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사랑 만화

목연공식계정
- 작성일
- 2020.11.30
만화 토지 보급판 세트
- 글쓴이
- 오세영,박명운 글,그림/박경리 원저
마로니에북스

안흥도서관의 토지 전질 17권
오세영 화백이 그린 만화 『토지』를 읽은 것이 2007년이다. 그 무렵에 작가인 박경리 선생이 원주에 거주하고 계셨고, 직접 뵌 인연도 있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애착을 느꼈지만, 나는 토지 원본을 읽지 못했다. 5부 20권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만화로 나왔다는 말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나로서는 상당한 지출이었다. 전질 7권, 권당 1만 원이니 모두 7만 원인데,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액이었지만, 과감하게 구입을 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완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완간된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1부 5권만 만화로 구성한 것이었다. 하기는 나의 잘못이 컸다. 아무리 뛰어난 만화가라고 하더라도 20권의 대작을 7권으로 꾸밀 수 있겠는가.
1부는 1897년 한가위에서부터 1908년 5월까지가 담겨 있는데, 평사리의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의 살해사건 등)과 조준구의 계략, 이용·귀녀·김평산 등의 애욕관계 등이 얽혀 있었다. 조준구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긴 서희가 간도로 이주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리는데……. 완간인 줄 알고 구입했던 나로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또한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등장인물만 해도 수백 명인데, 만화로 구성하다 보니 사건의 압축이나 생략이 많았다. 인물을 봐도 그가 누구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았고, 여러 사건이 얽혀 있다 보니 윤곽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2~5부가 완간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구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쉽게 읽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안흥도서관에 전질(17권)이 들어왔기에 읽게 되었다. 10여 년이 흐르다 보니 앞의 내용을 상당수 잊기는 했지만, 예전에 구입한 책의 뒤인 8권부터 읽은 것이다. 나로서는 드물게 10여 년에 걸쳐서 읽게 된 이 작품에서 느낀 생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역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소설이라면 만화로 구성할 때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1897년부터 1945년까지 반세기에 걸쳐서 평사리와 만주와 서울과 일본 등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동학혁명, 한일합방, 삼일운동, 독립운동 등에 얽힌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전체적인 주인공은 서희와 길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초기의 중심인물이었던 이용과 월선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자녀나 손자들이 성장해서 나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것을 17권의 만화에 어찌 담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니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둘째, 작가가 바뀌었으나 그것은 큰 변수는 아니었다. 원작 작가는 박경리 선생이지만, 1부(7권)는 오세영 화백이 그렸고, 2~5부(10권)는 박명운 화백이 그렸다. 그림 작가가 바뀐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로 인한 혼란은 없었다. 다만 왜 바뀌었는지는 궁금했다. 오세영 화백이 2016년에 타계했는데……, 건강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셋째, 원작을 먼저 읽고 만화를 읽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만화는 명작에 어울리게 만든 작품으로 정성과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컷도 허술하게 그리지 않은 듯하며, 등장인물의 복장이나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것이 느껴졌다. 다만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만화에서 압축된 부분도 쉽게 이해를 하면서 더 깊고 넓게 감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이 작품에서 최고의 악녀를 꼽는다면 임이네가 될 텐데……, 그녀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남편인 이용과 아들인 이홍을 괴롭히면서 짐이 되었다. 나름 비중이 큰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생략이 되었다. 등장인물의 소개에서는 임이네가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고 언급하고, 아들인 이홍이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생략된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마지막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넷째, 등장인물 소개가 좋았다. 각 권마다 5쪽 정도에 걸쳐서 40명 가까운 인물을 소개하는데, 그때마다 등장인물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의 서희의 경우 1권에서는 10세 안팎이었지만, 17권에서는 50대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변화된 얼굴로 소개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려면 등장인물 소개를 최소한 세 번 이상 숙지를 하고, 책장을 넘기면서도 등장인물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다섯째, 권말부록이 좋았다. 각 권마다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안내하고 있고, 관련된 사건들도 백과사전 형식으로 압축해 놓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책의 서두에 있는 등장인물과 권말에 있는 줄거리 요약과 안내 부분을 먼저 읽고 책을 읽으면 이해가 쉬우리라고 본다.
여섯째, 개인적으로 인생을 잘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수백 명의 등장인물이 반세기에 걸쳐서 활동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적인 선인도 없고, 초인도 없다. 누구나 이런저런 약점과 갈등을 겪으면서 때로는 좌절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인 서희나 길상이마저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는 않았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나 내로남불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이 사람만은 언제라도 믿을 수 있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이미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한국인의 작품으로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작품성으로는 박경리 선생이 가장 근접한 분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세영, 박명운 두 화백은 명작에 어울리는 훌륭한 작품을 합작했다.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전질을 모두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토지』원작을 읽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원작의 내용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읽기가 힘겨울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독서는 가능할 것이다.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 권말의 작품 요약과 시대 배경 안내 등을 읽는다면 작품은 물론 역사와 인생을 이해하면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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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