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異之我...또 다른 나
  1. ™구석방 토론회

이미지

6시 48분. 내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다.

"어디냐?...왜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강제화 앞에서 기다리라니깐...그래, 얼른와라."

구수한 훈이형의 목소리다. 터벅터벅 걸어가니 입주위에 난 수염만 빼고 말쑥한 차림의 훈이형이 기다리고 있더라. 한 번 찐하게 안아주고 오랜만에 한담을 나누었다. 물론 늘상하는 여자이야기도 빼놓지 않고...그나저나 풀피리님은 오느거냐고 물으니 찝찝한 표정이다. 그리고선 탐탁찮은 말을 찍 뱉는다.

"내가 꼭 전화를 해야 해. 일찍일찍 좀 나오지. 어디에요..."

당췌 귀찮다는 듯한 말투. 어딘가 수상쩍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대화임에는 분명한데 어째 사귀다 헤어진 연인끼리의 전화같다. 아니나 달라 미주알고주알 풀피리님의 못마땅한 점이 술술 나온다.

"근데 누구누구 나오냐? 이게 다야?"

그러게 말입니다. 나오면 나온다 안나오면 안나온다. 말이라도 해주면 오죽 좋아. 이건 뭐 기분내키면 나갈거고 안내기면 안나겠다는 식이니. 벙개를 때려놓고도 사람들이 나올지 안나올지 조마조마 해서 마뜩찮다.

"글쎄요. 뒤마누나는 지금 오고 있는 중이시라하고, 성문이는 조금 늦는다고 했고, 동욱이 형도 나온다고 했으요. 현귀는 알바 끝나면 온다고 했고...그럼 대여섯명 정도 나오겠네요."

대화가 끊겼다. 벌써 7시. 종로3가역에서 이쪽으로 오신다는 풀피리님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훈이형은 "이 아줌마 또 늦네"라며 툴툴거리고, "길치에요?"라고 물으니 "길치이기만 하니."라며 또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남긴다. 그래서 "같이 술도 많이 마신다면서요." 그렇더니 정작 자신이 술마시고플 때 부르는 사람은 따로 있단다. 이건 또 뭔소린가 싶어 머릴 굴리고 있는데...저쪽에서 검정 아니 쁘띠블랙톤의 빠숑과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녀가 우릴 아는채 한다.

이야~ 거봐요. 내가 미인이실 거라고 했잖아요.라며 입에 발린 말을 건네니 3학년 9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애띤 미소를 머금는다. 답례로 나에게 건네는 조그만 상자를 받아드니 감촉이 케익 상자이다. 서른 한살이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받아보는 생일케익. 잠시 난 할말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잠시 잠깐의 감동연출. 메트릭스 모션캡쳐같은 영상이 머리속을 스쳐가며 카메라가 내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짜릿한 느낌을 힘겹게 떨쳐내고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번지없는 주막. 이곳 동동주가 맛있어서 자주 찾아갔는데 벌써 세번째다. 몇명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주인장의 안내로 전망이 트인 창가로 자리했다. 전망이 트였다고는 했지만 고작 보이는 거라고는 좁다란 골목길이 전부이고 그나마 취객들이 왔다갔다하는 게 전부였다. 자리에 앉고서 인삼동동주와 해물파전을 시키니 뒤마누나의 도착을 알리는 핸드폰이 울렸다. 부리나케 마중을 나갔다.

"어디냐...골목으로 올라가고 있으면 되냐. 그래 그럼 올라가고 있을께."

언제나 길지 않은 통화. 누나랑은 짧은 시간안에 끊기지 않는 말로 지루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야 그나마 1분동안이라도 통화를 할 수 있다. 항상 장황한 설명문 투인 나로선 조금 힘든 통화법이다. 어디계시나 두리번거리며 내려가니 인사동 입구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항상 품는 생각이지만 요즘 아줌마들 너무 예뻐.

"누나. 오늘도 예쁜데."
"얘가 왜그래. 나야 항상 예뻤지."

입에 발린 말이래도 싫지 않은 듯 툭치는 주먹이 기특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풀피리님 만날 때까지만이래도 누나 예쁘다고 말할려고. 그 뒤부턴 내가 누나 칭찬할 새가 없을것 같아서 미리 하는거야."
"그래? 그렇게 예뻐? 좋겠다. 미인 만나서."

이렇게 넷이 모였다. 졸지에 내가 막내가 되었다. 분위기 띄우기 위해 재롱잔치라도 벌여야하는 거 아냐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성문이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얼른 오라고 냉큼어여어서빨리 오라는 말을 하는데 이 곳을 도통 찾을 수가 없단다. 도리가 있나 어디서 헤메고 있는가 했더니 골목하나를 못찾고 바로 앞에서 헤메고 있는 성문이를 만났다. 이래서 다섯명.

