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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강이숨트는새벽
- 작성일
- 2017.6.11
네버랜드
- 글쓴이
- 온다 리쿠 저
국일미디어
네버랜드 ㅡ 온다 리쿠 , 권영주옮김 , 국일미디어 .
< 도서관대출도서 >
식욕이 일단 만족된 듯한 오사무는 변함없이 흥분 상태다 . 다소 경계를 히면서 이야기에 가담하지만 , 오사무의 말솜씨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가 잇따라 꺼내 보이는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는 속도감이 있고 , 독과 유머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고 , 파워가 있고 ,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났다 .
( 본문 39 쪽 )
밤중에 요시쿠니가 문득 잠에서 깼을 때 , 방안은 컴컴했다 . 그 컴컴한 방 안에서 그녀는 야경이 비치는 유리창을 향한 채 소파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 그때 그녀에게 감돌던 압도적인 고독은 요시쿠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본문 123 쪽 )
늘 농담을 즐겨하고 , 뻔뻔하고 ,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였던 만큼 , 그 상궤를 벗어난 노여움에 모두들 당혹해하고 있었다 .
처음 보는 간지의 노여움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
" ...... 아버지도 어머니도 늘 그러잖아 ."
간지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낮은 목소리였다 .
" 나한테는 나 자신의 인생이 있다고 . 부모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이 있다고 . 사회인이고 , 남자고 , 여자고 , 누군가의 친구고 , 아들이고 , 딸이고 , 또 뭐였지 ? 생각이 안 나네 . 부모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 늘 그러잖아 . 그걸 알아달라고 , 존중해달라고 그러잖아 . 안 그래 ? "
조금 전의 고함소리보다 오히려 그 낮은 목소리가 더 무서웠다 .
( 본문157 , 158 쪽 )
불공평하다 . 간지가 화내는 건 그 점인 것이다 . 그들은 일견 어른의 논리로 간지를 대등하게 대하는 척하면서 , 실은 부모의 논리를 간지의 목에 들이대고 그에게 자식으로서의 논리로 어른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 간지는 처음부터 심한 열세에 놓여 있다 . 그는 그 점을 화내는 것이다 .
( 본문 160 쪽 )
한편 오사무는 이 동아리 저 동아리 고개를 들이밀고 있지만 , 실은 아무 동아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 어깨가 구부정하고 깡말라서 체력이 없을 것 같지만 반사 신경이 워낙 뛰어나서 곧잘 공을 받아친다 . 간지가 재미로 일부러 오른쪽 왼쪽으오 공을 보내면 , 죽는 소리를 하며서도 공을 받아쳐내는 모습이 보고 있으면 우습다 . 꼭 희극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다 . 폼이고 뭐고 없는 엉터리 자세로 공을 받는데 ,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일부러 그런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 정말로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면 , 오사무는 무시무시한 운동 신경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다 .
(본문 172 , 173 쪽 )
" 난 간지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대로 해낼 수 있는 게 엄청 부럽더라 . 난 스트레스에 약하거든 . 늘 간지는 좋겠다고 생각했어 . "
" 그러니까 난 튀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니까 . 테니스냐 육상이냐의 차이야 . 나라면 절대로 너처럼 육상을 선택하지는 않을거다 . 육상은 기록에 대한 절대평가 아니냐 . 그렇게 혼자 묵묵히 자기 자신하고 대결하는 것 같은 스포츠는 도무지 못 배겨낼걸 . 난 그런 거 못해 . 하지만 넌 할 수 있지 . 그냥 그 차이야 . 어느 쪽이 낫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 난 반대편에 사람이 서 있어야 해 . 상대평가가 아니면 싫어 . 누구랑 마주보고 서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아니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어져서 엄청 불안해져 . "
" 테니스 선수 중에 누가 좋으냐 ? "
느닷없이 간지가 물었다 . 요시쿠니는 생각해본다 .
" 요즘은 남자 선수를 별로 주의 깊게 안 봐서 모르지만 , 여자라면 아마 그라프 ."
" 역시 ."
" 간지는 ?"
