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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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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글쓴이
켄 리우 저
황금가지
평균
별점9.2 (61)
사율


인간성에 대한 믿음.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믿음. (뒤에 남은 사람들) 
  
 
[싱귤래리티 3부작]
자유와 모험을 원했던 리즈는 십대 시절 도전적으로 떠났던 배낭 여행에서 강간을 당한 후 육체의 한계를 느낀다. 이후 알고리즘 프로그램 개발회사에 취업한 그녀는 육체를 넘어선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고자 하고, 뇌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데이터화해 정신으로써 영생을 얻고자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육체를 스스로 소멸시킨다. 리즈의 언니 에이미는 육체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영생에 회의적이다. 그녀는 홍옥의 신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죽은 후 누군가로부터 추모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선택 할 것이다. 
 
 
'싱귤래리티'가 도래한 후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택했다. 불치병에 걸린 돈 많은 노인들로부터 시작한 인간 정신 데이터화. 파괴적인 스캔 과정을 거친 두뇌가 피투성이 곤죽이 된 채로 생명을 잃지만 정신은 영원하다.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인가? 인간인가? '나'는 시물레이션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 이미 정신을 데이타화 한 누나는 자신과 가족을 회유하지만, 아내와 딸 루시는 자기의 신념을 잘 따라주었다. 루시의 졸업식. 잭과 댄스 파트너가 된 루시는 다녀오겠다는 인사 대신 작별의 뉘앙스가 담긴 인사를 건네고, '나'가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스스로 한 선택이라고,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는 루시. 세상에 남은 시간은 이제 모두 부부의 것이다. 
 
207.
현실 세계를 포기하고 시뮬레이션이 되기를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죽어. 죄악이 존재하는 한 죽음도 존재해야 해. 삶이 의미를 얻는 수단이 바로 죽음이니까. (뒤에 남은 사람들)  
 
220.
저마다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이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우리는 죽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우리 아이들을 통해 우리 안의 일부가 계속 살아간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형태의 진정한 불멸이라고. (뒤에 남은 사람들)

 
 
어린 의식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은 알고리즘들이 여러 루틴을 재결합하고 재배치한 결과다. 부모는 열 명일 수도, 더 이상일 수도 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나 생명 탄생의 경이는 없다. 르네의 엄마는 싱귤래리티 이전의 사람, 고대인으로 업로드를 하기 전에 육체를 지닌 채 26년을 살았다. 엄마는 영원히 우주로 떠나기 전 르네에게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하고 르네는 이를 받아들여 45년간 여행을 한다. 그녀가 엄마와 함께 본 세상, 엄마가 26년간 고대인으로 살았던 그 세상. 르네는 엄마와 함께 본 그 세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258.
순록 떼, 금빛 들판, 텅 비어가는 도시들, 비,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비, 버려진 세상의 껍데기를 어루만지는 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호弧]
열여섯 살에 임신을 했고 자신의 삶을 바꿔줄 줄 알았던 남자친구는 유학을 떠났다. 생후 1년도 안된 아이를 부모님 집 앞에 버리고 도망친 레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먹고 살 길을 찾아 인간박제를 만드는 보디워크스에 취직한다. 솜씨가 좋아 승승장구 하던 레나는 사주의 아들 존 월러를 만나고 그로부터 불노장생의 신약 개발에 대해 듣는다. 존의 권유로 그녀는 영원히 삼십 대의 젊음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음과 동시에 존과 결혼한다. 그러나 존의 유전적 결손으로 인해 재생 시술은 오히려 그의 노화를 촉진하고 암을 유발시켰다. 남편은 죽고 그가 생전에 냉동 보존했던 정자를 이용해 레나는 딸을 낳는다. 임신한 상태에서 그녀가 수십 년 전에 낳은 아들, 이미 육십이 넘어 외모상으로는 레나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늙어가는 아들을 만났다. 그녀는 인생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 
 
43.
죽음은 평등의 수호자로 위세가 대단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부자들은 피해 가는 모앙이었다. 세상에 분노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당연했다. (호弧) 
 
52.
혹시 지금 내 아들이 자식을 버린 여자를 똑같은 짓을 한 남자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이제 그 질문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깨달았다. (호弧) 
 
59.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호弧)  
 
62.
나의 기록은 죽음을 향한 인체의 여정을 유례없이 철저하게 담은 기록물이 될 것이다. 실존의 적나라한 진실에 덧씌워진 환상을 오랫동안 천천히 벗겨 가는 과정을. 그것은 낭만적이지 않다. 보기에 흐뭇하지도 않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자주 지루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이고, 그것이 진실이다. (호弧)   