다섯명 모이니 드디어 생일케익을 꺼내들었다. 시끌벅적한 생일축하노래가 끝나고 서른하나임을 알려주는 촛불 네개를 얼른 불어서 끄고 케익을 잘랐다. 뒤마누나가 오고서 술은 동동주에서 소주로 바뀌었고, 안주도 해물파전에서 참치김치찌개로 바뀌었다. 다들 배가 고프셨는지 김치찌개에 진지를 드셨다. 마침 온 성문이도 공기밥 시켜서 뚝딱 해치웠고...

배부르겠다. 이제 얼큰히 술도 달아오르겠다. 이야기가 한창이다. 토론회이야기며, 못다한 향수이야기며, 사람이야기, 심각한 이야기, 웃긴 이야기...이야기를 하다보니 풀피리님하고는 죽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풀피리님을 뭐라부르면 좋을까하다가 누나라고 불렀더니, 자기는 누나라는 호칭을 안좋아한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호칭은 따로 있단다. 보다못한 훈이형이 이사람이 좋아하는 호칭을 알려주려는 데, 내가 대뜸 "자기"라고 불렀으매 그 호칭을 참듣기 좋아하시더라.

아참, 성문이가 내 생일선물을 챙겨주었다. 뺜쥬. 알라뷰라고 적나라하게 쓰여있는 삼각뺜쥬를 선물로 주었다. 그 난감함이란...ㅡㅡ;; 이걸 내가 입어야하는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머리에다 뒤집어썼다.

동욱이형이 왔다. 뭔 선물을 주겠다고 기대하라고 하시더니 느즈막히도 등장하셨다. 앞으론 올려면 빨랑빨랑 오시라구요. 암튼 선물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이라는 책이다. 동욱이 형다운 선물이었다.

세현이. 날_라가 왔다. 써리원 아이스케익을 사들고서...내가 서른하나여서( ")? 두번째 생일축가. 두번째 생일촛불. 젠장 감동먹었잖아ㅡㅜ

현귀가 도착했다. 이제 술잔은 가열차게 기울어진다. 술병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비워지고 러브샷도 하고...풀피리...아니 울자기가 시인이라고 했던가. 케익을 덜어먹은 조그만 접시에 묻은 하얀 생크림과 노오란 망고시럽을 가리키며 뭐같냐고 묻는다. 술에 취해 얼떨떨한 발음으로 케익아니냐고 답했더니 그거말고 이게 뭐처럼 보이느냐고 다시 묻는다. 흠...하얀 생크림에 노란망고시럽...하얀 생크림에 노오란...노른자. 터진 계란 노른자. 터진 계란 노른자처럼 보여요. 실망. 다시 잘봐요. 파도같잖아요. 여기 점점이 뿌려진 빵가루는 아이들이고...우와. 시인이다.

밤이 깊었다. 갈길이 먼 노땅들은 서둘러 집에 가기 시작했다. 먼저 뒤마누나가 서둘렀고, 훈이형과 자기가 자리를 떳다. 남은 사람은 동욱이형, 성문이, 세현이, 현귀...나. 다섯. 노래방갔다. 후아...나도 취할데로 취했다. 나를 부축하는 챙기는 귀여운 녀석들.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만 아직까진 참을 수 있다. 내가 늘상 부르는 레파토리 서너곡 부르고 땡~널부러졌다.

3차 호프. 아니 칵테일바였었나. 커다란 와인잔에 맥주가 담겨왔다. 흑맥주라나 뭐라나...여전히 난 널부러져서 애써 정신차리려고 노력했지만...이미 늦었다. 더이상 추태를 보이기 전에 집에나 가야지. 몸을 일으키니 나를 부축하는 녀석들...에그 고맙다. 주섬주섬 내 가방챙기고 현귀가 준 생일선물 손에 꼭쥐고 나가려는데 휘청거린다. 내 손에서 짐을 거두고 날 택시까지 태워주고서 보내려는 데...뭔가 허전하다. 맞다. 현귀가 준 책선물. 세현이의 말이 들려온다.

"이거 우리가 챙겼다. 나중에 주자."

덥석 빼앗듯 잡아챘다. 잘가라는 녀석들의 인사를 손인사로 대신하고...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구리시청으로 가주세요."

내가 깜박 졸았나 보다. 택시기사가 날 깨운다. 서둘러 돈계산을 하고 안전밸트 풀고 내렸다. 뭔가 허전하다. 그때 택시는 부릉하고 떠나고 뒤늦게 그 택시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번호판도 안보인다. 택시안에서 졸다가 책을 손에서 놓쳤나보다...이런 하필 현귀가 선물한 책인데. 이런 낭패가 있나...현귀에게 뭐라 말하나...에그. 벌써 새벽 3시 40분이다. 후회막급이다. 그냥 세현이에게 맡기고 올걸...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異之我...또 다른 나님의 최신글

  1. 작성일
    4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4분 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5.18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18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5.1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17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5
    좋아요
    댓글
    194
    작성일
    2025.5.1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6
    좋아요
    댓글
    170
    작성일
    2025.5.16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9
    좋아요
    댓글
    119
    작성일
    2025.5.19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