" 당연히 마르티나 힝기스지 . 힝기스는 눈앞에 있는 시합 상대하고 싸우지만 , 그라프는 자기 자신하고 싸우거든 . 그라프는 정신으로 싸우는 선수 아니냐 ? 어딘지 모르게 금욕적이고 말이지 . 시합 중에 공을 향해 ' 정신 똑바로 차려 . 슈테피 ' 하고 중얼거릴 것 같잖아 . 힝기스는 달라 .
' 이 여자는 늙었으니까 슬슬 다리 힘이 빠질 때가 됐어 . 약한 코스로 공을 쳐넣어서 실컷 뛰게 해줘야지 ' 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호시탐탐 노리는 느낌이거든 . 자기가 공을 못 받아내면 ' 에잇 , 분해라 , 너 어디 두고봐 ' 하고 시비를 걸고 . 나하고 네 차이가 그런 차이야 . 알겠냐 ? 난 대가 센 여자가 좋아 . 힝기스가 흥 하고 콧김을 내뿜는 얼굴은 진짜 끝내주지 ."
( 본문 176 , 177 쪽 )
그랬다 . 테니스부였다 . 여동생도 금세 영향을 받아 테니스를 시작했다 . 동생은 점점 강해졌다 . 승리의 즐거움을 알았을 것이다 . 그러나 나는 결국 완전히 빠질 수는 없었다 . 상대방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게 싫었다 . 이기느냐 , 지느냐 . 처음 보는 다른 학교 선수들의 굳은 얼굴 , 필사적인 얼굴 . 그런 얼굴을 보는 게 싫었다 . 자기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 누군가와 맞붙어 싸워 어느 한쪽이 패한다는 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았다 .
( 본문 181 쪽 )
" 이제 그만해 , 미쓰히로 ."
요시쿠니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제지했다 . 순식간에 미쓰히로의 노여움이 불꽃을 튀기며 타올랐다 .
" 들어 !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잖아 ? 너희는 늘 그래 .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이것저것 캐물으려고 들어 .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만두라고 하지 . 자기가 듣고 싶어해놓고 ,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해 . 그리고 다 듣고 나면 나를 더러운 물건 보듯이 하면서 피하기 시작해 . 듣고 싶었잖아 . 얼마든지 들려줄게 . 여자는 , 여자에게서는 가끔씩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 . 그 여자 냄새 , 썩은 냄새 . 늘 그 여자 발치에 엎드려서 그 여자의 그 투실투실한 주름투성이 허벅지를 핥아야 했던 것 , 아버지가 결혼 뒤에 그 여자를 안은 게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도 , 그 여자가 우리 어머니에 대해 어떤 몹쓸 욕을 했는지도 , 밤을 새워서라도 들려줄게 . 나는 필사적으로 공부했어 .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학교에 들어오고 싶었어 . 선생님이 문제없다고 해도 안심이 안 돼서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했어 . 합격했을 때는 정말 기뻤어 . 겨우 그 여자하고 떨어질 수 있다 . 그 집에서 나올 수 있다 .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 . 여기 왔을 때는 정말 천국 같더라 ."
미쓰히로의 말에 얼굴이 따끔따끔 아팠다 .
" 하지만 그 여자는 여기까지 찾아와 . 짙게 화장하고 , 자기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잘 알면서 교문에서 날 불러내 . 다들 잘 관찰하는 것 같으니까 , 저번에도 온 거 알겠지 ? 그 여자는 그런 때는 다정한 척하면서 생글생글 웃어 . 친한 척하면서 비위를 맞추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해 . 보고 싶었어 , 미쓰히로 . 손을 잡아주렴 . 미쓰히로 . 뒤에서 다들 훔쳐보는 앞에서 일부러 나한테 손을 잡게 해 . 그 여자가 교문 앞에 서 있는 걸 보면 난 폭발할 것 같아 . 쇠파이프 같은 걸 들고 그 여자를 막 두들겨패고 싶어져 . 그럼 얼마나 후련할까 .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나 요즘 불안하다 . 언젠가 내가 정말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 . 언젠가 자제하지 못하고 그 여자를 때려죽이지 않을까 싶어서 . "
미쓰히로의 눈에서 불현듯 어두운 빛이 사라졌다 .