 
 
 
[매듭 묶기]
어느날 난족 마을에 찾아온 미국인 이방인. 그는 난족의 매듭 문자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가 일을 도와준다면 신품종 벼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에 응한 촌장 소보에. 이방인 토무는 단백질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주업무로 하는 연구자로서 난족의 매듭 문자에서 아미노산 사슬의 영감을 얻어 소보에를 미국 연구소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품종 저작권과 특허 사용료, 그리고 비싼 비용에 대해서 아는 바 없었던 토무는 소보에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는 이와 같은 상황을 소보에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고, 싹이 나지 않는 볍씨를 주어서 돌려보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소보에, 그러나 무언가를 조치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반면 소보에의 기술을 토대로 알고리즘을 완성한 토무. 그는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부탄이 어떨까? 
 
133.
나는 토무와 나눈 대화를 매듭 책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그 책이 나중을 위한 경고가 될지도 모른다. 후손들은 나처럼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골드러시가 한창인 서부 개척 시대. 가게를 운영하는 릴리의 옆집에 세를 얻어 살고 있는 중국인 남자들은 강에서 금을 채취한다. 그들의 언어는 거칠고 시끄러우며 무엇보다 작은 셋집에서 스물일곱 명이 잠을 잔다. 또한 남자들끼리 해먹는 음식에서는 알 수 없는 기름지고 진한 냄새가 난다. 이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릴리. 그들의 감칠맛 나는 음식, 식물을 이용한 약재, 그리고 무엇보다 로건이 해주는 중국의 관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백인 강도들과의 다툼으로 법정에 서게 된 로건으로부터 그가 미국으로 이민오게 된 사연을 들은 릴리와 마을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받아들이지만, 1882년 중국인 배제법으로 당시 미국에 머물렀던 중국인들은 배제법 폐지를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289.
'인종과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이 사유인 건 아니지요.' (...) 세상은 참혹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법은 그중 일부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모든 맛을 한그릇에)




■  ■  ■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인간적'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젊음과 영생 그리고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 자연에 순응하며 지구에 속한 한 존재로써 살아가는 소수민족을 경제 순환 논리에 끌어들여 착취하는 문명인.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유일한 특성인 '사고'능력까지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오히려 사고의 단순화로 인해 퇴화하는 인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전을 외치며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며 얼마든지 제어가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개발자들.   
 
160.
우리가 단지 하루하루 어떤 알고리즘을 따르는 것뿐이라면? 우리 뇌세포가 단지 어떤 신호를 받아서 다른 신호를 찾을 뿐이라면? 우리가 생각이란 것 자체를 안 한다면? 내가 지금 당신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만약 단지 미리 정해진 반응일 뿐이라면,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물리 법칙의 결과라면? (사랑의 알고리즘)  

 
 

육체의 감각을 포기한 정신, 영혼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일까?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때로는 고통일지라도 그 감각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의 희열. 그것을 놓친다면 삶에서 어떤 맛을 즐길 수 있을까? 그것 뿐이랴.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주고 받는 마음까지 시물레이션을 통해 이룬다. 그것으로 최소한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상쇄하면서.  
 
238.
그러나 로봇은 이 일을 하도록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당신은 그냥 조종 스틱을 엄지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스크린에 지시가 뜰 때 핸들을 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원격 조종 장치들이 다 알아서 하니까. 당신이 어머니께 효도를 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동안 안전장치 루틴은 당신이 어머니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보장한다. 원격 조종 머니플레이터가 어머니의 손 한쪽을 들어 올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당신은 상상한다. 어머니의 살갗이 얼마나 서늘할지, 류머티즘에 걸린 관절을 둘러싼 바짝 마른 근육과 살갗이 얼마나 가벼울지를. (...) 이 로봇은 죄책감을 덜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멀리 살고 핑계거리도 너무 많은 이들을 위하여. 어머니 곁의 당신이 본질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곁) 

 
  
 
인간의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피부 색깔, 문화, 관습, 그리고 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낯설고, 돈이 없다는 이유를 앞세워 그들의 가치를 재단하며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 
 
진정한 동화는 상대의 것을 무시하고 우리의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문화, 가치를 수용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인류가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생태계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타인.타민족과 진정한 동화를 이루는 것이다. 
 
작가는 가족과 인류애, 개인의 삶을 바탕으로  SF요소를 빌어와 도래할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이 출간될 때 마다 찾아 읽는 이유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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