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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 작성일
- 2023.2.17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글쓴이
- 김성경 저
창비
전쟁에 참여한 북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적은 책인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를 읽었다.
처음 책 소개를 봤을 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생각이 났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전까지 내가 배웠던 전쟁 중 여성들의 역할은 생필품 보급, 자금 조달, 내조 등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역할들도 정말 중요하고 존경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직접 싸우는 군인의 모습에 여성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군인이라는 직업에는 여성을 지워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직접 전선에서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이야기의 참혹함이 끔찍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감동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 여성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는데 분단됐을지언정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런 책들을 발견하면 꼭 읽어보는 편인데 감사하게도 세계 최고의 출판사,,?? 창비에서 책을 보내주셔서 먼저 읽어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
"도대체 왜 한반도의 여성들은 국가를 위해서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유로 그토록 고된 삶을 감내해야만 했던 것일까."
작가님의 서문에 나오는 저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책 속의 여성들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저렇게 주어진 역할에 저항한다. 여성은 직접 싸울 수 없으니 좋은 아내 혹은 어머니가 되어서 싸우는 남성들을 지원해야 한다. 예전부터 내려온 저 유구한 논리로 전시 중이니, 후에는 분단되어 나라가 흉흉한 상황이니 도움이 되라고 한다. 사실 저 역할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경우의 부부들이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거의 100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여성들의 고된 삶은 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서문에 지금보다 더 열악한 시대에서도 강요된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었다는 말이 적혀있다. 그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이미 이 책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 살아왔던 여성들이 역설적으로 전쟁 속에서 설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제한적으로 허용된 그 자리에서 여성들 스스로도 버거워했다고 한다. 책 1장에 북한에서 전쟁을 겪고 한 공장의 작업 반장이 된 길건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이나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적인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나는 북한의 여성 인권은 우리보다 훨씬 열악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속의 여성들은 내가 존경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번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내가 가진 편견을 깨달을 때마다 내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ㅠ
폐쇄적인 고향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 한 여성의 이야기도 나온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직도 한없이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편견 덩어리 그자체..ㅎㅎㅠ 근데 내가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북한에서 그것도 몇십 년도 더 전에 저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대단하다. 딸은 엄마의 인생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정말 싫어하는 말이지만 주변을 보면 엄마를 포기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삶을 반복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무기력한 삶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결국 더 넓은 다른 곳으로 떠나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한 건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의 삶도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여성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지가 허용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또 신기했던 건 저 시절의 노동자들은 우리 나라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국가의 개입이 크긴하지만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의 삶은 생각보다 우리와 비슷해서 신기했다. 나는 어릴 때 봤던 자극적인 예능프로를 빼면 북한의 시민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전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특히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국가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지만 '공산주의, 국가, 수령' 등의 개념은 자유분방한 여성들에게 그다지 와닿지 못했다는 말이 책에 나온다. 결국은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의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다. 철옹성 같은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그 삶을 살아내는 여성들의 해방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미래가 생겨난다. 밝은밤을 읽다가 여류작가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소수의 여류작가들이 모여서 작가라는 한 단어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지금은 여성 작가도 그냥 작가라고 부른다. 아직도 많은 관습과 차별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가끔 그 사실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도 결국엔 나다. 그렇다면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대로 두기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또 미래의 우리들이 살아갈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인 것 같다. 허구와 실존 인물이 뒤섞인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오는 모든 인물에게 존경을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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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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