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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 작성일
- 2016.5.31
세속 도시의 시인들
- 글쓴이
- 김도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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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여진 다양한 형식의 글들 가운데 내가 유독 평을 남기고 싶지 않은 장르가 바로 시다. 비평이란 게 의도치 않게 예리한 메스와 침탈적인 내시경을 들여다대는 작태를 연출하게 되는 만큼, 시라는 한 송이 꽃이 내 경솔한 비평에 꺽이거나 사그러들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 대신에 시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기 시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남의 시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물론 진짜 타고난 시인의 이야기라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보고 싶다. 내용과 소재가 어떠하든 말이다. 내가 유독 만나고픈 시인들은 우리 시단의 전설적인 분들이다. 모두 타임슬립을 해서라도 만나보고픈 분들인데, 김소월, 윤동주, 백석, 서정주 같은 시인들이다.
소설가 출신의 시인 김도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세속도시의 시인들』(위즈덤하우스, 2016)에서 살아 숨쉬는 시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육성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등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가 만나보고 싶었던 시인들은 몇가지 기준이 있었다. 먼저 개성적인 스타일이 농후한 시인이다. 다음은 자유와 용서의 테마에 충실한 시인들이다. 마지막으로, 텍스트의 바깥에서조차 문제적 삶을 살고 있는 시인들다.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열 다섯 명의 시인들이 등장하는데,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형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 등이다. 그리고 인터뷰 장소로 삼은 곳은 시인의 집, 연희문학촌 도서관, 도심 카페, 대학교 교정, 주점, 근무처 사무실, 강의실, 어항을 낀 바다 등 다양하다.
열다섯 명의 시인들은 시를 포함한 문학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이념성을 선보이고 무엇보다도 시의 다성적인 목소리가 가진 가치들에 방점을 찍는다. 예컨대 일번 타자로 등장하는 시인 김정환은 문학의 궁극적인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를 '공적인 죽음'의 의미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시인다운 시인의 정체성을 서정성이 아니라 정치성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보기에 80년대 등단한 문인들이 스스로를 규정지었던 그런 인문주의적 지식인의 초상이 바로 이런 파르티잔으로서의 글쟁이가 아닐까 싶다.
"시인 김정환은 공적인 죽음의 의미를 묻는 '인문주의적 파르티잔'이다. 인문과 예술과 문학의 모험을 감행하며 통합된 세계의 회복과 그 가능성을 인민에게 보급하는 유격대원이다. 인민은 파르티잔을 소비하지만, 이 파르티잔은 놀라운 회복 능력으로 언제나 인민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소속되어 있으며, 자신의 명령과 요구에만 복종한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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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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