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사율
- 작성일
- 2022.3.2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글쓴이
- 오스카 와일드 저
열린책들
모든 예술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역설함으로써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예술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따지는 세태에 일갈했던 오스카 와일드. 탐미적 예술을 지향하는 세 등장인물에게서 오스카 와일드의 모습들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꽤 오래 전에 읽었을 당시에 헨리는 그야말로 악마같은 인물로 보여졌다.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며 순진한 도리언을 꿰어내 자기의 실험 관찰 대상으로 악용한다. 도의적 양심은 저 어딘가에 묻어두고, 몸이 원하는 쾌락과 욕망의 끝으로 도리언을 부추기며 타락의 끝으로 몰아가는 헨리. 소설 속 헨리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쳐 주변에 빈축을 샀다는 오스카 와일드는 헨리와 바질을 양 축으로 놓아 자신이 가졌던 갈등의 대변인으로 삼아 죄책감과 이기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스스로를 도리언에 투영한 것일까? 얼핏 읽으면 이 작가가 <행복한 왕자> <거인의 정원> 을 쓴 사람이 맞을까싶지만, 3인칭 서술자의 입장에서 쓴 내용과 소설의 결론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했던 바가 무엇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세상사에 있어 백치같았던 도리언이 변화하는 직접적인 계기는 시빌 베인과의 사랑이다. 아름다운 시빌의 매혹적인 연기에 도취되어 한눈에 사랑에 빠진 도리언 대상은 시빌이 아닌 그녀가 연기한 연극 속 인물들이었다. 시빌 역시 도리언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접하고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사랑의 존재를 깨닫자 더 이상 연극 속의 사랑에 도취하지 못하면서 그녀의 연기력은 곤두박질친다. 도리언이 시빌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녀가 재능과 지성을 지닌 뛰어난 연기자로서 예술이라는 무형의 환영에 실체를 부여한, 말 그대로 실재하는 영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사라진 시빌은 더 이상 도리언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도리언이 사랑했던 건 '시빌 베인'이 아닌 무대 위 시빌 베인이었던만큼 도리언은 절망한다.
그런데 이 순간, 도리언은 갈등한다. 진정한 사랑, 인간이 갖춰야할 소양과 도덕성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 답을 얻어 시빌과 화해를 하고자 하는 그의 옆에 악마의 속삭임 들린다. 바로 헨리다. 그는 인생의 목적은 오직 자기 발전(이라고 쓰고 욕망이라고 읽어야 하는)에 있고,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며 유혹에 저항하면 병들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름다움 때문이고, 지금의 아름다운 얼굴은 젊을 때 뿐이며 나이가 들고 늙게 되면 더 이상 현재의 권리와 영광을 누릴 수 없을 것이고, 과거에 아름다웠기에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더 쓰라린 고통이 남을 거라고, 그러니 황금같은 지금 이 시기를 낭비하지 말고 그 자신의 삶을 살라는 조언같지 않은 조언을 한다. 젊음이 지속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음을 덧붙이면서. 도리언은 갈등과 위기의 순간마다 헨리의 미혹된 말들을 수용하고, 이후 점점 더 폭력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헨리와 같은, 우리를 지배하고자 하는 유혹을 던지는 존재가 무수히 많다. 도리언이 본인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헨리에게 좌지우지 되었듯 다수 사람들도 스스로의 결정이라고 믿는 것들에서 어떤 존재의 힘이 작용되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우리는 가스라이팅의 폐해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때로는 집단적 가스라이팅이 우려되는 사례도 상당히 많다. 도리언이 자살이라고 추정되는 시빌의 죽음이 '끔찍하지만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은 섬뜩한 동시에 한편으로 갈수록 황폐해져가는 우리들의 자화상같아 씁쓸하다.
이 소설에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예술'이다. 한 여인의 죽음을 두고 낭만이라고 말하는 도리언.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지칭하는 '예술'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질은 예술은 추상적인 것으로서 실재하기에 어렵고, 예술가의 영감이 오롯이 작품에 투영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질의 말을 통해 도리언이 바질에게 있어서서 영감의 대상이었다면 도리언에게 있어서 실비가 그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직접적인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예술이 갖는 의미와 예술이 누려야 하는 자유의 한계, 그리고 영감을 얻어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희생은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 오스카 와일드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숙제를 이 작품을 통해 숙고한 것이 아닐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추하게 변하는 초상화는 결국 도리언의 내면이다. 그의 타락을 증명하는 유일한 존재인 초상화. 도리언은 그 초상화를 향해 칼을 꽂지만 결국 칼날은 자신을 향했다. 바질이 처음 초상화를 완성했을 당시 그림 속 도리언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도리언을 통해 나약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질을 본다. 오스카 와일드는 끊임없이 악으로부터 유혹 당하고 무릎끓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아를 찾고자 노력하면서 갈등하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변적인 존재가 인간이며 그럼에도 악의가 비난받는 것은 세상에 여전히 선의가 있음을, 그 선의가 동반된 아름다움이야말로 추구해야할 탐미적 가치, 즉 예술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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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