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 소설

zangah
- 작성일
- 2020.5.14
[eBook] [5천원 페이백][대여] 이덕일의 한국통사
- 글쓴이
- 이덕일 저
다산초당
전형적인 국뽕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대사에서는 드넓은 만주벌판 일대가 모두 고조선과 고구려,발해의 영토였었고
여진, 거란, 선비족들도 모두 한민족이었다는 식의 사관은 꽤 재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는 고대사서가 남아있지 않죠. 무슨 이유에서건 슬픈일입니다. 그래서 고대사를
중국사서와 일본 사기등의 외국 사서와 유적등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가장 오래된 사서가 제작된지 천년도 되지 않은 삼국사기라는 것은 2천, 3천년전의 역사를
추측하는 것이 소설 작문 이상이 것이 되기 힘든 것이 현실일 겁니다.
하지만 고대사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서가 남아있는 시대에서도 구지 그렇게까지
소설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한민족이 만주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흔히 만주벌판이라고 표현합니다. 드넒은 평야지대지만 긴 겨울과 척박한 대지여서
유목민들이나 살 수 있는 공간이란 뜻입니다. 정주 농경민족이 살기에 부적합하다는
말이죠. 당연히 제대로된 축성을 하고 마을을 형성하기 힘들다는 것일 겁니다.
백두산 정계비라던가 중국과의 영토 확정에서도 혼선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곳에
사람이 정주하고 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빈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지금 당장은 정해놔봤자
백년만 지나도 그런일이 있었는지 헛갈리는게 당연한 인간사 아니었을까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도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더군요.
하지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던 요동정벌이 2차 요동정벌이었다는 것은
구지 설명하지 않았더군요. 제1차 요동정벌 때, 1370년 요동성까지 점령했지만 군량이
떨어져 성을 비우고 퇴각해야 했습니다. 이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원정 실패의 원인을
성을 점령할 때, 아군이 적의 창고에 불을 놓아 거의 다 태워버렸기 때문에 군영 내에
식량이 모자랐다는게 실패의 변명입니다.
적의 군량을 빼앗아 아군의 군량으로 삼는다는 명언을 남긴 2차세계대전 당시
임팔작전을 수행한 일본의 명장 무타구치 렌야를 떠올리게 만드네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고려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을지 모르겠지만
굶으면서 성을 빼았는다 치더라도 지킬 수도 없는 성을 왜 점령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까 궁금할 뿐입니다.
만주에서 가장 따뜻한 다롄(1월 평균 기온 -3.6℃)조차 냉대기후를 띠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화재배에 성공해 부유층이나마 솜옷을 입을 수 있었던 시기가
140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만주는 농경 한민족들에게는 죽음의 땅일 뿐입니다.
설령 중국이 마음을 바꾸어 만주일대의 땅을 한국에 양도 한다고 해도 만주에 거주하고있는
현재 그곳에 거주하고있는 4400만 중국인들을 계산에 넣는다면 한국이 더이상 한국이
되지 않는다는 간단한 계산이라도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땅만 빼았고 추방한다거나
학살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중국이 되거나 내전상태가 될 확률이 절반이상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2차세계 대전이후 강제로 병합된 몇몇 나라들의 내전을 보면 쉽게 추측 가능한 현상입니다.
역사인식을 바로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국뽕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정권처럼
극단적인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이란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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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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