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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되어라, 친구여
글쓴이
이소룡 저
필로소픽
평균
별점8.7 (6)
밤토리

거스르지 않되, 휘둘리지 않는


 


 

■ 무술을 배우는 이유

 

2010년 개봉한 견자단 주연의 영화 <엽문2>의 한 장면, 패거리와 싸움을 하게 된 스승 엽문과 제자 황량. 황량이 묻는다. "혼자서 몇 명까지 상대하실 수 있습니까? 패거리가 떼로 달려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엽문이 대답한다. "도망가야지." 피식 웃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우문현답이다.

 

무술을 배우는 이유는 흔히,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다. 싸움을 잘하면 상대방이 겁을 먹고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무술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무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궁중무술 합기도를 배우러 갔을 때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무술을 배웠다고 해서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면 혼쭐이 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무술은 싸움일 뿐이다. 그 전에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번은 같은 도장에 다니는 나보다 급수가 높은 친구가 시비를 걸어왔다. 대련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싫다고 했다. 녀석은 내게 겁쟁이라며 나를 자극했고 패거리는 손가락질하며 무시했다. 어리석게도 녀석과 대련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의 하단 돌려차기 기술이 제대로 꽂히며 녀석이 넘어졌다. 그러자 녀석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대련을 싸움으로 변질시켰다. 몇 대 맞고 나도 몇 대 때렸다. 무술 좀 배웠다는 놈들이 한 데 뒹굴거리며 그냥 싸움을 했다.

 

그 순간 관장님이 나타났다. 자조치종을 들으시더니 우리 모두에게 호통을 쳤다. 나는 억울했다. 하지만 관장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이 누가 더 싸움질을 잘하는 지 가늠하라고 가르친 게 아니다. 자기 몸을 함부로 싸움에 내던지고 의미 없는 분노심에 서로를 해하는 건 무술의 참뜻이 아니다. 너희들은 배울 자격이 없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라."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며칠 뒤, 나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가 화해를 하고 가서 사죄드리자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다른 곳에 다니기로 했단다. 나는 관장님을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리고 다시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관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지금의 네 모습이란다. 앞으로는 내 말을 잘 새기고 너 자신을 소중히 다룰 수 있도록 하려무나."

 

무술을 배우는 것은 싸움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무술은 상대방을 향해 내 주먹을 뻗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서서 길을 비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갈 수 있도록 먼저 비켜 서주는 것이다. 어깨를 부딪혔다고 째려보며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괜찮냐고 물으며 사과를 하는 것이다. 무술은 배우는 것은 싸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 몸과 마음을 다루는 방법

 

무술은 일반 근력 운동과는 다르다. 또 일반 명상 수련과도 다르다. 몸과 마음을 한 데 모아 나 자신을 정립하는 일이다. 이소룡은 당대 최고의 무술가였지만 철학가였다. 그는 무술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수련했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곤, '물이 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물은 단단함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물이 돼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드러울수록 강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부드러움은 무엇일까? 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거스르지 않되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스르지 않으려면 현실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탓하기만 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미래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걱정과 우려에 사로잡혀 있다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자연스러움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이 순간을 그저 사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소룡은 온 몸에 힘을 주고 인상을 쓰며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쏘아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전혀 달랐다. 그의 일상은 영화에서처럼 몸에 상처를 입거나 적을 때려눕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자기 재능을 발휘하며 자기 철학을 실천했을 뿐이다. 그의 눈빛은 온화화고 미소는 따뜻했다. 정의를 지키고 사랑을 실천했다. 자기 삶의 물이 된 것이다.

 

그의 기록을 읽고 장면들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내 삶을 진정 '살고' 있는가? 부드러운가? 자연스러운가? 흐르는가? 그가 제안했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를 발휘하고 있는가? '그저' 사는 대신 '그냥'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삶은 진정 나다운 삶인가? 또한 내 삶의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내 몸을 너무 한가롭게 두었다. 내 마음을 너무 소홀하게 대했다. 작은 다짐을 실천해 옮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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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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