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에 쓴 리뷰들

異之我...또 다른 나
- 작성일
- 2010.1.24
- 글쓴이
흔히 번역이란 한자말을 <옮김>이라고 쓰지만, <옮김>은 '이쪽의 것을 저쪽으로 옮긴다.'와 같이 '원래 있는 것을 <그대로> 장소만 바꾸는' 경우에 쓰인다. 그래서 난 <옮김>보단 <뒤침>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잠을 잘 때 편한 자세로 눕기 위해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처럼 외국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올 때는 우리식 표현에 맞게 <뒤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spy stories>라는 원제를 <베일에 가려진..>라고 덧붙여 제목을 뒤쳤다. 그냥 <스파이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이지만 그러면 신비하고 비밀스런 스파이라는 존재를 오롯이 보여줄 수 없기에 <베일에 가려졌다>고 덧붙였을 게다. 또 베일이란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거나 장식을 위해 쓰는 얇은 장식이다. 그래서 였을까? 스파이들 가운데 유독 여성 스파이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였다.
오랜 세월 남성들만이 뽐내며 장식한 <전쟁>이란 역사에 여성 스파이가 끼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피가 철철 넘치고 야만과 폭력으로 펄펄 끓는 싸움판에선 빈틈이 없을 것 같은 남성들을 함락시키기 위해선 보드랍고 혀끝에서 살살 녹을 것 같은 여성만이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것은 <스파이>라는 것을 참으로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얕보아서 생긴 오류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스파이>는 일반인과 다름없다. 허나 때론 아르센 뤼팡처럼 괴도가 되어야 할 때도 있고, 아이리스에서 TOP이 열연한 것처럼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킬러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여러 모습을 한 사람의 정신과 몸 안에 쑤셔 넣은 이들에게 <행복한 삶> 따위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성들에게 이를 강요해야만 한다면..
여성 스파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마타 하리>의 삶만 보아도 그녀가 추구한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한다. 그녀가 품은 <행복한 삶>은 단지 불우했던 과거를 잊게 만들어 주는 경제적 부와 화려한 삶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님 임무를 수행한 뒤에 받는 칭찬 한마디 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뒤에 도사린 <파멸>이란 두 글자는 그녀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았는 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여전히.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토록 <스파이>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상 최고의 두뇌들끼리 벌이는 한 판 승부이기 때문은 아닐까? 속고 속이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쾌감 같은 그 <무엇>말이다.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이 <무엇>을 빨리 발음하면 <멋>으로 발음되기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멋있다>고 말한다고 한단다. 횡설수설한 설명이지만 <멋>을 설명한 가장 멋진 표현이기에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추노>에서 성동일의 표현을 빌자면, 꾀 많은 여우를 사냥할 때는 날카로운 칼 끝에 피를 발라놓으면 여우가 그 피를 혀로 맛보다가 결국 자신의 피를 맛보다 제풀에 쓰려지게 만들어 잡는다고 한다. 결국 스파이는 딱 이 꼴로 살다가 자기 꾀에 속아 넘어가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도 스파이 가운데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불우한 결말을 맞이 했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꼭대기에 올라섰다는 <백척간두>라는 말이 스파이의 삶이련가. 개인적으론 비오는 날 피뢰침 꼭대기에 올라 벼락구경을 하는 이들이 바로 스파이 같다. 온누리에 이보다 더한 짜릿함은 없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여성 스파이라면...왜 일까?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김태희를 만나러 가는 이병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리고 김태희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NSS요원을 스파이에 비유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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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