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심상]으로 등단한 김동경 시인이 퇴임 후 펴낸 신작 시집이다.
“내 詩는 칼국수다. 밥은 아니다. 스테이크 같은 건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칼국숫집이 있어서 맛난 칼국수를 만들어 판다. 집마다 사용하는 재료는 사실 거의 비슷할 텐데 어느 집의 칼국수는 환장하게 맛있는가 하면 어느 집은 이걸 칼국수라고 끓였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집도 있다. 바지락이며, 새우, 홍합, 낙지, 버섯, 애호박 등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어서 맛을 내는 집도 있고, 곁들여 먹는 열무김치가 일 년 내내 변함없이 맛있어서 국수의 맛을 살리는 집도 있지만 원재료인 밀가루를 반죽해서 국물에 끓여내는 그 기본 조리법은 공통적이다. 그런데도 어느 칼국수는 정말 맛있어서 몇 년 지나 먹게 되더라도 항상 그 맛을 보여주어 먹는 내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경험에 의하자면 행복한 최고의 칼국수는 어릴 때 엄니가 손수 반죽하셔 두루 접은 뒤 도마 위에서 칼로 두툼하게 서걱서걱 썰어서 끓여주신 칼국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칼국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詩도 세상의 수많은 칼국수쯤의 하나일 것이다. 내 칼국수에 엄니가 끓여주신 행복했던 그 맛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다면 꽤 괜찮을 텐데.
또 하나의 칼국수를 빚으면서 꿈꾼다. 사람들이 내 칼국수를 먹고 무언가 사는 게 이런 걸까 하고, 잠깐 신비한 맛을 느끼게 된다면 반죽을 빚고 끓여낸 자의 큰 기쁨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엄니의 칼국수가 그립다.”
- 저자의 말 중에서