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생각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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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8.11.21
즐거운 학교에서 펴낸 <현대소설 너를 읽어주마 3권>을 298~349쪽까지 읽으면서,
이 책의 여덟 번째 단편인 이범선의 <오발탄>을 완독했다.
작가인 이범선에 대하여 내게 떠오르는 기억은 다음 세 가지이다.
1) 중학교 교과서에 오랜 동안 실렸던 <학마을 사람들>의 작가
2) 대학 때 보았던 한국작가앨범이란 사진첩에 실렸던
검은 두루마기 한복 차림의 단아한 사진과
펜글씨 교본을 보는 듯한 원고지의 반듯한 필체
3) 소설과 영화로 보았던 <오발탄>의 작가
20여년 동안 교과서를 통해 <학마을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린 수십 편의 문학 작품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의 사진이나 필체에서 느낀 단정한 느낌 역시
그런 정도의 사소한 감정이었을 뿐
그리 강하게 뇌리에 남았던 것은 아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은 준 것은 <오발탄>이다.
이 작품을 애초부터 흥미 있게 읽은 것은 아니다.
내용이 무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서정이 담겨 있는
<학마을 사람들>에 비하여 <오발탄>은 그저 암울하기만 했다.
유현묵 감독의 흑백 영화 <오발탄> 역시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열 번 가까이 읽었다.
그 이유는 소설과 영화 모두 문제작으로 꼽히고 있으니
국어교사로서의 의무감을 갖고 책을 펼친 것이다.
그렇게 읽은 사이에 어떤 매력이 느껴졌다.
<오발탄>은 내게 있어서
마릴린 먼로와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단 한 편을 보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에 본 <돌아오지 않는강>이 그것이다.
그 때는 흥미있게 보면서 어느 정도 몰입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느낀 것은 아니며,
그녀의 매력도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그 영화는 서부 영화 스타일인데,
나는 그보다 재미있는 서부 영화를 많이 보았었고,
그녀가 아름다운 금발과 독특한 성적 매력으로
세계적인 섹시 심벌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면에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학창 시절에 본 영화 중에
내 가슴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그 노래를 부를 때 먼로의 표정,
그 노랫 소리까지 느끼고 있다.
<오발탄>은 다른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 강>에 버금가는 인상을
내게 심어준 것이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양공주가 된 주인공의 여동생 명숙,
대학시절 성악을 전공했지만
전후의 가난 속에서 미인이었던 자신의 추억마저 잊고
끝내는 난산 끝에 죽어가는 주인공의 아내,
피난길에서 남편을 잃은 충격과
부유했던 고향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신 이상이 되고
습관적으로 "가자!"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어머니….
그녀들은 황홀할 만큼 관능적인 마릴린 먼로 못지 않게
세월이 흐를수록 강한 잔영으로 내게 다가웠던 것이다.
그런 가난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살려고 버둥거리는 주인공 철호와
타락한 현실에서는 양심이나 윤리나 법률 따위에서는 벗어나서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는 남동생 영호의 갈등이 있었다.
끝내는 은행강도에 실패하여 경찰에 수감된 영호나
기약없이 허공으로 날다가 사라질 운명의 오발탄처럼
현실에서 좌절을 겪은 뒤 정처없는 택시에 실려가며
눈을 감게 될 철호의 모습은 책장을 펼칠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며 답답하게 했다.
요즘 세상에서 "점심을 못 먹은 배는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금지옥엽으로 자란 명숙이
미군에게 몸을 팔고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돌아온 후
"가자!"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흐느끼는 마음을
헤아려 볼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마릴린 먼로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리움의 손을 내밀듯이
불현듯 명숙 모녀에게 그런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을 느껴 보았다.
아, 그런데 <현대소설 너를 읽어주마>에 실린 단편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 것만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지금 서 있는 곳이 무너지는 교단의 현장이니
동병상련의 공감만 깊어진다.
오발탄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시간적-한국전쟁 직후, 공간적-서울
주제 : 전쟁 직후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상
특징
-분단으로 생활기반을 잃은 월남 가족의 삶을 통해
당대 사회의 암담한 삶을 그림
-정직하고 성실한 가장이 겪는 내면의 고뇌를 통해
윤리적 허무주의를 나타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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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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