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心崗) 고재욱(高在旭) 선생(1903~1976)은 1931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작고하기 한 해 전인 1975년 명예회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평생을 언론에 바친 인물이다. 경제부 기자로 출발해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사장, 회장 등을 거쳤고 한국신문편집인협회 회장과 서울라이온스클럽 회장 등 많은 언론 사회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고재욱 평전’의 부제로 ‘20세기 한국 언론계의 큰 별’이라고 붙인 이유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광복 이후에는 자유대한민국의 건국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생업이 아닌 지사(志士)의 마음으로 신문사에 들어와 자세를 견지했다. 고재욱은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에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투쟁했다.
주필 재직 시 한국신문편집인협회 회장 자격으로 다른 언론단체들과 연합해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언론윤리위원회 법안 반대투쟁에 나서 이를 좌절시킨 공로로 IPI(국제신문협회)로부터 ‘언론자유의 영웅’ 칭호를 받았다.
저자는 “최근 한국의 유명 언론인들에 관한 전기류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한국 언론인들 가운데 가장 걸출한 인물 중 한 분인 고재욱 선생에 관해서는 단행본으로 된 저술이 없다”며 그의 평전 집필에 나선 동기와 포부를 밝혔다.
다만 1950년 6·25전쟁을 맞아 피난을 하는 과정에서 서울 중구 필동 자택에 보관 중이던 문서 및 사진 앨범 등 개인 자료들을 도난당해 자료가 부족했다. 고재욱 선생이 작고한 지도 45년이 지나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그와 가까운 동시대인들이 거의 없는 것도 애로였다.
저자는 고재욱 선생에 관한 자료를 보충하려고 그가 졸업한 일본 교토대학에 성적을 조회하고, 그의 고향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을 답사했으며, 광주광역시에 사는 유족과 친척들을 면담했다.
저자는 언론의 거목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고재욱 선생이 직접 쓴 중요 논설과 연설문을 챙기고 이관구, 나절로(우승규), 곽복산, 이동옥, 김규환, 박권상 등이 쓴 인물평을 ‘내가 아는 고재욱’으로 묶어 부록으로 소개했다.
‘고재욱 평전’은 한 언론인의 삶의 궤적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시대와 해방, 6·25 전쟁 이후의 혼란과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언론, 특히 시대를 대표했던 동아일보의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기 위한 분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사(史)의 주요 사료가 될 수 있는 이유다.
고재욱의 조부 고정주는 조선 말기 정3품에 오른 관리로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사직해 낙향, 인재양성에 나섰다.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는 고정주의 사위이자 그가 설립한 영학숙(英學塾)의 첫 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