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에 쓴 리뷰들

異之我...또 다른 나
- 작성일
- 2023.12.2
처음 세계사 7
- 글쓴이
- 초등 역사 교사 모임 글/한동훈,이희은 그림/서울대 뿌리 깊은 나무 감수
주니어RHK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치체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왕이 다스리든, 귀족이 다스리든, 여러 의원을 뽑아 합의하든, 국민들이 직접 정치를 하든, 그저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정치체제'가 등장하기만 한다면 그럭저럭 굴러가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경제체제'에 있다. 다수가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받는 경제상황이라면 인류 역사상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굶주리는 상황에 처하면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혼란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당연한 절차'라고 할만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흔히 '프랑스 혁명'은 '앙시엥 레짐(구체제 몰락)'을 원인으로 꼽고 '시민계급의 성장'을 혁명의 주체로 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굶주리는 절대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배가 고파서 빵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할 수 없는 '정치체제'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과란 말이다. 우리는 이를 전문용어(?)로 '무능한 정권'이라고 말하고,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는 정치체제에는 어김없이 몰락이라는 결말로 치닫는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이 집권했다 몰락한 뒤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유럽사회를 뒤흔든 것도 주목할 점이다. 구체제를 몰락시킨 '프랑스 혁명군'의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이 퍼지자 나폴레옹을 몰아낸 각국의 왕정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으니,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한 '시민계급'은 왕족과 귀족들의 '혼인'으로 결속된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 것이다. 특히, '합스부르크 제국'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 대신에 각각의 민족끼리 국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역사는 진행된 것이다. 왜냐면 못 살더라도 '우리 민족끼리'라면 견딜 수 있으니 억압과 압제, 그리고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으로 시민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물론 빵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다. 아무리 같은 민족끼리 살더라도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혼란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된 시민들은 더이상 딱딱한 '계몽주의'를 탈피하고 '낭만주의'에 물들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성'보다는 '감성'에 젖어들게 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안델센의 <인어 공주> 등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곧이어 스탕달의 <적과 흑>,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은 작품이 나와 가난한 하층민들의 끔찍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더이상 높으신 양반들의 세상만이 아니게 되었다. 가난한 서민들의 의식수준이 성장함에 따라 사회문제는 점점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한편, 바다 건너 미대륙에서는 독립운동이 한창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금의 캐나다를 두고서 벌인 '프랑스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전쟁을 하면서 들인 막대한 비용을 '식민지인들'에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미국시민들은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며 영국이 부과한 세금에 강력하게 저항을 했고, 영국은 이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하며 '독립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 초기에는 영국의 연전연승이었다. 영국은 정규군인데 비해 미국은 '미니트맨'이라 불리는 '1분 대기조' 수준에 불과한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는데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 전쟁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미대륙에 정착한 이들은 상당수가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이었던 탓에 과도한 과세정책에 불만은 있었지만 아직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이라는 글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더는 '영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민이 인정한 권력만이 정당하다. 대륙이 조그만 섬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라는 간단한 핵심내용이 미국시민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지 워싱턴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게 딴지 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프랑스의 전격적인 지원이 도착하면서 영국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고, 미국은 왕이 아닌 세계 최초의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프랑스 시민들을 각성시켜 '프랑스 혁명'으로 이끌고 말았던 것이다.
허나 어렵게 얻은 독립이지만 경제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삶은 어려웠고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영국이 떠난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미국의 남부는 '목화농장'으로, 북부는 '오대호 운하'를 개척하면서 경제의 활로를 열게 되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남부는 엄청난 수의 흑인노예를 공짜로 부리면서 경제적 부를 쌓게 되었고, 북부는 운하건설로 대서양과 교통이 원활해지면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한 공장에서 만든 물품을 대서양 건너 상품을 유통시키게 되면서 경제발전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경제부흥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노예로 전락한 '흑인들의 삶'은 비참하기만 했다.
