 너무나도 사소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삶의 파편들은 어떤 삶의 태도를 견지하느냐에 따라 그 맥락이 달라진다. 맥락에 따라 수년 혹은 십수년이 지난 후의 삶도
다르다. 살아온 날들의 의미와 살아갈 날들의 가치가 달라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매료됐던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 해 안타깝다.
지금도 미련을 품고 있다. 하지만 하정우 씨의 걷기를 보며, 내가 너무 거창한 기회를 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꼭 그 길을 걸어야만 할까?
어느 곳이든 내가 걷는 곳이 길일 텐데. 바람일 순 있지만 그 바람이 어떤 허세 때문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 허세가 떨구어지면 그 길도
걸어볼 만할 것이다.
하정우라는 배우를 좋아했지만, 다시
봤다. 더 멋있게 보인다. 그는 걷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아니, 그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나에게도 그의 걷기
같은 게 있다. 그건 쓰기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다. 쓰는 사람, 유승욱. 아, 가슴 설렌다.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불러도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 나의 삶도 그렇게 아주 사소하고 당연한 것으로부터 배워갈 것이다.
'쓰는 사람, 유승욱'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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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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