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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고양이
- 작성일
- 2021.5.4
개
- 글쓴이
- 김훈 저
푸른숲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노을 진 저녁들은 모두 입을 벌려서 쉴새 없이 무어라 지껄이면서 말을 걸어온다.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인다. 늘 그러하니,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 p16
그것이 엄마의 본래 마음이다. 그러니까, 슬픔조차도 본래부터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엄마의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간 맏형의 몸은 엄마의 영양분이 되고 엄마의 젖이 되어 눈도 못 뜬 우리의 목구멍 안으로 다시 넘어왔을 거다. 우리는 그 젖을 빨아 먹었다. 쪽쪽 빨아먹었다.
p27
더 중요한 공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눈치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잘보는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여기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도 개처럼 남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남들이 슬퍼하고 있는지 분해하고 있는지 배고파하는지 외로워하고 있는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 지겨워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척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p31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다. 남의 눈치 전혀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 되건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 대접을 받고 또 이런 사람들이 소신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을 웃는다. 웃지 않기가 힘들다. 그야말로 개수작이다.
p34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p48
개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 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p58
나는 어린 영수가 싼 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똥을 먹은 일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동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하지만 내가 똥을 자꾸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제는 똥을 먹지 않는다. 먹고 싶을 때도 참는다.
p86
나는 나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는다. 믿음은 확실해야 하고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다급히 짖을때나 싸울때 나는 짖지 마, 이리 와, 라고 외치는 주인님 말을 듣지 않는다. 들리지가 않는다. 주인님은 사람이라서, 눈앞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죄송하지만 어쩔수 없는일이다. 싸워야 한다는 믿음이 흔ㄷ르리는 개는 개 축에 들지 못하고 판단이 정확하기 않은 개는 좋은 개가 아니다.
p112
나는 되도록이면 싸우거나 달려들지 않고, 짖어서 쫓아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동네에서 살아야 하는 개의 도리다. 또 쓸데없이 싸우다가 다치지 말고, 기어이 싸워야 할 때를 위해서 몸을 성히 유지하면서 힘을 모아두어야 한다. 사람 동네에서 개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p114
전지적 개의 시점으로 바라본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
2005년에 자신의 소설을 손보아 다시 엮은 책이라고해요.
소설 "개"를 읽다보면, 개에 대해,
개의 시선으로 인간을 지켜볼수 있는데,
관찰력과 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작가님이네요.
인간들을 바라보는 진돗개 '보리'의 이야기예요.
엄마 배속에서 다섯형제들과 함께 세상에 나와,
냄새로 감각으로 세상을 익히고,
조금 커서는 온몸으로 세상을 마주한 보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수몰지역에서 함께 살다가,
둘째 아들이 사는 어촌으로 옮겨가고,
바다와 아이들을 벗삼아 살아가는 보리의 파란만장한 일상이 담겨있어요.
흰둥이를 몰래 지켜보는 사랑도 있고, 악돌이와의 싸움도 있고,
개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고할까요?
개의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감각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냄새를 글로 표현한 문장에 감탄사가 절로나왔네요.
바다에 고기잡으러 간 주인이 죽은후, 할머니 가족들이 큰아들네집으로 가지만,
남겨진 보리의 미래는 똑똑한 보리도, 알수 없네요.
개가 인간을 이해할수 없듯, 인간도 개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본문에 등장하듯,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한 서로의 수수께끼가 되겠지만
일본작가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인간은 시크하고 우습게 바라보던 고양이와는 달리,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는 인간을 친구로, 영원한 동반자로 바라보는 그 시점이 좋았네요.
전지적 "개"시점!!
김훈님의 장편소설 "개" 추천해요~!!
*독서리뷰어스클럽에서 도서만 무상제공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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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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