이때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수많은 미국 백인들에게 충격을 전해주었다. 경제발전으로 먹고 살만해지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게 된 것이다. 흑인노예 톰의 삶을 통해서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적나라하게 고발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사회는 '노예해방'에 관심을 쏟게 되었고, 끝내 링컨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전격적인 '노예해방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허나 이런 결정은 남부 농장주들에겐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대농장에서 생산된 목화를 바다 건너 유럽에 값싸게 공급을 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던 남부 농장주들에겐 거의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흑인노예'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부 공장주들은 노예를 해방시켜 '노동자'로 부리면 일정한 수익을 벌면서 상품소비도 할 것이니 노예해방정책에 그닥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연방은 '노예해방'을 두고 남북갈등으로 치닫게 되었고, 아주 치열한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 결과는 북군의 승리였지만, 그 손실은 어마무시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흑인노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오늘날까지도 '인종차별'은 미국사회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청나라와 영국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영국의 '면직산업'이 크게 발흥해서 전세계에 수출을 하며 톡톡히 수익을 내고 있었는데, 청나라에서만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영국은 청으로부터 '차'를 수입했고, '면직물'을 수출하려 했는데, 청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면 수공업'이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고 있던 터라 영국의 면직물이 전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꼼수를 부리는데 엄청난 무역적자를 메우려고 청나라에 '인도산 아편'을 팔았던 것이다. 이에 청나라는 점점 '아편중독'에 빠져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나서 영국이 들여오는 아편을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영국은 자유로운 무역을 막는다면서 군함을 보내 전쟁을 일으키니, 바로 '아편전쟁'이다. 영국이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영국은 마약을 팔아서 얻은 수익의 짭짤함에 몰염치한 짓을 멈추지 못하는데, 그로 인해 청나라는 크나큰 내부 혼란에 빠지게 되니, 바로 '태평천국의 난'이 그것이다. 이런 혼란을 수습하려던 청 조정은 태평천국에게도 패배하고, 외국 열강에게도 침탈을 당하면서 흔들리다 못해 망하기 직전이었다. 오랜 혼란이 이어지며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웃한 청나라가 이 지경에 빠졌는데도 조선은 나라 문을 닫아 걸고 알량한 '양반천국'을 지키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로 맞이하며 반짝 부흥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정조의 이른 죽음으로 어리고 어리석은 임금을 허수아비처럼 내세운 '세도가문들'에 의한 세도정치가 깽판을 쳤기 때문이다.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서 무수한 농민봉기가 벌어진 것이 바로 이 때다. 때마침 아일랜드 대기근을 부른 '소빙하기'로 인해 조선의 경제도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절단이 났는데, 매관매직을 일삼은 세도가문들은 탐관오리의 횡포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욱 부추기는 '삼정의 문란'이 60년가 이어졌다.
반면에 일본은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둘러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흑선을 몰고 나타난 페리 미제독에 의해 '강제개항의 굴욕'을 당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무능한 막부체제를 종식시키고 '일왕정치의 부활'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되살아난 일왕은 막부의 장군과 맞짱을 뜨기 시작하고, 결국 막부가 일왕에게 전권을 위임(?)하게 되면서 일본은 새롭게 태어났다. 이른바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다.
우리는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갖가지 사건/사고 들만 달달 외우려 든다. 또 학창시절 시험에 나오는 것들도 사건들의 앞뒤 맥락과 흐름을 파악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정작 '그 시절 그 사건'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들기 일쑤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그냥 '암기과목'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휘발작용에 의해 까맣게 잊혀지고 만다. 그런 역사공부는 하나마나다.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인간이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 때문에 일을 벌이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무엇은 다름아니라 '경제'라는 사실도 깨우쳐야만 한다. 먹고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배부를 때 벌어지지 않는다.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야 혁명이고 전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미국의 독립운동이나 프랑스의 혁명도 '세금' 때문에 벌어졌다.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세금까지 더 걷어가니 빡친 셈이다. 영국도 무역적자를 매꾸기 위해서 '아편전쟁'을 벌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세도정치기의 '삼정의 문란'도 마찬가지다. 넉넉한 삶에 세금을 올려도 빡치는 마당에 없는 살림에 각종 세금을 강제로 걷어가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정치체제가 무엇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다시 말해, 먹고 사는 걱정만 하지 않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허나 경제를 망가뜨리면 '없던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히 '경제지표'를 가지고 장난질을 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살아나야 제대로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느껴진다면 '경제'를 살펴보면 된다. 그리고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뼈아픈 역사는 더 자주 반복된다는 사실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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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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