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toto
- 작성일
- 2023.11.26
잉글랜드 부인
- 글쓴이
- 스테이시 홀스 저
그늘
누군가가 당신을 은밀하게 옭아 매고 있다면, <잉글랜드 부인>
1904년 런던에서 래들렛 부부의 외동딸을 돌보는 유모로 일하고 있는 루비 메이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게 된다. 건축가로 일하는 고용주가 미국 시카고로 전근을 하게 되면서 같이 가자고 요청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메이에게는 자신이 지키고 돌봐야할 몸이 불편한 여동생 엘시가 있었기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을 유모로 만들어준 놀랜드 유모 학교로 돌아온 메이는 교장 선생님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부탁한다. 그렇게 요크셔에 살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유모로 취직을 하게 된 메이는 익숙했던 런던을 떠나 기차에 오른다. 어둠이 깔린 기차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고용주 찰스 잉글랜드를 만나게 되고 대저택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잉글랜드 부부의 네 자녀들인 데카, 사울, 밀리, 찰리의 유모로 지내게 된다.
유모라는 직업은 말 그대로 집안의 영유아들을 돌보는 직업으로 아주 오래 전 왕족이나 귀족 집안에서 흔히 존재했다. 이 소설의 초반부에서도 언급되지만 유모라는 존재는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유모라는 직업을 주인공 메이는 좋아했고 지금까지 충실히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이 저택의 안주인 잉글랜드 부인은 이전 직장의 래들렛 부인과 너무나도 달랐기에 메이는 당황한다. 사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아이들에 대한 질문이나 요청을 그녀로부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인상부터 적극적이고 친절했던 잉글랜드와 다르게 그의 부인의 행동은 그림자처럼 수동적이고 어딘가 부자연스러워보였다.
2019년에 데뷔한 영국 작가 스테이시 홀스의 세 번째 작품인 이 <잉글랜드 부인>은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 이면에 자리한 어둠을 서서히 발견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뒷 표지에서부터 큰 글자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설정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헐리우드 고전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된 용어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심리적으로 고통을 주는 언행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서, 신체적 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했던 정신적 폭력이 수면 위에 오르면서 곳곳에서 이 용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한 저택에 살고 있는 평범한 부부의 관계 속에서 가스라이팅이 어떤 작용을 하는 가를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잘 풀어나갔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스라이팅의 과정에서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파격적인 행동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런 극적인 전개 대신에 외부인인 유모 메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부의 관계 뒤에 숨겨진 어둠이 서서히 드러나는 느린 전개 방식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방식이 현실 속 가스라이팅 과정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발생하는 가스라이팅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한 번 쯤 멈추어 서서 익숙했던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의심하며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출판사 측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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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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