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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글쓴이
문중양 외 7명
출판사
일조각
출판일
2021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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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문중양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에서 통계학과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서양과학사와 한국과학사를 공부했다. “조선후기의 수리학(水利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줄곧 조선후기 서구 과학과 전통 과학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주론을 중심으로 그 양상과 성취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처음에는 18세기 영·정조대의 과학 활동 및 사대부 지식인들의 과학관을 중심으로 연구를 했으나, 조선 초기 세종대 과학의 성취에도 관심이 많으며, 요즘에는 19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과학 활동에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水利學과 水利담론』과 『우리역사 과학기행』(2006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 소개

분야역사
19세기 ‘개항의 시대’를 맞이한 동북아 3국의 선택

대한제국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10년에 강제병합 당한 것은 ‘문화’가 ‘문명’과의 대결에서 참패한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천문학 지식을 수용한 이래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를 교훈 삼아 해군 건설에 나선 것도, 일본이 1854년 ‘흑선黑船’을 몰고 다시 나타난 페리 제독에게 개항을 허락하고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막말의 ‘지사志士’들이 문명개화로 방향을 바꾼 것도 모두 문명의 막강한 힘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의 동북아시아는 분노에 떨면서, 그리고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문화수용전략이 나타나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과연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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