그는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았다 . 피로와 허무가 얼굴에 들러붙어 있다 .
( 본문 205 ,206 , 207 쪽 )
그는 중거리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지만 , 언젠가는 풀 마라톤에 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이유는 아무에게도 설명한 적이 없지만 , 중거리의 풍경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
단거리 달리기의 풍경은 말하자면 저속 촬영이다 . 최대한으로 부풀어진 어마어마한 긴장감이 총성과 함께 파열된 순간부터 1 초 , 1 초가 영원처럼 잡아늘려진다 . 겨우 십수 초 안에 극채색 시간과 만화경 같은 풍경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 그 체험도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 극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풍경을 즐길 여유가 전혀 없다 .
한편 중거리는 경기로서는 재미있기는 해도 , 그냥 트랙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게 불만이었다 . 같은 풍경을 반복해서 돌다보면 , 트랙에 원심력이 생겨 세계가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
그는 평소에 혼자 묵묵히 달리면서 좌우를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느끼는 게 무엇보다도 좋았다 . 시야 한구석으로 얼핏 보이는 하늘에 뜬 구름 , 청량한 향기를 발하는 금목서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머리를 비우고 무방비 상태로 달리는 자기 안에 새겨지는 시간 . 그 순간을 느끼는 게 좋았다 . 그렇게 매일 달리다보면 , 풍경이 흘러가는 템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달리고 있는 시간이야말로 자기 시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
( 본문 213 쪽 )
미쓰히로에게
나머지 일은 모두 시마다 씨에게 맡겼어 .
너에게 한 일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
이 쓰레기 같은 여자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렴 .
그 남자의 심약함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렴 .
( 본문 263 , 264 쪽 )
" 늘 그래 . 어른들은 다들 그래 . 전부 끝난 다음에 , 내가 모르는 곳에서 자기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나서 용서해달라고 그래 .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 이해해달라고 그래 . 늘 사라져버리고 나서 날 괴롭혀 . 몇 년씩이나 나 몰래 쌓아놨다가 나중에 가서 한꺼번에 터뜨려 . 내가 얼마나 상처를 입는지 ,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도 모르고 .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줘 .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려고 그래도 , 늘 그때는 이미 아무도 없어 . 다들 자기 생각밖에 안 해 . 아무도 내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하면서 나더러 자기를 이해해달라고 그래 ."
( 본문 266 쪽 )
" 내가 미쓰히로 같은 처지였다면 미쓰히로처럼 그렇게 제대로 된 인간이 되었을 것 같지 않다 . 분명히 비뚤어질 힘조차 없었을걸 . 완전히 인격이 너덜너덜해져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유령처럼 무기력하고 찰나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 ."
( 본문 270 쪽 )
" 미쓰히로 앞에선 이런 말 입이 찢어져도 못하지만 , 아니 , 애초에 이런 말을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 다들 미쓰히로한테는 성실했던 것 같아 . "
요시쿠니는 귀를 의심했다 .
" 성실 ? 그건 좀 아니지 않냐 ? 어디가 성실했다는 거냐 ? 그렇게 지독한 짓을 해놓고 ."
" 응 . 하지만 아까 변호사도 미쓰히로를 정면에서 대등하게 대했잖아 ? 진지하게 , 정직하게 이야기했잖아 ? 그건 역시 미쓰히로라서 그런 거야 . 그 녀석이 확실하고 똑똑한 녀석인 걸 아니까 . 그야 하나같이 구역질 날 만큼 지독한 놈들이긴 해 . 하지만 다들 미쓰히로를 대할 때는 그냥 남자고 , 여자야 . 기만이 없어 . 자살한 아버지도 , 죽은 여자도 , 다들 미쓰히로한테 어리광 부리는 거야 . 다들 미쓰히로는 강하고 마음씨도 착하니까 받아줄 거라고 믿고 어리광을 부리는 거야 . 우리도 그렇잖아 ."
" 그러게 . 다들 미쓰히로라면 어떻게 해주겠지 , 하고 생각하지 . 하지만 그건 너무 힘들지 않냐 . 엄청 손해 보는 역할이야 ."
( 본문 271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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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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